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 Shaped-Box 하트 모양 박스 12화

Heart Shaped-Box

박스의 설계자들 12화

일영

일영은 바닥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몸을 낑겨 들어갔다.

' 이 아이는 대체 누굴까. 대위님의 친척?'

여자아이는 등에 상처자국이 가득했다.
곳곳에 보이는 핏자국은 보는 것 만으로도 아파올 지경이었다.

일영은 바닥에 반쯤 쓰러져 있는 아이의 상체를 일으키고 등을 몇번 두드렸다.
" 얘, 일어나봐. 어떻게 된 거야?"

아이는 몽롱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일영을 보더니 여자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아이의 입을 막은 천을 풀었다.

" 경찰에 신고 좀 해주세요..."

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 어떻게 된 거니?"
" 어떤.. 되게 키 큰 이 집 아저씨가.. 어제 채팅으로 집 나갔다니까 재워준다고 해서..흐으으.."

아이는 흐느끼며 말을 이어나갔다.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일영의 안색은 창백해져갔다.

'아무래도 규호 대위님을 말하는 것 같은데..'

" 너 아저씨한테 무슨 잘못 했었니?"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일영은 믿을 수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누구보다도 아끼고 높이 평가하던 분이 아닌가.

" 널 데려오고 때린 아저씨가..이 집 주인 아저씨라고?"
" 네.. 제발 신고해주세요..흐으.."

아이는 너무 울어서 목이 간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일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사교성 좋은 규호 대위와 친한 장교들은 많았고, 그를 지도력 있는 유능한 인재로 눈여겨보는 이들도 많았다.

' 신고를 해서 그분들이 날 껄끄러워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있어? 물론 도덕적인 분들도 있긴 하지만..'

일영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아이는 불안한지 계속 일영의 눈치를 보았다.
" 아저씨.. 신고해주실거죠..?"

' 애초에 가출을 한 네 잘못이야.'
그는 속으로 자신을 방어했다.
아이의 사연따위 알 게 뭔가.

' 내 앞길 말아먹느니, 이번 한 번만 눈 감자.'

그는 결심한 듯 아이를 보았다.
" 잘 들어. 이 집 아저씨는 이틀 후에 집에 없을거야. 그 때 도망가."

' 어차피 휴가 곧 끝날 건데 별 일 있겠어.'

아이는 잠시 벙찐 표정으로 일영을 쳐다봤다.
"네?"

일영은 아이의 입을 막았던 천을 다시 들었다.
" 아저씨! 아저씨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아악!!"

일영은 애써 아이의 울음을 무시하며 천을 묶었다.
'죽이지는 않겠지, 설마.'
대체 규호는 왜 이런 짓을 한 걸까. 그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이의 표정은 절망과 분노가 뒤섞여있었다.
일영은 눈을 감았다. 보고 싶지 않다..
그는 조용히 일어나 창 밖을 빠져나갔다.

잔칫상으로 돌아온 일영은 규호를 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를 보면 창고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가 생각날 것 같아서 일영은 다른 대위와 중위들을 보며
방금 일어난 일을 잊으려는 듯이 술을 한 잔 두 잔 들이켰다.

일영은 안간힘을 써서 평소처럼 보이려 했고 규호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어느덧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그는 규호의 집을 나가며 깊고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창고를 바라봤다.
' 흐으윽..'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를 따라오는 듯 했다.

일영은 왠지 그 소리가 자신을 평생 따라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급히 발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