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을 다녀와서(https://uchatn.tistory.com/24) 해외 도서전 프로젝트는 끝났다. 나는 기진맥진 해버렸다. 정산 작업과 프로젝트 결과 보고서 작업이 남아 있었지만, 다른 팀원들도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나에게는 휴식이 절실했다. 회사에 한 달 무급 휴가를 신청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서는 안 됐다. 적어도 내가 그 회사에 계속 다니면서 좋은 일을 맡고 승진을 할 생각이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나는 거만하게도 한 달이나 쉬고 돌아와서도 사장은 나를 신뢰할 거고 나에게는 계속 중요한 일이 주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초겨울에 무급 휴가를 가게 됐다. 나는 직장에, 동생이 봉사단으로 있는 캄보디아를 갈 거라고 말했다. 실제로는 휴가중 앞뒤로 일주일 가량은 집에서 쉬거나 밀린 집안일을 했다. 그리고 중간에 일주일 가량은 희한하게도 ‘아산’를 여행지로 택해 떠났다.
그러고 나서 회사에 복귀를 하자, 이미 다들 특정 프로젝트를 맡아서 하고 있었고 내가 할 일이 없었다. 그러자 사장은 나에게 애초에 내가 입사하게 된 계기였던 프로젝트, 즉 디자인 웹진 창간을 추진해 보라고 했다. 그야말로 돈만 계속 들어가고 별다른 비전도, 목적의식도 찾기 힘든 프로젝트. 게다가 인력은 달랑 나 하나였다. 나는 디자인 전공자도 아닌데 말이다. 실무는 맡을 수 있었지만 콘텐츠 기획을 전문적으로 할 편집장이 필요했다.
게다가 이런저런 새로운 전시 공모가 뜨면 프리젠테이션 준비가 수시로 나에게 떨어졌다. 막막한 웹진을 준비한다며 허송세월을 하다가 급하게 프리젠테이션 준비에 투입되는 시간이 몇 달간 이어지며, 나는 웹진 일을 도저히 못하겠다고 사장과 실랑이를 계속했다. 결국 사장과 험악하게 부딪고 만 어느 회의 시간 며칠 후, 그놈의 주말 회사 청소 공지가 또다시 뜨면서 나의 회사 생활은 결말이 지어졌다.
얼마전 어느 출판사에서 주말 창고 정리를 지시한 사장의 말을 거부한 직원들을 해고하는 문제가 사회적으로 비화되었다. 그러니까 사무직 직원들에게 청소 노동을 시킬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이 회사에서 했던 반항(저항) 같은 것들도 조금씩 모여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일까? 그랬다고 믿고 싶다.
이전에 쓴 것처럼, 툭하면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빠지는 고참 직원들과 달리, 입사한 지 1년이 됐어도 여전히 신참인 나는 감히 핑계를 대고 주말 사무실 청소에 빠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딱히 주말에 중요한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거짓말을 하기 싫었다. 그러자 대책 없는 나는, 그냥 말없이 안 나가는 편을 선택했다.
월요일날 출근하니 왜 토요일 대청소에 안 나왔냐고 묻는 사람은 최고참 직원 딱 한 명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그냥 가기 싫어서 안 갔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로 회사 내에서 내가 맡는 일이 점점 없어지고 나에게는 허드렛일만 주어졌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발로 회사를 그만 두었다.
퇴사한 후 들려오는 뒷다마를 들으니 내가 그만두게 된 건, 내가 ‘거만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퇴사하고 몇 개월 지나서 다음 회사에 입사하기 전, 경력 증명서를 발급해 달라고 갔더니, 최고참 직원은 경력 증명서에 굳이 세부 항목을 넣어, 내가 해외 도서전 업무 기간를 제외한 다른 기간에는 회사에서 ‘논’ 것처럼 서류를 만들어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종이를 받아왔다.
도서전 프로젝트를 하던 중에 벌어진, 독일어 번역과 자존심 싸움 이야기는 다른 블로그에 썼으니 참고하시길. https://blog.naver.com/uchatn/221675845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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