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바보...??다.
(1)
외출로 예정된 일요일. 광화문에 갑작스러운 시위가 일어나서 '외출' 대신 철야 근무를 하게 됐다. 나는 열 받았다. 친구와 점심 약속도 잡혀 있었는데. 친구가 내게 짜증을 낸다. 친구에게 할 말이 없다. 일요일인데... 일요일은 다 같이 쉬는 날이 아니던가. 젠장.
A 노조원 네 명이 세월호 천막 옆에 솟아있는 광고탑에 올라갔고, A 노조원 백 명이 광고탑 앞에서 돗자리를 펼쳐놓고 시위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우리 부대는 A 노조의 돌발 행동에 대비, 대응하는 역할을 맡았다. 유유자적한 일요일 밤. 우리 부대는 밤을 지세우며 뻗치기 근무를 해야 했다. 나는 A 노조원이 미웠다. 내 뇌가 이분들을 미워하면 안 된다고 나를 구박하지만 내 마음은 뇌를 무시한다. 짜증 난다. 내 외출과 잠을 뺐은 사람들이니까.
이분들이 광고탑에 올라가고, 광화문 대로에 돗자리를 펼치는 것은 극단적인 선택이다. 광고탑에 올라간 네 명은 발이 땅에 닿자마자 감옥에 갈 것이고, 본 시위를 주도한 간부들도 '집시법,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감옥에 갈 것이 분명하다. 이분들은 생존을 위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하지만 이분들에게 돌아올 미래는 감당 못할 벌금과 오랜 옥살이일 것이다. 아마도... 내가 살아왔던 대한민국에서는 말이다.
나는 내 눈앞에서 목숨을 내놓고 시위를 하는 노동자의 고통을 느껴보려 애쓴다. 이들이 밥벌이를 하지 못하면 혼자 굶는 게 아니다. 가족도 굶어야 한다. 이들이 짊어진 가장의 무거움이 내 목 밑까지 내려온다. 내가 이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고민하다 멈추고 만다. 포기한다. 내 머리가 아파지기 때문이다. 내 머리는 빨리 잠이나 자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해진다.
졸음을 참으며 아슬아슬하게 근무를 서고 있다. 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내 귀에 내리꽂힌다. "괜찮아. 아빠 걱정 안 해도 돼. 여기는 별일 없어." 아빠는 딸과 통화하고 있는 거 같았다. 딸에게 웃으면서 걱정 말라는 아빠의 따스한 목소리가 내 가슴을 짓누른다. 도대체 뭐가 괜찮다는 거지? 나는 내 눈앞에서 웅크리며 통화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오늘, 아버지는 아스팔트 위에서 침낭을 덮고 새우잠을 자야 한다.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아스팔트 위에서. 개미와 각종 벌레가 지나다니는 아스팔트 위에서 말이다. 게다가 4월은 밖에서 잠을 자기에는 추운 날씨다. 추운 새벽에 아스팔트 위에서 새우잠은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쑤신다. 특히 허리가 아프다. 아, 치질에 걸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내가 경험자라 잘 안다. 자고 일어나면 세상만사가 짜증 날 거다. 아침 햇빛에 눈물을 글썽거리게 될 거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 짓을 내일도 반복해야 한다. 모레도. 일주일 뒤도. 어쩌면.. 한 달.. 일 년 뒤도... 도대체 뭐가 괜찮다는 거지?
아버지는 딸에게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인가? 춥고, 배고프고, 아프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인가? 아빠를 향한 딸의 걱정과 사랑이 필요할 때라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인가? 아버지 노릇하기 만만치 않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인가? 아버지는 바보다. 정말.
(2) 2017.05.08(어버이날)
D가 광화문 광장에서 마지막 유세를 한다. A 노조가 D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광화문 광장을 향해 시위행진을 한다. 우리 부대는 A 노조가 광화문 광장에 오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맡았다. 나는 주어진 역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A 노조가 광화문 광장에 갈 권리를 박탈당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들을 막아야 하는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나는 사유를 포기했다. 그리고 A 노조를 막기로 결정했다.
광화문 광장 100m 앞. A 노조 백 명과 의무경찰 육백 명이 마주 보고 서있다. 노조원과 의무경찰은 불꽃튀는 눈싸움을 한다. 의무경찰이 인간벽으로 인도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인간벽에 당황한 노조원 백 명은 수군거린다. 그리고 하나.. 둘... 셋....?!?! 노조원 백 명이 제각각 뛰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차도로, 누군가는 반대편 인도로, 누군가는 골목길로 뛴다. 의무경찰도 따라 뛴다. 나도 뛴다. 초등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다 같이 술래잡기하는 꼴이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어리둥절. 노조원과 경찰의 술래잡기를 비웃는다.
술래잡기 게임 중간에 의무경찰은 대열을 정비한다. 전략을 세웠다. 6인 1팀을 만들고 1팀당 노조원 한 명을 붙잡으라는 명령이다. 팔 다리를 잡고 인간 감옥을 만들라고 한다. 명령을 듣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거 인권 침해 아닌가? 이들을 감금할 법적 근거가 있는가? 여러 가지 생각이 지나쳤지만, 나는 사유를 포기했다. 하라는 대로 했다.
우리 팀은 노조원 한 명을 붙잡았다. 붙잡힌 노조원은 평범한 아버지였다. 의무경찰 아들 여섯 명이 한 아버지를 몰아붙였다. 아버지의 양 팔을 아들 여섯 명이 본인들의 팔과 묶어버렸다. 아들들은 아버지를 둘러안았다. 아들 여섯 명은 사람 감옥을 만들었다. 아버지는 온 힘을 다해 아들 여섯 명을 밀쳤다. 필사적으로 감옥을 빠져나가려고 저항했다. 머리로 아들의 복부를 밀치기도, 손으로 아들의 멱살을 쥐고 흔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저항은 미약했다. 아버지가 온 힘을 다해 반항을 해도 혈기왕성한 20대 아들 여섯 명을 제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버지는 반항을 멈추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들들이 만든 감옥 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아버지는 딸에게 온 카카오톡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아빠는 잘 지내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딸의 프로필 사진을 확대해서 들춰보고 웃는다. 해맑게. 나는 느꼈다. 아니, 확신했다. 이 아버지는 제정신이 아니라고. 아버지들은 미쳤다고.
내 무릎에 등을 기댄 아버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고통은 서로 나누는 거라고. '아버지'라는 가면을 쓰고 혼자 모든 고통을 짊어지는 사람은 바보라고. 바보짓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추신>
나는 이 글을 마무리하고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갑작스러운 더위에 일이 힘드실 거 같아서. 아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조금 힘이 생길 거란 기대를 품고 말이다. 나는 아빠에게 안부를 물었다. 아팠던 허리는 괜찮냐고. 병원 꾸준히 다니고 있냐고. 아빠는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안다. 아빠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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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팔로우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