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무기력을 느끼며, 매일 샤워를 하며 자기 위로를 하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즐거움인 레스터 번햄. 어느날 그는 딸의 친구를 보고 잊었던 욕정을 품게 된다. 딸의 친구와 가까워지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목표가 된 그에게는 더 이상 두려운 것도 지켜야할 것도 없다. 자신을 옭아매던 현실에서 벗어나 한껏 자유를 느끼는 그에게 마침내 욕망을 달성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
사실 영화 <아메리칸 뷰티>는 겉보기에 성인 남성의 더러운 욕망을 보여주는 저질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다. 어떻게 감히, 딸의 친구를 보고 욕정을 품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 영화, 등장인물들을 분석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만큼 다양한 인물사를 담고 있는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인물 프랭크 피츠 대령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레스터의 옆집으로 이사온 프랭크 피츠는 해병대 출신 대령으로 엄격한 규율주의자이자 원칙주의자이다. 무엇보다도 동성애를 경멸하는 그는 아들인 리키에게도 그의 권위적인 태도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여기서 나의 의문을 야기한 부분은 그렇게 억압적인 아버지를 이해하는 리키였다. 절대로 반기를 들지 않고 아버지의 말에 순응하는 리키의 모습은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한 공포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너무 절박한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의 비위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모습이 오히려 설득력이 없다고 해야 하나. 심지어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오해하여 폭행을 행사한 아버지를 두고 집을 떠나는 순간에도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안위를 걱정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수상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야 그 수상한 감정의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아들을 내쫓은 후 레스터를 찾아간 프랭크는 한참을 울다 레스터에게 입을 맞춘다. 순간 깨달았다. 프랭크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용맹한 해병대 출신 대령인 자신이 남성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그는 엄격함으로 자신에게 이상적인 남성으로 변장하여 살아왔던 것이다. 리키는 그런 아버지의 본 모습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을 억압하는 아버지를 그런 슬픈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아픔을 가지고 있다. 겉보기에는 저질스럽기 그지 없는 행동들이 사실은 지독한 외로움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들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을 욕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