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물리학 / 김인육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이 시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드라마 도깨비에 나와 화제가 되었던 시예요. 나에 대한 소녀의 질량이 얼마나 거대하길래, 지구보다 더 큰 스케일의 중력으로 나를 당기는 걸까요. 발상이 참 재밌죠? 질량과 중력 이야기를 가져와 사랑에 빠진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대상(만유인력과 사랑)을 하나로 엮어 내는 것. 그것이 이 시를 그토록 아름답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요.
흔히 인터넷에서 장난스럽게 이과생 문과생 얘기가 나오면 '이과 망했으면' 하는 얘기와 함께 인문학적 지식도 없고, 차가운 심장에, 수학 계산에만 집착하는(?) 그런 이미지로 그려질 때가 있어요.
이과적 감성의 예술 작품들을 몇 편 모아 봤어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대상이 하나로 엮어질 때 아름다운 법이니까요.
봉인된 지도 / 이병률
지구와 달의 거리가 지금보다 훨씬 가까워
달이 커보였던 때
일년은 팔백일이었고 하루는 열한 시간이었을 때
덫을 놓아 잡은 짐승을 질질 끌고 가는 당신,
당신이 낸 길을 없애려 눈은 내려 덮이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얼어붙은 날이 있었다
다시 얼음 녹으면서 세상은 잠시 슬퍼지고
그 익명의 밤은 다시 강처럼 얼고
언 밤 저편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듯 강가에 모여 불을 피우자
밤 이편의 사람들도 강 건너를 걱정하느라 불을 피웠다
그 어두운 밤 서로를 생각하고 생각하느라
당신은 그만 손가락을 잘랐다
지구와 달의 자리가 가까워 달이 커보였던 때
일년은 오백일이었고 하루는 열여섯 시간이었을 때
당신은 나를 데리러 왔다
신(神)과의 약속 발설할 것 같지 않던 당신은
지금 그 시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백스물 아흔 여든두 살 쭈글쭈글한 얼굴로 돌아가자 말했다
허나 내가 지켜야할 약속은
검고 고요한 저 소실점을 향해 가는 일
달과 지구의 자리가 멀어져 달이 작아 보일 때까지
일년은 삼백육십오일이고 하루는 스물네 시간일 때까지
@yoon님이 하루는 짧고 날은 많았던 지구의 1년에서 자세히 설명해 주신 것처럼, 과거에는 하루가 몇 시간 되지 않았고 일 년은 더 많은 하루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달과 지구의 거리는 훨씬 가까웠고요.
슬픔과 이별에도 스케일이 있다면 이건 분명 천문학적 스케일의 슬픔이고 이별일 거예요. 일 년은 팔백일이었고 하루는 열 한 시간이였던 30억 년 전에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일.
...(전략)
늘 깨어 있고만 싶어
모든 중력을 거슬러
날 더 괴롭히고 싶어
더 많은 허전함을 내게
(후략)...
'늘 깨어있고만 싶어'. 잠을 거슬러 깨어있고 싶은 마음을,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다는 말로 표현했어요. 다른 어떤 표현보다도 더 와닿을 것 같아요. 절대로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인 중력을 거스를 만큼이나 깨어있고 싶다는 그 마음.
그렇다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는 무엇일까? 의식과 무의식은 이분법으로 나누듯이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다. 두 세계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인간의 기억과 경험들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의식의 세계로, 의식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서로 왕래 한다. 다만 외부의 자극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에 있던 것들이 의식의 세계로 떠 오르게 된다. 작가 이이립에게 이를 공진(resonance)으로 보았고, 그러한 공진은 작품의 영감으로써 다가온다. 공진의 사전적 의미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진동이나 신호를 통해 어떤 특정 주파수의 진동이나 신호가 강해지는 것’ 이다. 즉 무의식 속에 부유하고 있던 희미한 오래된 기억이 외부의 자극이나 특정한 상황에 마주쳤을 때, 의식의 세계로 부상하게 된다. 하지만 침전 되어 있던 무의식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그것들이 무질서하게 섞이면서 여태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낸다. 이이립은 공진을 통해 만들어진 무의식의 기억들이 의식의 세계로 나오는 찰나의 형상들을 캔버스에 표현하고 있다.
물리학에 공진 현상(Resonance)
이라는 게 있어요. 모든 물체는 각자의 고유 진동수가 있는데, 이 진동수와 같은 진동수로 진동하는 물체가 다가오면 두 물체의 진동이 공명을 일으켜 증폭되는 현상이에요.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이 아주 약한 바람에도 크게 흔들리거나, 초속 50m의 바람에도 멀쩡하게 지어진 다리가 그에 훨씬 못 미치는 바람에 무너져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으신가요? 모두 공진 현상에 관한 얘기에요.
화가 이이립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 무의식 속에 부유하던 기억들이 의식의 세계로 떠오르는 것을 이 공진
으로 생각했어요. 이런 작품들을 모아 2012년에는 전시회 '공진'을 열었었답니다.
소수는 오직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누어진다. 소수는 모든 수가 그렇듯 두 개의 수 사이에서 짓눌린 채, 무한히 연속하는 자연수 안에 고유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다른 수보다 한 발 더 앞서 있다. 소수는 의심 많고 고독한 수다. 그 때문에 마티아는 소수에서 경이를 느끼곤 했다. 때로는 소수들이 실수로 그런 수열에 놓여, 목걸이에 꿰인 진주들처럼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때는 소수 역시 다른 평범한 수들처럼 되고 싶었는데 어떤 이유에선가 그럴 수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두번째 생각은 특히 잠들기 전, 스스로를 기만하기엔 마음이 너무 느슨해진 야음을 틈타 혼란스럽게 엉켜드는 상념들 사이로 스쳐가곤 했다.
대학 1학년 때 마티아는 소수 가운데 좀더 특별한 수가 있다는 걸 배웠다. 수학자들은 그들을 '쌍둥이 소수'라고 부른다. 쌍둥이 소수는 근접한, 거의 근접한 두 수가 한 쌍을 이루는데, 그 사이엔 항상 둘의 만남을 방해하는 짝수가 있다. 11과 13이라든가 17과 19, 또는 41과 43 같은 수들이 그렇다. 인내심 있게 계속 세어나가면, 이 쌍둥이 소수들이 점점 희소해지는 걸 발견하게 된다. 오직 기호로만 이루어진 고요하고 규칙적인 세계에서 길을 잃은 채 더욱 고립된 소수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 그때까지 만난 쌍둥이 소수들은 우연의 산물이며, 결국 그들의 진정한 운명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이 밀려온다. 그래서 더 세어볼 마음이 들지 않아 그만두려는 찰나 서로 꼭 붙어있는 한 쌍의 쌍둥이 소수를 만나게 된다. 수학자들 사이에선 계속 수를 헤아리다보면 언제나 다음 쌍둥이 소수가 나타난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비록 발견될 때까진 어디에 위치하는지 단언할 수 없지만.
마티아는 자신과 알리체가 그런 사이라고 생각했다. 외로이 방황하는 두 소수, 가깝지만 실제로 서로 닿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쌍둥이 소수.
파울로 조르다노, 소수의 고독 中
소수는 자기 자신과 1 외에는 어떤 수로도 나누어지지 않는, 태생적으로 외로운 숫자예요. 특히 쌍둥이 소수는 서로 숫자 단 한 개만을 사이에 둔 채 외로운 숫자들이죠. 가깝지만 실제로 서로 닿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두 주인공의 사이를 쌍둥이 소수에 빗대어 표현했어요.
위 책을 읽고 나서 저는 이 시인이 생각났어요. 영국의 퍼포먼스 시인(인 동시에 수학을 공부하는) Harry Baker의 'A love poem for lonely prime number(외로운 소수를 위한 사랑 시)'라는 작품이에요.
(한국어 자막을 틀고 보세요!)
어떤가요? 참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이과적' 동기를 집어넣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시, 노래, 그림, 소설... 장르에 관계없이 중력이니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니 하는 얘기가 들어가도, 나쁘지 않죠?
지금까지 살펴봤던 작품들은 다 예술 안에 과학이 들어있었다면, 과학의 형식을 빌려 나타나는 예술도 있어요(아래 동영상처럼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런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도 써 보고 싶네요!
언제나처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스팀해서 두고두고 간직할거에요 8ㅅ8.... 좋은 글이에요 (ㅠㅠ)...... 글 많이 써주세요 요나님 ㅠ.ㅠ............
앗....신난다님........이렇게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ㅠㅠㅠ 댓글이 정말 힘이 되네요ㅜㅜ!!
✈ 요나님 글이다! 요나님 글은 일단 읽고 보랬습니다 ㅎㅎ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ㅎㅎ
안녕하세요 스노우님ㅎㅎ 언제나 좋게 봐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해요!!!
글 잘보고 가요 저도 가끔 시를 쓸때 그안에 수학을 넣어서 써보고는 하거든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리자드님 :) 수학의 매력을 잘 알고 계시는군요 =ㅅ=!!
좋은 글 잘 보고갑니다 ㅠㅠ 문학에 이과적 감성을 넣으면 낯설면서도 매력적인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해루님!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팔로우 했어요!!
아름다운 글들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팔로우와 보팅은 필수겠지요?
자주 찾아오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들 쓰려고 노력할게요 :>
정말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
안녕하세요 @herohunt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문학적이면서 과학적인,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 보내세요 :)
Mein Koreanisch ist leider nicht gut genug um das zu verstehen :) :) :)
It's about relationship between art and science :) If my German was good, I would have written it in German....
이과적인 개념을 인문학적인 비유로 승화시키는 것들이 너무 멋있네요. 사실 자연과학과 인문학 모두 뉴튼 이전에는 철학이라는 하나의 범주에 속했으니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일만은 아닌 듯 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것들이 많아졌으먄 좋겠고, 물리학도인 요나님의 시도도 기대되네요 :) 너무 좋은 글 잘 봤어요 :)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쌍둥이 소수 얘기도 재미있네요. 이과랑 문과도 친해질 수 있어요. ^^ 앞으로도 재미있고 좋은 글 계속 부탁드려요.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앞으로도 좋은 글 쓰려고 노력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