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빨간 장미와 레이스 숄
폴리애나가 존 펜들턴을 찾아간 지 일주일쯤 지난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이른 오후, 폴리는 티머시의 마차를 타고 부인회 위원회에 갔다. 세 시쯤 돌아왔을 때 그녀의 볼은 발그레했고 촉촉한 바람을 맞은 머리는 핀이 느슨한 곳마다 헝클어져 곱슬거리고 있었다.
폴리애나는 한 번도 이런 이모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어머나! 어머나! 폴리 이모, 이모에게도….” 폴리가 거실에 들어서자 폴리애나는 잔뜩 들뜬 목소리로 소리지르며 이모 주위를 뱅글뱅글 돌았다.
“뭐 말이냐, 요 이해할 수 없는 아이야!”
폴리애나는 여전히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이모도 그런 줄 몰랐어요. 이모도 몰랐는데 사람들이 그런 적 없으세요? 저도 가질 수 있을까요? 하늘나라에 가기 전에 말이에요.” 폴리애나가 귀 위로 곱게 뻗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며 말했다. “하지만 그때는 검은색이 아니겠죠. 이모는 검은색이라 정말 좋겠어요.”
“폴리애나, 도대체 무슨 말이니?” 폴리가 서둘러 모자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
“안 돼요, 안 돼요. 제발요, 이모!” 폴리애나의 기쁜 목소리가 절망적인 간청으로 바뀌었다. “제발 빗지 마세요! 검고 아름다운 곱슬머리 말이에요. 와, 폴리 이모. 정말 아름다우세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전에 부인회에서 그 거지 아이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던데 넌 도대체 왜 그러니?”
“하지만 쓸데없는 소리가 아니에요.” 폴리애나는 이모가 처음 한 말에만 대답했다. “이모는 지금 그 머리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모르시는 거예요! 이모, 제발, 스노우 아주머니처럼 제가 머리를 꾸며 드리면 안 될까요? 꽃도 한 송이 꽂고요. 그런 모습을 꼭 보고 싶어요! 이모는 아주머니보다 훨씬 더 예쁠 거예요!”
“폴리애나!” 폴리가 아주 날카롭게 소리쳤다. 폴리애나의 말들이 묘하게 마음을 설레게 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그녀나 그녀의 머리 모양에 신경을 써주는 사람이 있었던가?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한 사람이 있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폴리애나,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구나. 왜 부인회에 가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한 거니?”
“예, 전… 하지만 그분들이 지미보다 훌륭한 보고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제가 하는 일이 쓸데없는 짓인 것도 몰랐어요. 그래서 제가 있던 곳의 부인회에 편지를 썼어요. 그들에게는 지미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요. 어쩌면 지미가 그들에게 ‘인도 아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폴리 이모, 제가 이모에게 ‘인도 아이’였나요? 그리고 제가 이모 머리를 손질하게 해주실 거죠?”
폴리가 손을 목으로 가져갔다. 예전의 그 무기력감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폴리애나, 오늘 오후에 부인들로부터 네가 한 짓을 듣고 정말 부끄러웠다! 나는….”
폴리애나는 발끝으로 가볍게 춤을 추었다.
“머리 빗겨 드리는 걸 못하게 하는 건 아니죠?” 그녀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지난번에 펜들턴 아저씨에게 젤리를 가져다 드릴 때처럼, 이모가 보낸 건 아니지만 그런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하신 것처럼 말이에요. 여기서 잠깐 기다리세요. 빗을 가져올게요.”
“하지만 폴리애나, 폴리애나.” 폴리가 항의하듯 소리치면서 폴리애나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 올라오셨어요?” 폴리애나가 방 입구에서 폴리를 맞이했다. “더 좋아요! 빗도 여기 있어요. 자, 여기 앉으세요. 머리를 빗게 해 주셔서 정말 기뻐요!”
“하지만 폴리애나, 나는….”
폴리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스스로도 화장대 거울 앞에 놓인 낮은 의자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 놀라웠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이미 폴리애나가 만지는 대로 귀 옆을 덮고 있었다. 아주 부드러운 손놀림이었다.
“어머나! 머리카락이 정말 아름다우세요.” 폴리애나가 재잘댔다. “머리숱도 스노우 아주머니보다 훨씬 더 많고요! 당연하죠. 이모는 건강한데다 여기저기 다니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사람들도 이 모습을 보면 정말 기뻐할 거예요. 놀라기도 하겠죠. 그렇게 오랫동안 숨기고 계셨으니까요. 모든 사람들이 이모를 보고 반하도록 멋지게 꾸며 드릴게요.”
“폴리애나!” 가려진 머리카락 사이로 기가 막히면서도 충격을 받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한테 왜 이런 멍청한 짓을 하도록 한 건지 모르겠구나.”
“무슨 말씀이세요, 폴리 이모. 사람들이 이모를 부러워하는 건 기쁜 일이잖아요! 이모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싶지 않으세요? 전 예쁜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훨씬 더 좋아져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볼 때면 한없이 가엾어지고요.”
“하지만….”
“그리고 전 사람들의 머리를 만지는 걸 좋아해요.” 폴리애나가 만족스럽게 말했다. “부인회원들 머리도 많이 손질해 줬어요. 하지만 이모처럼 멋진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화이트 아주머니는 꽤 아름답긴 했지만. 제가 치장을 해 드렸더니 아주 사랑스러워지셨죠. 아, 폴리 이모, 방금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하지만 비밀이니까 말하지 않을 거예요. 이제 머리는 거의 다 됐으니 잠깐 여기 계세요. 하지만 제가 돌아올 때까지 절대로 움직이거나 거울을 봐서는 안 돼요! 약속이에요!” 폴리애나는 말을 마치고 방을 뛰어나갔다.
폴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물론 당장 조카의 이 한심한 짓을 그만두게 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도 머리가 헝클어지지 않게 자세를 바로잡는 그녀였다.
그 순간, 폴리는 자신도 모르게 화장대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보아 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에 그만 두 볼이 붉게 물들었다. 거울을 보는 동안 볼은 더욱더 발그레해졌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물론 젊진 않았지만 흥분과 놀라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두 볼은 홍조를 띠고 있었고 눈은 반짝였다. 바깥 공기 때문에 여전히 촉촉하고 짙은 머리카락은 이마 위에 느슨하게 늘어져 귀를 덮으며 곱슬거렸다. 부드럽고 작은 컬이 아름다운 선을 그리고 있었다.
자기 모습에 놀란 폴리는 머리를 다시 빗으려던 것도 잊고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폴리가 다시 방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폴리가 움직일 새도 없이 무언가가 그녀의 눈을 덮더니 머리 뒤에서 꼭 묶였다.
“폴리애나, 폴리애나! 뭐 하는 거냐?”
폴리애나가 킥킥거렸다.
“이모가 알면 안 되니까요. 이모가 몰래 볼까 봐 손수건으로 눈을 가린 거예요. 이제 가만히 계세요. 잠깐이면 돼요. 그 다음에 제가 보여 드릴게요.”
“하지만 폴리애나.” 폴리는 눈을 가린 채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 “이것 당장 풀거라! 뭐 하는 거니?” 그때 뭔가 부드러운 것이 어깨 위로 걸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폴리애나는 더욱 신나게 킥킥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예쁜 레이스 숄을 폭신하게 접어 이모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처박혀 있어서 빛이 바래 있었고 라벤더 향이 강하게 났다. 폴리애나는 일주일 전, 낸시가 다락방 정리를 할 때 그 숄을 발견했다. 그런데 오늘, 서부 고향에 있는 화이트 아주머니처럼 이모도 치장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폴리애나는 일이 끝나자 눈으로 한번 훑어보았다. 아직 한 가지가 부족했다. 그녀는 재빨리 이모를 이끌고 베란다로 나갔다. 그곳에서 뒤늦게 활짝 핀 빨간 장미를 발견했다.
“폴리애나, 뭘 하는 거니?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폴리는 따라가지 않으려 애쓰며 몸을 움츠렸다. “폴리애나, 나는 절대로….”
“베란다에요. 잠시만요! 이제 곧 다 되어 가요.” 폴리애나는 장미를 꺾어 폴리의 왼쪽 귀 위에 꽂았다. “됐어요!” 폴리애나는 기쁘게 소리치며 손수건을 풀어 던져 버렸다. “와, 폴리 이모. 제가 치장해 드린 것을 보면 기뻐하실 거예요!”
한순간, 폴리는 꾸며진 자신의 모습과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낮게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방으로 달아나 버렸다. 이모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곳을 눈으로 따라가던 폴리애나는 베란다의 열린 창문을 통해 마차 한 대가 대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폴리애나는 한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고는 반가워 어쩔 줄 몰라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칠턴 선생님, 칠턴 선생님! 절 보러 오셨어요? 저 여기 있어요.”
“그래. 내려와 줄 수 있겠니?”
폴리애나가 침실에 가보니 화가 나 얼굴이 새빨개진 이모가 레이스 숄에 있는 핀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폴리애나, 어떻게 그럴 수 있니?” 폴리가 신음했다. “날 그렇게 만들어 놓고, 게다가 다른 사람이 보게 하다니!”
폴리애나가 당황하여 멈춰 섰다.
“하지만 정말 아름다웠는걸요. 그리고….”
“아름답다고!” 폴리는 비웃으며 한쪽으로 숄을 내던지고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 버렸다.
“아, 폴리 이모. 제발 머리는 그냥 두세요!”
“그냥 두라고? 이렇게 말이냐? 누가 이 따위를!” 폴리는 머리카락을 세게 잡아당겨 마지막 남은 컬까지 곧게 펴 버렸다.
“아, 이런! 정말 아름다웠는데.” 폴리애나는 거의 울듯이 중얼거리고 휘청거리듯 방에서 나갔다.
아래층에서는 의사가 마차에서 폴리애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환자에게 널 처방했더니, 그가 널 데려오라는구나. 함께 가겠니?”
“약방에 심부름을 가는 건가요?” 폴리애나가 약간 갸우뚱하며 물었다. “부인회 심부름은 해본 적이 있는데.”
의사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야. 존 펜들턴 씨가 오늘 널 보고 싶다는구나. 네가 좋다면 말이야. 비도 그쳤기에 내가 널 데리러 왔지. 가겠니? 6시 전까지는 집에 데려다주마.”
“가고 싶어요. 폴리 이모한테 물어볼게요.”
잠시 후 폴리애나는 손에 모자를 들고 돌아왔다. 하지만 왠지 운 듯한 얼굴이었다.
“이모가 안 된다고 하시니?” 의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도 좋다고 하셨어요.” 폴리애나가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제가 가 버리길 바라시는 것 같아요.”
“가 버리길 바란다니!”
폴리애나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제가 거기 가는 게 싫으신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래, 저리 가거라, 저리 가. 가 버리면 될 것 아니냐.’라고 하시잖아요.”
의사가 웃었지만 눈빛은 아주 진지했다. 한동안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물었다.
“몇 분 전에 베란다 창문으로 보인 사람이 네 이모니?”
폴리애나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네. 그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 제가 위층에서 발견한 예쁜 레이스 숄로 이모를 치장해 드리고 머리도 손질해 드리고 장미도 꽂아 드렸거든요. 정말 아름다우셨어요. 선생님은 이모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의사는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너무 낮아서 폴리애나도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 폴리애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단다.”
“그렇죠? 아이 기뻐라! 이모에게 말해야겠어요.” 폴리애나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게도 의사가 갑자기 소리쳤다.
“절대로 안 된다, 폴리애나! 어… 절대 말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구나.”
“왜요, 칠턴 선생님! 왜 안 돼요? 선생님도 분명 기뻐하시리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이모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잖니.” 의사가 말을 끊었다.
폴리애나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네요. 아마 이모는 기뻐하지 않을 거예요. 이제 기억나요. 이모가 달아난 건 선생님을 보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나중에 그런 꼴을 남이 보게 했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의사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왜 그러신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아름다웠는데.”
의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존 펜들턴이 부러진 다리로 누워 있는 커다란 석조 저택에 두 사람이 거의 다다를 때까지 의사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전자책 연재 글 감사합니다~ 주변 뉴비 재밌는 글 추천도 많이 해주세요.
제가 임대받은 스파로 이벤트 중이거든요^^
https://steemit.com/kr-event/@safebreaking/kr-event
주변 뉴비 더 응원해보세요^^
감사합니다. ^^
스팀잇 왕초보 가이드북 이벤트 당첨되셨습니다
https://steemit.com/kr/@worldinmyheart/7lfmua
확인하시고 최대한 빠르게 배송정보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와, 감사합니다. ^^ 메일 보낼게요~~
출간된 전자책을 스팀잇에서 연재하시다니 새롭습니다 :)
이렇게 연재하다보면 책 금방 나오것네요^^
ㅎㅎ 원래 출간되어 판매되고 있는 전자책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