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는 파르네세 헤라클레스라는 조각품이 있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리시포스가 만든 조각상을 글리콘이 모각한 작품이다. 본래 조각상은 로마의 카라칼라 욕장에 세워져 있었다. 후에 방치됐던 것을 파르네세가 나폴리로 옮겨 오자 파르네세 헤라클레스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쉬고 있는 모습의 헤라클레스는 당시 이곳을 찾은 로마인들에게 편안한 쉼을 선사해 주었을 것이다. 헤라글레스가 뒤로 돌린 오른손에는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 세 알이 들려 있다. 그리고 왼손으로 감싸고 있는 것은 올리브 몽둥이와 그가 잡아 죽인 네메아의 사자 가죽이다.
카라칼라 욕장에서 가져온 또 다른 조작품으로는 파르네세의 수소와 플로라 파르네세가 있다. 파르네시나 빌라 전시관에는 비너스 칼리피지라는 작품이 있다. 프랑스의 샹숑가수 조르쥬 브라상은 이 작품을 본 후 아름다운 엉덩이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 외에 파르네세 궁전의 또 다른 조각품으로는 안토니우스 파르네세, 힙파르코스를 살해한 하르모디우스와 아리스토케이톤의 대리석상,
24개의 유방(황소의 고환)을 달고 서있는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여신상, 가니메데스와 독수리의 대리석상, 디오메데스의 몸을 입은 루시우스 베루스, 에로스의 대리석 상 등이 있다. 황제의 갤러리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하드리아누스 황제(위 사진) 등의 두상과 네로 황제의 어머니로 네로에게 살해 당한 소 아그리피나의 조각상이 있다. 헤라쿨라네움에서 출토된 로마의 귀족 ‘파피리’의 유물 중에는 주자, 아테나, 앉아 있는 헤르메스가 있다.
이집트 전시관은 보르자 추기경의 컬렉션 등 여러 수집가들에 의해 18-19세기 사이에 수집된 것이다. 그 중에는 ‘아기의 엄마’라 불리는 오래된 미이라가 있다. 모자이크 작품으로는 폼페이에서 출토된 여인의 초상과 오리, 물고기, ‘포세이돈과 암피트리테의 전차 결혼식’ 등의 작품이 있는데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알렉산더 대왕과 다리우스 3세의 이수스 전투’를 묘사한 모자이크다. 길이 16피트 넓이 8피트의 이르는 거대한 모자이크 역시 폼페이에서 출토된 것이다.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이 세계적인 박물관이 된 것은 이곳에 비밀의 방이 있기 때문이다. 유물들은 모두 개방적이고 직설적인 성애 묘사가 많아 불쾌하거나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밀의 방이 공개됐을 때, 4 천 명 이상의 관람객들이 매일 몰려 왔다고 한다. 방에는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에서 출토한 선정적인 벽화와 거대한 남근 조각들로 가득차 있다.
유물들이 너무 외설적이어서 이탈리아 정부는 1848년 박물관에 비밀의 방을 만들었다. 1851년에는 출입구를 벽돌로 막고 고고학 학자와 관리 등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공개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일반인에게 공개한 것은 2000년 4월부터였다. 인간이 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된 것은 아담과 이브가 창조되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BC 1600 경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도 성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한 남편이 정부와 함께 침대에 있는 아내를 발견하고 둘을 함께 묶어 재판정까지 끌고 갔다는 기록이다. 5,000년 전 이집트인들도 메소포타미아인들처럼 성과 정신의 세계는 하나로 통한다고 믿었다.
기원전 264년경, 광기어린 전쟁을 시작으로 로마 제국은 끝없는 확장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이 기간 동안 도시 국가였던 로마는 세계적인 국가로 성장했고 인구도 급속도로 팽창했다. 폼페이가 폭팔하기 42년 전에는 ‘꼬마 장화’라는 별명의 칼리굴라가 로마의 제 3대 황제로 등극했다. 그는 매우 비정상적인 황제였는데 고열로 병을 앓은 후에는 더욱 미친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누이들과 근친상간을 맺었으며 궁정 안에 매음굴을 만들어 세금을 걷어 들이기도 했다. 이때 벌써 폼페이에는 9개의 목욕탕, 7개의 개인 섹스 클럽, 41개의 매음굴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인구 2만명의 리조트 도시는 8천 여명의 노예가 거의 모두 주인의 성적 노리개였다. 매음굴에서는 카사, 니카, 페비아, 포트나타, 재뉴어리아 등 가명의 여인들이 밤부터 새벽까지 손님들을 받았다. 그들은 유럽뿐만이 아니라 북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팔려 온 여인들도 있었다. 그 중에는 루 퍼키라는 남창도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매음굴 벽에서 발견된 이름이다. 로마인들이 받아 들인 그리스 신은 거대한 성기를 가지고 있는 프리아포스(Priapus)였다.
로마인들에게 남자의 성기는 행운을 가져다 주는 상징이었다. 로마 제국 장군이 개선식을 할 때도 전차 위에는 어김없이 성기를 매달아 놨었다. 폼페이에서 매음굴을 표시해 놓은 것도 바로 남자의 성기였다. 성기를 조각해 놓은 유물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목신(Pan)과 염소의 성교’를 묘사한 조각이다. 이것은 헤르쿨라네움에서 1752년에 발견된 것이다. 판은 이마 양편에 뿔이 달려 있는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동물의 모습을 한 가축의 신이다.
2,000년 전, 화산 폭팔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도시 폼페이와 헤라쿨라네움. 두 유적지에 가면 폐허만 볼 수 있고 발굴된 유물은 하나도 찾을 수 없다. 유물은 모두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폼페이 유적지와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을 방문하고 느낀 것은 ‘폼페이는 광란의 도시였다’라는 것이다. 지금도 세상에는 광란의 도시가 되기 위해 애쓰는 곳들이 많다.
18년 전,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의 ‘비밀의 방’이 공개되자 매일 4 천 명 이상의 관람객들이 몰려 왔다고 한다.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입구
힙파르코스를 살해한 하르모디우스와 아리스토케이톤의 대리석상
24개의 유방(황소의 고환)을 달고 있는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여신상
필멸의 인간 중에는 최고의 미남으로 알려진 '가니메데스와 독수리' (Ganimede con l’aquila)의 대리석상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랑의 신 '에로스의 대리석 상(Eros Farnese)
안토니우스 파르네세(Antinoo Farnese) 조각상
로마의 카라칼라 욕장에 세워져 있던 헤라클레스 조각상.뒤로 돌린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은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 세 알이다.왼손으로 감싸고 있는 것은 올리브 몽둥이와그가 잡아 죽인 네메아의 사자 가죽.
헤라클레스 조각상의 발과 발가락
파르네세의 수소(Farnese Bull)도 카라칼라 욕장에 세워져 있던 조각품이다
네로 황제에게 살해 당한 네로의 어머니, 소 아그리피나(Agrippina la giovane)
비너스 칼리피지(Venus Callipype) 조각상
조르주 브라상(프랑스 가수)은 비너스 칼리피지의 뒷모습을 보고 감탄할 만한 '아름다운 엉덩이'라고 노래했다
앉아 있는 헤르메스(Seated Hermes),
헤라쿨라네움에서 출토된 로마의 귀족 ‘파피리(Papiri)’의 유물 중 주자(Corridori)라는 조각품
이집트 전시관은 보르자 추기경의 컬렉션 등 여러 수집가들에 의해 18-19세기 사이에 수집됐다
세상에서 가장 힘 좋은 남자는?지구를 어깨에 메고 있는 아틀라스(Atlas), 1세기 작품
Faun의 집에서 발견된 BC 333년 알렉산더 대왕과 다리우스 3세의 전투를 묘사한 알렉산더 모자이크 작품. 잇소스(Issus) 전투는 기원전 333 년에 시작된 전쟁으로 Faun의 집이 지어지기 불과 150 년 전의 일이었다.
오리와 물고기, 포세이돈과 암피트리테의 전차 결혼식
2,000년 전에도 춘화(春畵)는 존재하고 있었다
성기를 들어 낸 모자이크(폼페이)
로마인들이 받아 들인 거대한 성기의 신, 프리아포스(Priap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