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환 감독ⓒ MBC
"배우들도 많이 목말라 있었던 것 같습니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가는 그 시민들의 마음으로. 김윤석씨께서 그런 비유를 들면서 얘기를 해주셨는데, 우리의 재능을 더해서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보자."
1일 방송된 < MBC 스페셜> '당신의 1987'편에 출연한 영화 < 1987>의 장준환 감독은 이런 표현을 썼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가는 그 시민들의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즉, 민주주의에 목말라 있던 배우들, 오달수를 비롯하여 '자발 출연', 즉 어떤 배역이라도 달라며 흔쾌히 출연해준 배우들이 다 그런 케이스였다는 뜻이다. 실제로 몇몇 배우들은 < 1987>의 시나리오를 읽은 직후였던 재작년,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30년 전 그날의 광장처럼, 시민들이 광장에 모였습니다. 촛불은 영화 1987을 개봉하게 한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관객들은 30년 전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모습에서 지난 겨울 자신의 모습을 만났을지도 모릅니다."
영화 속 윤상삼 기자 역을 맡은 배우 이희준의 내레이션처럼, 그렇게 < 1987>은 '촛불혁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작품이 됐다. 광화문의 촛불이 없었다면, 영화는 개봉이 불투명할 수도 있었다. 그런 시대였다. '블랙리스트'가 횡행했으며, 정권에 찍힌 배급사는 '우파 영화'를 제작/배급할 수밖에 없었다. '촛불혁명'이 없었다면, < 1987>은 대선정국 한 복판에서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장준환 감독 이하 제작진 역시 그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고 박종철 열사의 누나 박은숙씨는 "시국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상영이 못 됐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감독에게 들었다"며 "괜찮다고 했다"고 영화 완성 전 뒷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 1987>의 캐스팅과 크랭크업 소식이 전해졌을 때, 세간에서 들려왔던 "박근혜 정권 하에서 이런 소재의 영화를?"이란 놀라움과 크게 다를 것 없던 반응이었던 셈이다.
그랬던 영화 < 1987>이 지난달 28일 관객 수 700만을 돌파했다. 작년 12월 개봉, 상영 한 달을 막 넘긴 시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각계각층에서 단체관람이 이어지며 장기 상영이 이뤄낸 결과였다. < MBC 스페셜> '당신의 1987'편은 그렇게 영화 < 1987>를 통해 돌아보는 '1987년 6월 항쟁'의 기억과 현재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광장의 촛불, 영화 < 1987>의 길을 열다
"저희 어머니도 예전에 항상 하셨었던 말씀이 (학생운동은) 뒤에서 하라고…." (배우 강동원)
"그러게요. 뒤에서 하라 그러지 말고 그냥 집으로 데려다 놓았어야 했는데..." (고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
2017년 4월, 광주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된 이한열 열사 앞에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와 나란히 선 배우 강동원은 쑥스러운 듯 위와 같은 농담을 건넸다. 시나리오가 완성되기 전에 출연을 결정했다는 강동원은 아마도 과거 한국의 대학생들이 들을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흔한' 당부로 분위기를 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담담히 그 농담을 받아주던 배은심 여사의 대답은 절대 흔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도 예상 못 한 대학생 아들의 죽음은 비통함 그 자체였을 뿐 아니라 본인은 물론 가족 전체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박종철 열사에 이은 이한열 열사의 죽음은 한국 현대사 속 민주주의의 도도한 흐름을 바꿔 놓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 MBC 스페셜> '당신의 1987'은 박종철 열사의 희생에서 비롯된 그 '역사'와 '사람'의 변화를 담고자 했다. 열사와 영화 < 1987>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기억과 소감을 담은 것도 그래서였다.
▲영화 < 1987 > 관람 후 장준환 감독, 배우 김윤석, 강동원과 함께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문재인 대통령. 1일 방송된 '당신의 1987'편도 이 장면을 놓치지 않고 화면에 담았다.ⓒ 청와대
"저도 이제 50이 넘었는데, 제 나이 정도 대가 당시 어머니 (나이)…. 사실 어머니는 좀 더 젊으시더라고요. 40대 후반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낳은 자식이 이런 일로 사경을 헤매고 그런 상황이 된다고 생각하면, 정말 어떻게 나라면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저는 장담 못 할 거 같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30년 동안 그렇게 살아오신 걸 보면 정말 존경스럽죠. 대단하신 분 같아요. "
연세대 86학번이자 사건 당시 연세대 정문 앞에서 머리에 최루탄을 맞은 이한열 열사를 부축했다던 박남식씨는 배은심 여사에 대해 이렇게 털어놨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 그의 어머니는 '투사'로, 대학생들의 어머니로 거듭날 수밖에 없었으리라. < MBC 스페셜> '당신의 1987'은 배 여사와 같은 상황을 겪어 내야 했던 이들의 다채로운 증언을 들었다.
영화 속 하정우가 연기한 당시 최환 검사, 박종철의 시신을 처음으로 본 오연상 의사, 박종철의 죽음을 세상에 알렸던 신성호 기자, 황열헌 기자, 유해진이 연기한 인물인 한재동 교도관, 그리고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씨와 누나 박은숙씨, 박 열사의 고등학교 동창들도 카메라 앞에 섰다.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고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하는 이들의 인터뷰와 과거 화면으로 구성됐듯, < MBC 스페셜> '당신의 1987'편의 구성 역시 영화 장면과 영화 제작 전후, 그리고 실제를 망라하는 한편 영화에 등장한 주요 캐릭터들의 실제 인물과 박종철, 이한열 열사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로 채워졌다. 여기에 더해 1987년 전후 실제 뉴스 화면들로 구성, 풍성함을 더했다. 과거 시사교양 다큐멘터리의 '명가'로 불렸던 MBC의 부활을 알리는 '웰메이드'한 완성도를 자랑했다고 할까.
▲< MBC 스페셜> '당신의 1987'편 방송 장면.ⓒ MBC
영화 < 1987>과 '새' MBC와의 만남
"(민주화 운동을 하다 희생되신 분들의) 덕 보고 산 것 같은 느낌이죠. 저는 (그분들처럼 목숨 걸고 민주화 운동을 할) 자신이 없거든요, 사실은.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 김종수는 연기에 임했던 기억을 이렇게 털어놨다. 아마도 영화에 참여한 이들, 혹은 그 시대를 공유했고, 그 시대에 빚을 졌다는 생각하는 대다수 이들도 그러한 '덕'과 어떤 부채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신의 1987'편 전체의 방향이 사실 그러한 경외감과 부채감으로 이뤄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81년 생이자 아직 30대인 강동원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내가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게…. 많은 빚을 지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고,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심정으로 참여했다."
이미 < 1987>을 둘러싼 실존 인물들과 실제 사건들은 영화의 흥행과 함께 많은 언론들이 앞다퉈 다뤘다. < MBC 스페셜>은 그 종합판과도 같았다. '촛불'과 '부채감', 그리고 어떤 진심어린 '존경'을 담은. 비록 흥행 영화를 경유하긴 했지만, 정상화 이전까지 MBC에선 결코 다룰 수 없었던, 금기시 됐던 소재였다고 할 수 있다.
영화 < 1987>과 < MBC 스페셜>의 만남은 그런 점에서 '촛불혁명' 이후를 상징하는 방송 다큐라 할 만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던 이들을 '함께' 기억하고자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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