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나이는 어떻게 되나, 성별은 무엇인가, 장단점은 무엇인가, 무슨 학교를 나왔나, 사는 곳은 어디인가, 무슨 일을 하나, 차는 무엇인가, 부모님은 계신가, 부모님은 뭐 하시나, 키와 몸무게는 얼마인가, 국적은 어디인가, 인종은 뭔가, 종교는 무엇인가, 꿈이 있나, 있다면 무엇인가, 사지는 멀쩡한가, 정신은 멀쩡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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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도라 일컫는 것은 도가 아니고, 이름이라 붙는 것은 이름이 아니다)-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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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들은 물질과 비물질에 관계없이 이름 붙이고 분석하기를 좋아한다. 때때로 삑사리나는 분석 때문에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그런 걸 통해 우리가 진화하기에 이름 붙이고 분석하는 걸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항상 과해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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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붙으면 의미도 따라붙는다. 의미는 ‘막’이다. 졸라 얇아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지만, 막은 분명 존재한다. 거창하게 종교, 관념, 이념 같은 게 아니라도 주위를 돌아보면 막 투성이다. 그리고 우리는 막에 의해 사육당한다, 늙어 죽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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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붙으면 본질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이 세상 시스템의 속성상 어쩔 수 없이 이름과 의미를 붙여야 하지만, 무엇을 무엇이라고 단정하는 순간 무엇은 무엇이 돼버리고 만다. 이름과 의미에 지배당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지배는 지속된다, 늙어 죽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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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구절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누가 우리에게 이름, 성별, 나이, 학벌, 종교, 인종 등의 질문을 하면 막힘 없이 무엇이라고 대답한다. 상황과 장소에 따라 답이 약간은 달라질 수 있지만, 틀에 박힌 답은 분명 나온다. 상대방은 그 답을 입맛에 맛게끔 또 마사지 한다. 이미 퇴색된 답이 더 퇴색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악순환은 이어진다, 늙어 죽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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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본질은 세상이 규정하고 답을 강요하는 ‘막’ 안에 있지 않다. 남자와 여자, 좌파와 우파, 젊음과 늙음의 막은 세상이 정한 것이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다. 본질의 ‘나’는 이름과 성별에 구속되는 게 절대로 아니다. 창조자의 형상을 닮아 만들어진 ‘나’는 우주의 그 무엇도 구속할 수 없는 존재다. 하물며 먼지보다 더 작은 이 존만한 지구에서 누가 ‘나’를 구속하겠는가. 나 스스로 구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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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오직 사랑만이 알에서 깨어나게 할 수 있는 것, 지금 현재의 나를 사랑해야 한다. 고깃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잣대로 창조자의 깊은 뜻 판단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 존중, 그리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걸 할 수 있는 순간은 지금 현재다. 존재하는 건 지금뿐이다. 용도폐기되기 전에 실행해야 한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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