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으면 이 책 말고 다른 책 산다. 이 책을 리뷰하려고 이것저것 준비하다가 뜬금없이 영어로 밥 먹고 산지 얼마나 됐는지 계산해봤다. 2005년에 모 호텔 영문 홈페이지 작업하고 받는 50만원이 시작. 드문드문 알바하다가 아예 월급 받으며 번역 및 과외 및 학원 강사를 한 게 2011년부터구나. 지금은 영어로 밥벌이하는 게 지겨워서 떠나 있는 중이지만 조만간 다시 돌아갈 것 같다.
영국에서 대학 졸업하고 길게 잡으면 10년, 짧게 잡으면 5년 정도 영어 교육계에 있었지만 여전히 영어는 어렵고 계속해서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5월부터 7월 중순까지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라성일 선생님의 Rhetorical Writing 강의를 들으며 스스로의 영어 실력에 많은 반성을 했었다. 난 핏덩이였어.
빅보카, 이 책은 페이스북 광고도, 블로거들의 리뷰도 많이 올라오는 데다가 평도 좋아서 알게 됐다. 거기다 광고도 섹시하고. '구글 빅데이터 검색을 사용해 700만 권의 책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영단어 8000개를 추려 만든 단어장', 1번부터 4000번까지 모은 기본 단어장 '코어'와 4001번부터 8000번까지를 모은 '어드밴스드'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코어만 외워도 영어 실력 향상이 눈에 보일 것이란다.
광고만 보면 다른 영어 교재 회사들 (해커스, YBM, 영단기 등)이 지네 멋대로 단어를 선정해서 모아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 책이 수능용은 아닐 테니 성인용 영어 교재 회사만 써놨다) 구글 빅데이터를 워낙에 강조해놔서 빅보카가 더 과학적인가 보다... 하는 거지. 그런데 원래 단어장은 다 그렇게 만든다. 시험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 추려서 빼고, 넣고 하는 거다. 거기다가 토익 자체가 비즈니스 및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영어를 묻는 시험이기에 토익용 단어만 제대로 외워도 영어 하는데 큰 지장 없다. 더 학술적인 걸 하려면 토플용 단어장이나 Word power made easy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 같은 걸 보는 거다. 우리가 영어를 못하는 건 자신이 꾸준히 공부를 안 해서 지 교재가 나빠서가 아니다. 이미 교재들, 특히 단어장은 충분히 잘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빅보카는 책조차도 그렇게 잘 만든 것 같지 않다. 이미지를 통해 다른 단어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확인해보자.
경선식 보카
보카바이블
YBM 단어장
단어를 외울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단어 스펠을 알고 뜻을 외우고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 용례를 확인한다. 그리고 자주, 반복해서 봐준다. 그래서 우리나라 단어장은 영어를 자주 접할 수 없는 환경을 고려해서 영어 사전처럼 예문을 많이 써준다. 당연히 품사는 써주고, 다른 품사일 때는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써준다. 바로 위 YBM 단어장을 보면 동사 '안내하다' Conduct가 명사 '안내하는 사람, 차장'이 될 때는 Conductor가 된다고 써준다. '지휘자'가 된다고 참고까지 써준다. 다른 회사 단어장도 마찬가지고. 동의어, 반의어도 써줬네. 보카 바이블은. 각 출판사가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다. 그렇다면 '과학적인' 빅보카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아래 이미지로 확인해보자.
'과학적인' 빅보카, 코어편
'빅데이터로 추출한' 빅보카 어드밴스드편
이건 나 옛날에 혼자 단어 정리했을 때 했던 수준이라고 밖에 안 보인다. 품사 구분도 없고, 뜻만 나열해놓고, 예문조차 없다. 핑계는 8000단어를 모아 놓다 보니 공간이 부족해서 못 넣었다고. '모든 예문과 설명은 팟캐스트'라 쓰여있다. 뭐지, 이 느낌은? 동네 횟집에서 양이 적어 항의했더니 '오늘은 물이 안 좋아, 담에 올 때 잘해줄게' 같은 뭔가 당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은.
영어를 잘하는 건 단어를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품사나 용법을 모르면 그냥 외우는 것일 뿐, 활용이 될 수 없다. 이건 그냥 많이 쓰는 단어 모아 놓은 책일 뿐. '빅보카께서 우리를 인도해주실 거야' 같은 수준이 될 수 없다.
사실 이 책 같은 책도 필요하다면 필요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이렇게 비판하는 글을 책 사느라 내 돈 낭비해가며 쓰는 이유는 첫째, 광고를 하도 해대서 짜증 났고 둘째는 얼마나 좋길래 이 난리인가 싶어서 샀는데 생각보다 너무 별로라서.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인지 모르겠다. 내용물의 퀄리티를 떠나 마케팅으로 성공한 정말 좋은 예.
그리고 광고할 때 작가 신영준 씨가 대기업 퇴직, 박사 (공학) 같은 거 강조하는 거 정말 별로다. 어쩌라고. 거기다 교육학이나 영어영문학 박사도 아니잖은가. 아니면 역시 이과 출신답게 효율적으로 좍좍 데이터 뽑아서 우선 외우면 될 거라고 생각한 건가? 언어가 그런 게 아닐 텐데.
토익 공부할 거면 토익 단어장을, 수능이면 수능 단어장을, 공무원이면 공무원 용을. 검색 몇 번만 해도 괜찮은 책은 우수수 나온다. 아니면 직접 서점에 가서 뜻과 예문이 많은 책을 찾아보던가. 귀차니즘에 빠져 책상 앞에 앉아 클릭질만 해대니 이런 마케팅에 속을 수 밖에. 쯧쯧
시험용이 아니라 영어 공부용으로 어원부터 제대로 알고 싶으면 Word power made easy(노먼 루이스 저)나 1100 words(머레이 블룸버그 저)를 추천한다.
저는 이책 두권샀어요. ㅎㅎ
스팀잇이 구글에 검색이 잘되는군요.
첫페이지에 나오네요. 추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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