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three farewell parties, two for me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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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편집장이 ‘막아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정말 지킨 것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역학이 작용한 것인지, 나의 재입사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출판사는 잡지를 폐간하고 밤의 편집장을 내쫓았다. 혹은, 밤의 편집장이 어느 날 나타나 큰소리를 쳤다. “나에 대한 푸대접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다른 회사로 잡지를 가져가서 제대로 내겠다.”

당시 잡지는 꽤 잘 팔리며 발간 때마다 화제가 되고 있었기에, 후자의 주장도 설득력 있어 보였다. 그리고 밤의 편집장은 자기 밑에서 일하던 밤의 팀장(작고 동그란 얼굴)도 데리고 나가겠다고 했다. 유력 신문사에서 운영하는 출판부라고 했다. 거기 부장이랑 자기가 절친이라나... 나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줄을 다시 서야 하나 싶었다. 나도 데리고 가달라고 하고 싶었다.

작고 동그란 얼굴의 선배(밤의 팀장)의 환송회가 열렸다. 낮의 편집장과 낮의 팀장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녀와 친했던 인물들이 다 모였다. 어찌 보면 나도 그녀 덕에 입사한, 그녀의 인맥이었던 데다가 직속 부하였으므로 당연히 참석했지만, 막판에 슬쩍 배신한 상태가 됐던 것 같아 그다지 떳떳한 기분이 아니었다. 그녀는 기세 좋게 술잔을 휘두르며, 나는 이제 대기업 직원이 되는 거라고 큰소리를 쳐서 좌중을 웃겼다.

그러고 나서 몇 주 후, 작고 동그란 얼굴의 선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는 아직 놀고 있다며, 밤의 편집장이 연락 두절이라고 말했다. 믿고 퇴사했는데 이럴 줄 몰랐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나는 그분이 원래 제멋대로 아니냐, 곧 연락이 있을 테니 걱정 말고, 이번 기회에 푹 쉬라고, 그리고 정말 신문사에 들어간 다음에는 기회를 봐서 나도 데리고 가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웃었다. 몇 달 후 그녀가 정말 신문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근데 출판부가 아니라 사회부 경찰 기자로 들어갔다고 했다. 신문에는 그녀의 이름을 단 사건 기사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고, 밤의 편집장과 밤의 팀장은 물론, 낮의 팀장도 모두 퇴사한 후, 나보다 1년 선배가 뒤이어 새로운 팀장이 되었다. boyish한 짧은 머리에 하얀 얼굴의 그녀는 나의 출판사 생활을 시작부터 끝까지 바로 곁에서 함께 한 사람이었고 공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러다가 막판에 나와 사이가 좀 안 좋아진 상태였다.

나도 결국 재퇴사를 하게 되었다. 나를 위한 환송회도 조촐하게 열렸다. 나의 재퇴사 환송회는 예전 밤의 팀장의 환송회만큼 사람도 많지 않고 시끌벅적하지도 않았지만, 나도 나름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을 좀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나의 첫 퇴사 환송회가 떠올랐다.

3개월 일하다 그만두는 수습사원을 위해 환송회를 열어주는 회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1년 전, 짧은 머리 하얀 얼굴의 선배(지금의 새로운 팀장)는 나를 위해 둘만의 환송회를 열어주었더랬다. 그녀는 중국집에서 요리를 시켜주며, 반쯤은 허세를 부리고 반쯤은 불안해하는 나를 격려해 주었다.

나의 재퇴사 환송회 날, 짧은 머리 하얀 얼굴의 선배는 나와 사이가 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참석해, 내 맞은편에 앉아주었다. 선배를 잠시 쳐다보던 나는 그 얘기를 꺼냈다. “내가 처음 퇴사했을 때는 선배 혼자서 환송회를 열어줬는데...” 선배도 퍼뜩 생각이 나는 듯, 눈을 반짝 빛내더니 시선을 천장으로 돌렸다. 그 반짝임은 회한의 눈물이었다고 믿고 싶다.

짧은 머리 하얀 얼굴의 선배도, 다른 사람들도 돌아가고 네 명만 남은 늦은 밤, whisky bar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는 더 이상 단순한 낮의 편집장이 아닌, 만인지상 일인지하 편집장이 데리고 간, 고급스런 bar였다. 그 편집장도 회사를 한 번 퇴사했다가 다시 들어온 전력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에게 그 얘기를 꺼내며, 옛날에 왜 회사를 나갔었냐고 물었다.

주변은 음악 소리로 좀 시끄러웠고, 다른 일행들은 bar에 요염하게 앉아 있는 검은 dress의 여인들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는 절대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

지금이야 뭐, 그도 퇴사한 지 오래니, 얘기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까마득한 지위의 그가 나에게 내보여준 뜻밖의 솔직함과 신뢰를 저버리긴 쉽지 않다. 오랜 세월을 아무에게도 얘기를 안 했더니, 기억도 가물가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