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in #poet6 years ago

너무 딱딱한 순자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 겨우겨우 숨을 크게 쉬며 순자를 떼어 버렸다. 희망을 기원하는 메시지와 함께 받은 시집을 펼쳤다. 나는 시집을 갈 수가 없다. 책 귀퉁이에 씌인 '문학과 지성'이란 문구가 나와는 요단강을 마주한 생과 사의 가름만큼 멀게 느껴진다.

책 앞모퉁이에 나열된 시인에 대한 설명과 무엇인가 명료하지 않은 넋두리와 같은 설명을 보면서 당연한 말을 너무 어렵게, 무엇인가를 기대하게 하는 인간의 감성에 대한 기대, 바람 그렇지만 어둡고 침울한 기분이 들었다. 책 표지를 다시 펼쳐보며 '인생이란 세상이란 기차역에 잠시 내렸다가 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같이 일요일에 읽기 딱인 책일까? 이런 기분과 나의 태생적 감성은 거리가 있는 듯 하다.

시집을 읽다보면 시인이 자주 쓰는 단어들이 있다. 죽음을 상징하는 물건, 포도, 나비, 우산, 과일, 여름과 겨울, 고개숙임이 그렇다. 화창하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과 풍성한 가을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생동감있는 여름과 음습하고 벌거벗은 겨울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듯 하다. 장자처럼 나비를 통해서 동경하는듯 하고, 서구의 신화처럼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포도도 거리감이 생기게 한다. 마치 화려한 나비를 수놓은 남계우의 그림에 우울한 먹구름을 얹어놓은듯 하다.

병풍이란 시를 읽다가 다시 시인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작년에 작고한 시인의 평범한 모습과 많지 않은 나이가 그렇다. 죽음앞에 쳐지 병풍의 시구와 덤덤한 작별인사가 서글프다. 인간이 죽을려고 태어났다기 보단, 죽음을 숙명으로 안고 태어났기에 기차역에 내리면 활기차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인은 나와 달라보인다.

운수좋은 여름과 같은 시를 읽다보면 얼마전에 본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와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오늘의 살아있음이 감사한 것인지 또 아쉬움인지 그 당신이 누구인지 참 복잡하다. '벌레가 나를 벌레적으로 생각하며 푸르러지는 오후'같은 구절을 보면 시인이 좀더 많은 삶의 즐거움도 간직한 삶이었기를.. 나는 저런 벌레를 사람의 입장에서 벌레적으로 바라보는 삶을 계속 살아갈 듯 하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은 없다. 기억의 기간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는지의 문제다. 말은 한 세대를 가고, 글을 천 년을 가고, 정신은 유구하게 흐르는 것이 인간의 성취다. 이렇게 보면 작가는 또 충분히 행복한 길을 걸어온 셈이다.9540735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