악보를 보고 바로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을 초견(初見)이라고 한다. 나는 초견이 형편없다. 굼뱅이가 기어가는 수준이다. 기본기를 제대로 닦지 않고 바로 연주하고 싶은 곡을 야금야금 쳐왔던 악순환의 역사 덕분이다. 다른 연주자들이 하루 걸릴 악보라면 내겐 한달이 필요하다. 영어 능력자가 어떤 문장을 즉석에서 번역할 수 있다면, 나는 항공모함 프라모델을 조립하는 기분으로 분열된 자음과 모음을 하나하나 살펴봐야 겨우 문장이 된다.
초견이 저질이라 좋은 점도 있다.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라며 수차례 헛발질하던 손가락이 점차 자리를 찾아갈 때의 그 다이나믹한 변화를 매번 체험하기 때문이다. 연습에 장사 없다. 치다보면 어느 순간 결국은, 된다. 요약하면 "응? 헛, 엇, 아, 아.., 으! 으앗! 응? 어? 어! 오!!" 의 과정이다. 두 마디 안의 좁은 세계지만 그 안에서 오늘 나는 4시간만에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직장인들이 점심 시간을 아껴가며 피아노 연습실을 가득 메우는 이유가 있다. 한 사람이 변화하는 과정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없다. 당신에게 권하고 싶다. 악기를 연주하라.
목매게 되는 이유를 간결하게 잘 써주신것 같아요. 저도 늘 느끼는 부분이지만 (그리고 사람마다 과정을 겪는 시간은 다르겠지만) 연주실력이 느는 그 과정에 집중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이 들어요. 여기서 기록의 습관도 적용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건반 위에 올려지는 손등의 높이, 터치의 강약 같은 테크닉적인 부분도 시간이 갈수록 눈에 띄게 좋아지는 모습을 보면 이래서 연습에 중독되는거구나 끄덕하게 되죠. ^^
쉬운 초견책 하나 잡고 매일 15분씩만 꾸준히 하시면 금방 좋아지실거라 확신해요. 꾸준함을 이기는것은 없더라구요. ㅎㅎ (아 물론 저부터...)
저는 악보를 읽는 1차원적인 재현에 기쁨을 느끼는데, 레벨업을 하다보면 레일라님 말씀처럼 여러 음악적 표현에도 도전과 성취를 느낄 것 같습니다. 초견책 15분! 당장 시작해야겠습니다~~!
저도... 피아노학원 다니던 초딩땐 악보만 보고 대충 어떤 음인지 바로 읽을수 있었는데 이젠 건반 하나씩 눌러봐야 그제서야 아? 하게 됩니다... 인간이 쓰던 뇌를 안쓰고 하면 그렇게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