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이광수/ 각색 이소우
母子
1
가섬벌에서 칠월이면 벌써 서늘한 날씨다.
개울 물이 소리 없이 흐르는 뒷산 모퉁이에 늙은 버들 그늘을 끼고 단둘이 손을 마주 잡은채 차마 떠나지 못하는 젊은 남녀 한 쌍이 있다. 바로 활 잘 쏘기로 유명한 주몽과 미모의 예랑이었다.
보름달보다 약간 이지러진 달이 솟은 것을 보니, 이미 적잖이 깊은 밤이었다.
그럼에도 달빛이 환하니 그 많던 반딧불이 그늘진 데서만 반짝반짝하고 있었다. 달빛을 담고 흐르는 강물이나 엷은 안개와 달빛에 가려진 벌판이나 모두 사랑과 젊음에 취한 두 사람의 마음과도 같아보였다.
『이제 그만 가셔요, 내일 또 만나면 되 잖아요. 어른들 걱정하셔요.』
하는 예랑의 음성은 아름다웠으나 어느 구석에 적막한 울림이 있었다.
『그래, 내일 또. 내일 밤에는 이 버드나무 밑에 배를 대고 기다리리다.』
하는 주몽의 말은 참으로 씩씩하였다. 그렇기도 할 것이, 그는 큰 나라를 세울 시조가 아닌가.
주몽이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 유화 부인이 주몽을 찾는다는 전갈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집이라는 것은 유화 부인이 거처하는 이궁이다. 주몽 역시 이궁 안에 한 부분을 차지하여 살고 있었다. 어머니 유화 부인이 있으신 곳은 지금도 금와왕이 때때로 행차하여서 하루 이틀을 쉬어 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어머니 아직도 이러고 계십니까?』
주몽은 유화 부인이 기대어 달을 바라고 앉은 난간 가까이 갔다.
『오! 주몽이구나. 이리 올라오너라. 오늘 밤 달이 유난히도 밝구나. 땅 위에 뽀얀 안개가 흐르는 것이 더욱 달빛을 밝게 하지 않느냐. 그런데 너는 어디를 그렇게 늦도록 나다니느냐. 네 나이가 벌써 스물, 너는 인제는 장난치는 소년이 아닌데….』
인제 나이가 사십을 바라보는 유화 부인의 달빛에 비췬 얼굴은 이 세상 사람 같지 않게 청초하다. 아름답기로 말하면 세상에 소문 높은 그녀지만, 그의 옥 같은 피부밑에는 더운 피가 돌기를 그친 모양으로 보이며 인정도 번뇌도 다 식어 버린 것같이 싸늘해 보였다.
그것은 유화 부인이 본시 청초하기도 하거니와 이제 나이 사십이 된 것에다 달밤에 보는 것이기에 그렇지만 실상은 근심으로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너희들은 다 물러가거라. 다시 부르지도 않을 터이니 마음 놓고들 자라.』
유화 부인은 시비들을 물렸다.
주몽은 평상과 다른 어머니의 태도에 약간 근심이 되었다.
비록 곰과 범이 한꺼번에 덤벼들더라도 눈도 깜짝 아니 할 나이에다 담력을 가지고 있지만, 주몽에게도 숨은 슬픔과 숨은 근심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선선하니 방으로 들어 가자. 조용히 할 말이 있단다.』
유화 부인은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