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_주말, 오늘도 일을 합니다.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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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오늘도 집을 나와 원형도로 반바퀴 돌아 회사로 출근을 했습니다. 며칠째 야근을 하고 있고 주말도 예외는 아닙니다. 읽던 책은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채 책상 위에 놓여 있고 침대 위의 이불은 늘 어지럽혀져 있습니다. 일을 합니다. 그저 일을 하는 것이 제 일과의 전부입니다.

이곳은 제가 좋아하는 것을 보기 힘든 곳입니다. 숲도 없고, 카페도 없고, 식사를 할만한 곳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가끔 찾아오는 고양이 가족이 있긴 한데 날씨가 추워서인지 요즘은 보이질 않습니다. 차가 없이 움직이기엔 불편한 최악의 장소입니다. 하지만 차를 타고 조금만 밖으로 나가면 아파트가 숲처럼 많습니다. 사람도 많습니다. 큰 도로를 둘러싸는 빌딩엔 식당과 카페, 병원, 미용실 모든 게 들어있습니다. 멀리 움직이지 않아도 일과 삶을 유지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일하며 돈 벌고, 쓰기에 실용적인 완벽한 장소에 살고 있습니다.

작년 봄 하동에서 봤던 풍경이 생각납니다. 넓게 펼쳐진 들판과 지리산 자락 풍경을 앞에 두고 누마루에 앉아 마셨던 커피와 막걸리, 비가 온 뒤의 습한 공기, 사색할수 밖에 없는 장소였습니다. 제가 살던 곳에선 볼 수 없던 선명한 밤의 색, 별의 빛도 기억이 납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지리산에 머물면 지혜로워 진다는 말을 조금 이해 할 것 같았습니다. 그곳은 우리가 좋아하는 산책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정도 크기의 행복이라면 이곳에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지났습니다.

산책이 끝날 무렵 다시 돌아갈 생각에 실망스러웠고 두려웠습니다. 집으로 그 단순하고 완벽한 편리함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열심히 돈 벌고 아껴쓰자 마음 먹었습니다. 먼 미래든 가까운 미래든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란 생각들었습니다. 그리곤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날들뿐입니다. 하지만 언젠간 그곳에서 당신과 지낼 수 있는 날이 올거라 생각합니다. 산책과 누마루에 앉아 보냈던 그 시간이 그립습니다.

회사를 나와 원형도로 반바퀴 돌아 집으로 퇴근했습니다. 초콜릿을 한입 물고 달콤 씁쓰름한 맛을 음미하며 하루를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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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근로시간 단축이라고 말이 많지만 잔업비없는 잔업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근로. 법말고 진짜 현장에서 근로시간을 제대로 지키면서 근로자를 고용하는지 실사좀 제대로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하루 고생많으셨습니다... 토요일인데... 이제라도 편안한 휴식 시간을 가지시길 바래봅니다.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