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이야기_ 악어와 악어새
고 과장과 임대리는 사무실 실내 유리창으로 밖에 누가 오는지 고개를 돌려가며 살펴본다.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복도에 아무도 없다는 확신이 들자, 둘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빙그래 미소를 짓는다.
“어, 어, 어 과장님...”
임대리는 특유의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과장과의 특별한 눈빛을 교환한다. 그리고 어정쩡한 자세로 뒤에 서서 두 명을 관찰하던 나의 양팔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당황한 나는 허우적거리는 낚시줄에 매달린 물고기 신세가 됐다. 잠시 후 의자에 앉쳐진 채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 둘은 서로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듯 보면 두명의 개구쟁이 악동 같아 보였다.
“도현아! 내가 이름 그냥 불러도 되지.”
임대리는 진지하게 낮은 어투로 말을 시작했다.
“네. 편하게 하세요...”
“휴우!, 원래 세상이 다 힘든 거야. 아직 젊으니까 다른 직장 알아봐도 늦지 않아. 여기 있을 땐 세상이 어떤지 배운다는... 그런 생각으로 편하게 지내고, 그렇지 않습니까 과장님?”
“음. 그렇지 편하게 지내. 젊었을 때 다른 직장에 가야지. 아니면 고생만 하다가 나중에 짤...” 고 과장도 인상을 쓰면서 생각해준다는 듯이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꼭 알아야될 얘기 하나 해줄게. 여기에 박부장 있잖아. 조심해. 응! 가까이하면 물린다? 여기서 별명이 박도사야. 아는 게 많아서 도사가 아니고, 도사견 할 때에 그 도사 알았지. 한 번 물면 죽을 때 까지 않 놓지.” 김 과장 표정이 어두워진다.
임대리 이렇게 말하더니 무엇인가 생각나는 듯 얼굴이 일그러지며, 혼잣말하듯 지껄인다.
“박부장... 아 그놈은 언젠간 내 손에 아주... 도현아 너도 한번 들어봐.” 임대리 주먹을 불끈 쥔다.
“지난번에 거래처 하나가 갑자기 거래를 끊은 적이 있었는데, 박부장이 나한테 거래처 관리 잘못했다고 지랄 지랄하는 거야. 사실은 내가 거래처에 단가를 너무 높게 주는 것 같다고 단가를 낮춰야 한다고 말하였거든, 근데 영업성과를 올려 보려고 무리하게 거래처에 가격을 올려 받은 거지. 그러다 막상 거래가 끊어지니까. 난리가 난거야.”
갑자기 옆에 있던 음료수를 따서 벌컥이며 들이켰다.
“근데 그 인간이 나한테 어떻게 했는 줄 알아? 그 거래처가 여사장 이거든. 나보고 몸을 바쳐서라도 다시 거래처를 따오라는 거야? 생각해봐 도현아, 이 약한 남자가 응?”
고개를 그덕였다. 정말 이해가 바로 된다는 눈빛으로 임대리를 봤다.
“거래처 여사장이 얼마나 색을 밝히는 난폭한 여잔데. 내가 가끔 일보러 그쪽 사무실 갈 때도 술 먹자고 하면서 얼마나 추근대는지.”
난 선배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거래처 여사장이 선배가 말한 그런 스타일이라면 임선배는 옷을 다 찢긴 채로 호텔방에서 아침에 우는 채로 발견될 수 있었다. 난 고개를 흔들었다.
대학다닐 때 내가 다니던 학과에도 그런 여자동기가 있었다. 체격도 남자와 크기가 비슷하고, 몸무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거의 70킬로는 넘는 체구에 배도 좀 나오고, MT때 밖에서 담배를 뻑뻑피면서 외롭다고 부르짓던 날카로운 그 동창이 생각났다. 동전이 남아서 커피라도 뽑아다 주면 오늘 저녁에 만나자고 하는 그 X! 괜히 얽히게 될까봐 되도록 멀리했다. 근데 놀라운건 졸업하고 바로 이듬해에 결혼을 했다는 것. 뒤에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남자가 마르고 연약한 사람인데 술먹고 업어 버렸다나 뭐라나.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능력인 것 같기는 한데.
“억! 그 거래처 내가 인계받은 곳인데. 어떻하지?” 머릿속에선 영화에서만 보던 채찍을 들고 혀를 날름거리는 여사장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난 침대에 묶인채 아침에 울고 있어야 되는건가? 임대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내가 박부장한테 잘못했다고 울면서 무릎 꿇고 매달렸거든. 그 여자는 안된다고. 근데 이 인간 나보고 사내자식이 울면서 징징댄다고 지랄하잖아. 내 중요한 거기를 짤르라나. 정말 남자로서 더 이상 추해지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서요?” 점점더 흥미를 더해갔다. 끝을 알고 싶었다.
“그래도 어떻게 계속 박부장 무릎을 잡고 매달렸지. 그런데 박부장이 내손을 확 뿌리치고 사무실을 나가는거야, 그 바람에 앞으로 자빠지면서 나 코피 났잖아. 쌍코피가 철철철 흐르는데, 지혈만 3시간 했어. 정말 그때 생각만 하면. 으윽” 임대리는 주먹을 꼭 쥐었다.
옆에 있던 과장은 그 얘기를 듣고 안타까운 듯 말했다.
“넌 그래도 잘리지는 않았잖아. 작년 여름에 창식이 생각해 봐. 창식이는 여자친구하고 유럽으로 여름휴가 간다고 얘기했다가, 박부장한테 미운털 박혀가지고 2달 만에 회사 그만뒀잖아.”
“네. 정말요!”
“응. 그래서 퇴직금 받아서 유럽 일주 갔다고 하더라구.” 고 과장은 말을 잠시 멈추고, 촉촉하게 젖은 눈빛으로 얼굴을 돌린다.
뭔가 생각난 듯 임대리 말을 잊는다.
“참! 과장님, 그때 다친 다리는 괜찮으세요.”
“뭐 그렇지. 휴∼” 고 과장은 뭔가 말하기 힘든 어떤 일이 있는 듯, 다리를 주물럭 거리며 한숨을 내쉰다.
“과장님. 그때 기억이 생생해요. 박부장이 그때 우리 부서 사람들 죽 일렬로 세워놓고 창식이 관둔 거 때문에 직원 관리도 못한다고 기압 주면서, 대표로 과장님 조인트를 깟잖아요. 무슨 군대도 아니고... 요즘은 군대도 그렇게 않할거에요.” 임대리 얼굴이 뻘개진 채 계속 말을 잊는다.
“참 어이가 없어서, 지금이 21세기예요. 과장님!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과장님도 애가 둘이나 있는 쌍둥이 아빤데... 저 정말 그때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경찰에 고발하려고 했어요!” 임대리가 이렇게까지 숨을 씩씩거리며 분을 참는다.
“됐어. 다 지난 얘기 갖고 뭘.”
그때 갑자기 박부장이 사무실에 나타났다, 특유의 고압적인 눈빛으로 무엇을 감시하는 듯이 주변을 훓으며, 고 과장 옆을 지나쳐서 부장실로 간다.
고 과장, 임대리는 지금까지 하던 뒷담화 모드에서 재빨리 변신을 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박부장을 보고 웃으며 손으로 크게 하트를 날린다.
박부장은 부장실 가던길을 멈추고, 핸드폰을 들고 통화를 시작한다.
“어 그래, 이번 방학에는 오기 힘들다고? 보고 싶어서 어떻해?”
“그래 그래 아빠가 한번 시간 내볼게. 근데 요즘 회사 일이 많아서 힘들텐데... 엄마한테도 잘하고, 속썩이면 안돼. 우리 딸?” 통화를 하며 박부장은 우리쪽을 다시 한 번 보더니 부장실로 들어갔다.
“하트 뿅뿅뿅! 부장님! 사랑합니다.” 부장실로 가는 박부장의 뒤통수에 대고 접대용 멘트를 던지며 연신 하트를 날리며, 임대리가 재빨리 동참을 원하는 눈빛을 나에게 보냈고, 얼떨결에 같이 사랑의 하트를 날렸다.
“사랑해요. 부장님!”
사무실 창밖으로 석양이 저물어가고 우리들의 하트는 금빛 태양을 가로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