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을 하자마자 part time jobs를 모두 그만두고 홍대 앞에 studio를 얻었더랬다. 그런데 3개월 만에 그만 두니, 당장 식사부터 걱정이었다. 그때, 새로 애인을 얻어 밥해주는 데 푹 빠져 있던 친구가 풋풋(foodfood.co.kr)이라는 website를 알려주었다. 당시 .com 열풍을 타고 창업된, 하루 분량의 menu를 짜 매일 새벽, 저렴한 가격에 식재료를 배달해주는 업체였다. 아침과 저녁만 신청할 수도 있었고, 나처럼 삼시세끼를 모두 신청할 수도 있었다. 물론 4인 가족도 신청할 수 있지만 나 같은 초보 1인 가구에게 구원자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예를 들어 아침은 팥과 찹쌀 1/2컵, 두부 1/4모, 당근과 오이 1/2개씩, 양념, 점심은 잡곡밥 1컵, 생선 1/2토막과 소금, 김치 1 pack, 쇠고기와 참기름과 미역 등 국 재료, 저녁은... 뭐 이런 식으로 식재료를 아기자기한 분량으로 포장하고 귀여운 illustration을 곁들인 조리법을 인쇄해 넣어주었다. 새로 생겨난 가상의 세계(internet)에 너도 나도 뛰어들며 경제가 폭발하던 시기에는, 모든 게 가능해 보였고 나는 때 아닌 요리 놀이에 푹 빠져들었다.
오전에는 입사시험을 보거나 면접을 다녀왔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league가 있는 건지, 출판사 면접 때는 그토록 당당했던 내가, 다른 분야, 다른 종류의 회사에서는 주눅 든 못난이가 돼버리는 것 같았다. 면접장에서는 내가 입고 있는 옷부터 내가 하는 말, 내가 짓는 표정까지 모든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시험장에서는 모르겠는 문제투성이였다.
오후에는 신생 잡지를 창간한다는 출판계 부랑아들의 모임이나 문화비평가 지망생 모임 등에 참석했다. 그런 다음에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그러고 들어와서 구인 광고를 검색하거나 지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두 달쯤 그렇게 지냈을까? 그만 둔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선량한 낮의 팀장에게서였다. 낮밤으로 일하며 고생하다 그만두는 어린애를 측은하게 여기는 티가 역력하더니, 재취업 준비는 잘 돼가냐, 독립했다더니 생활비는 어렵지 않냐 물어봐주었다. 그리고 외주 일을 맡겼다.
외주 일을 받으러 두 달 만에 쭈뼛쭈뼛 전 직장을 다시 찾았다. 낮의 팀장은 한껏 부드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일감 뭉치와 함께, 내가 지급받아 3개월 동안 쓰던 새 국어사전도 안겨주었다. 왠지 눈물이 핑 돌았다. 저녁마다 마시던 술을 딱 끊고 밤을 새가며 외주 일을 했다. 나를 오라고 하는 다른 회사는 한 군데도 없었다.
그리고 몇 주 후 외주 일을 납품하러 갔더니, 낮의 편집장이 자기 방으로 나를 불렀다. 애초에 왜 나갔던 거냐고 물었다. 밤의 편집장이 너무 싫었노라고, 밤의 편집장에게 우리를 방치하는 낮의 편집장도 원망스러웠노라고, 고개를 푹 수그리고 대답했다. 틀린 말을 아니었으나, 실은 꼭 그런 건 아니었고, 그가 듣고 싶어할 면을 돌려댄 대답이었다.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들어오라고 말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막아주겠노라고.
나는 3개월 만에 전 직장에 다시 들어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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