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소설> 삶, 신과 죽음에 관하여 [01] 죽음

in #novel6 years ago (edited)

2098년 5월 2일

오늘 나는 죽었다.

내 나이 100세 정말 딱 내가 살고 싶은 만큼 살다가 죽었다.

빈말이라도 완전히 후회 없이 살다가 죽었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름 살만한 삶이었다.

봐라 이 온전한 정신을 나는 100살이 먹도록 남들 다 한 번쯤 걸린다는 치매도 걸리지 않았다.

죽음을 앞둔 노인이라기엔 정신이 매우 뚜렷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내 몸은 정말 말 그대로 산송장 그 자체였다.

이제 나는 내가 믿던 신이 예비해둔 천국에 가거나 지옥에 갈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마치 컴퓨터의 전원이 꺼지듯이 픽-하고 나의 정신이 꺼지겠지...

물론 나는 천국에 갈 확률이 매우 높았다.

나는 거의 확실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점점 나의 죽음이 느껴졌다.

미약하게나마 뛰던 심장이 멈춰가는 게 느껴졌고 호흡이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흐으으읍.. 후..."

나의 마지막 호흡이었다.

누워있던 내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주위에는 나의 가족들과 친구들(이미 죽은 녀석들은 빼고)이 나를 둘러싼 채 눈물과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소를 지은 아기와 눈이 마주쳤다.

아마도 내 손녀의 딸이나 아들일 것이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워낙 많은 증손자 손녀 심지어 고손자 손녀들도 존재하다 보니... 아무튼 참 잘생긴 게 나를 닮은듯싶었다.

나도 아기에게 마주 미소를 지어주고 싶었지만 얼굴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내 손녀로 추정되는 여인의 품으로 고개를 휙 하고 돌려버렸다.

나는 아쉬움을 느끼며 고개를 다시 돌려 천장을 보았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아... 죽는구나'

점점 정신이 흐려졌다.

마치 마취제를 투여한 듯 나의 신체에서 영혼이 떠나가는 듯 싶었다.

예전이었다면 그저 시시한 생각과 느낌이었겠지만 이 생각이 현실이 되자 문득 겁이 남과 동시에 설렘이 생겼다.

마치 치과에 처음 갔을 때 느꼈던 느낌과 비슷했다.

나의 시야는 점멸했고 결국 나는 정신을 잃었다.

픽 꺼졌던 나의 정신이 갑자기 또 픽하고 켜졌다.

그리고는 내 눈앞에 마치 파노라마 사진처럼 생긴 것이 옆으로 주르륵 움직이며 나의 과거의 모든 것들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과거 내가 읽고 보던 영화나 소설에서나 존재했던 그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고 있다는 게 너무나도 신기했다.

과거의 나는 웃고 있었으며 울고 있었고 슬퍼했으며, 기뻐했다.

괴로워했었고 외로워했으며 모든 것을 허무해 했으며, 공허해 했던 적도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 이미 나는 심정지 판정을 받고 죽음을 맞이한 상태일 것이다.

그렇게 나의 죽음을 보여주는 사진을 마지막으로 파노라마 사진이 멈췄다.

끝이다.

이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죽음을 맞이했는데 기대감이 들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죽기 전 내 모습을 한 채 마치 허공과 같은 곳에 떠있는 상태였다.

이제 천국에 갈 차례인 거 같은데... 흠....

나는 문득 이곳에서도 시간이 흐르나 궁금했다.

의식이 존재하는 걸 보니 분명 뭔가 있긴 할 것이다.

그렇게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자 내 앞에 매우 찬란하고도 강렬한 빛이 비치면서 한 인영이 나타났다.

그 인영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빛나는 인영을 바라보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빙고! 내가 허투루 살진 않았구나. 천국이라니 이거 너무 떨리는군. 드디어 신을 만나는 건가?'

나에게 신이란 절대적인 유일신 창조주 하나님 하나뿐이었다.

물론 살면서 몇 번 다른 신에게 혹한 적도 있었다.

예를 들면 사랑의 신이라던가 욕망의 신이라던가 크흐흐흠!... 아무튼 결국에는 하나님 하나만을 믿었다.

나의 하나뿐인 님 말이다.

나는 그 빛으로 이루어진 인영의 손을 잡은 채 마치 하얀 가루로 이루어진듯한 둥그런 포탈로 보이는 곳에 들어갔다.

그리고 강렬한 빛과 함께 눈을 떴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끝이자 시작이었다.

나는 훗날 이 사건을 두고 이렇게 적게 된다.

'종말의 시작과 태초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라고 말이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간단하고 명확한 진리에 기대어 존재해왔던 것이다.

<기억을 되짚어보는 노인의 일기장 어느 한 페이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