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지인과 인터넷 메신저로 이런저런 소식을 주고 받다 돈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봉지냉면을 먹어도 될거 같으면 돈 안벌어도 되고, 굳이 우래옥에서 냉면을 먹어야겠으면 돈 벌어야한다고. 자신의 사촌동생이 일본 료칸에서 휴가를 보내고 온 이후에 이래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더라고.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옛 말이 있다. 왜 꼭 개처럼 벌어야하는가. 정승까지는 아니라도 사람답게 벌어 사람답게 쓸 수는 없는가. 이것이야 말로 천민자본주의가 아닌가.
갈비집에서 나올때 온 몸에 밴 고기냄새처럼, 천민자본주의의 습성은 우리 몸 곳곳에,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배어있다. 고기냄새를 지우듯 열심히 외국 명품으로 몸을 휘두르고 살갗을 덮어보지만, 이 정도면 나도 천민아닌 귀족인가, 안심한 중에 툭, 툭 튀어나오는 민낯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연민과 조롱에 소름이 돋는다.
외국에서 살다 가끔 한국에 들어가서 와인 애호가들과 가끔씩 와인을 마실 때가 있다. 와인과 사람, 순간에 집중하고 싶은 그 순간마저도 돈이라는 숫자와 권력을 차마 놓을 수가 없는 소수의 몇몇이들의 천성이 지저분한 백색소음처럼 깔린다.
이 와인은 몇십만원 짜리, 비싼 보르도 그랑크뤼, 이 잔은 어디꺼, 이거는 얼마.
와인과 담소 대신 와인 이야기로 둔갑한 왁자지껄한 자기자랑, 정확히는 자기 돈자랑이 얼마간 계속된다. 비싼 잔과 와인은 비싼 “나”가 되고 비싸다는 건 고급진거다. 고급진 내가 되기 위해, 필요하다면 내 영혼의 비천함과 천박함까지 씻어내릴만큼의 비싼 와인을 소맥 폭탄주처럼 벌컥벌컥 몇 병이든 들이킬 수도 있다.
중국 갑부들의 천한 고가품 소비를 고까워하면서 그들의 행태를 곧잘 비웃는 우리들. 그러나 그들과 당신들의 차이가 무엇인가. 돈이라면 선과 악의 구분없이 미친듯이 달려들어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이들, 그리고 영혼의 허망함과 가난함을 고급 명품으로 덮으려는 안타까운 발버둥...
한국 와인 애호가들의 일부는 와인의 레이블에 집착하듯 값비싼 고급잔에도 집착한다. 마치 와인은 반드시 비싼 잔에 마셔야 맛이 나는 마냥. 사실 와인을 담는 잔이 와인을 열어주고, 향기를 모아주므로 와인을 감상하는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엉덩이가 넓고 주둥이가 좁으며 와인을 휘돌려서 휘발성의 향기 분자들을 끌어낼 공간이 있는 잔이면 와인을 음미하는데 충분하다.
기십만원이 넘는 커다란 크리스탈잔이어야 와인이 더 맛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끔씩 향의 강도가 강렬하지 않은 섬세하고 은은한 향이 멋인 와인을 지나치게 큰 잔에 담아내어 구 와인 고유의 멋을 감사하기 힘들때가 종종 있다.
와인을 담는 잔보다, 영혼이 더 고급인 사람이 되고 싶다. 싸구려 자아도취에 취한 건배, 찰나에 부딪혀 울리고 끝나는 허망한 값비싼 크리스탈잔들의 소리보다, 진정 영혼의 울림이 아름다운 이가 되고싶다. 그리고 그런 이들과 감사한 마음으로 와인을 나누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