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이라기보다는 역사를 바라보는 인간의 다양성을 서구의 역사적 사건과 해석, 현재의 대한민국과 비교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꽤 방대한 주제를 차분하게 풀어가는 이야기를 읽으면 세상에 대한 자신의 해석도 생기기 나름이다. 역사는 사실에 대한 해석이지 종교와 같은 믿음이나 권력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기록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통해서 나의 해석을 갖고 타인의 해석에 귀 기울이는 과정이다.
역사란 사실의 기록이다. 그런데 완전한 사실은 아니다. 기록의 주체는 인간이며 인간에게 객관적이란 말은 멀고 먼 지향점이다. 지금도 세월호, 촛불집회로 발생된 사실과 해석은 다르다. 그 사실이 다른 것이 아니다. 이 기록 복원과 기록 숨기기 투쟁의 모습이 모두 역사적 사실이다. 정치적 사건 중심의 해석을 승자의 기록이라고 부른다. 그 말속에 패자의 다른 해석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그 사실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과거와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한 이유는 그 기록과 사건, 현재의 영향을 살펴보고 새롭게 살아가야 할 미래에 도움이 되기 위한 활동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갈 때 시대의 주도권을 갖은 입장에서, 시대의 주도권을 잃은 입장에서, 관망자의 입장에서도 바라 볼 필요가 있다. 20세기 초 한반도의 역사는 한반도 내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조선,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이란 환경 속에서 각각의 입장을 천천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떤 목적과 의도를 갖은 사람들이 그중에서 특정한 관점과 사실을 부지런히 좁고 편협하게 공부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자기 객관화의 시도와 타인의 해석에 대한 교류를 통해서 그 시대를 지배했던 인간 문명을 조금 이해하게 된다. 이해의 공감이 더 많을수록 더 객관적인 해석이 된다. 지금 시대에 내가 객관적인 시대 인식과 주장에 따라 행동을 한다고 확신하는가? 어찌되었던 사람은 사실을 축적하고, 결과를 얻어가는 것에 대한 해석은 만들어져 간다. 역사의 사건은 그 시점에 존재하지만, 그 사건이 만들어지고 해석되는 과정은 linear 하게 이어지고 세대를 넘어 연결되어 있다. 살아가는 시대에서 새로움을 찾기 위해 바라본다. 어떤 시대에 바라보냐도 또 다른 해석을 갖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구절이 재미있다. 저자가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방법은 한국문화에서 진보적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전승되는 기록을 무조건 믿어야 하는 사람보다 의심하고 뒤집어보는 노력이 시대의 진실에 가깝다. 근대, 현대를 폭력과 인간 말살의 행태가 만연한 시대로 바라보는 그의 시각도 이 시대에 존재한다. 하나를 더 배웠다. 돌아보면 양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 대전이 없었지, 국지적으로 이루어진 전쟁, 학살, 테러는 줄지 않았다. 물질문명과 기술의 발전이란 이름하에 망각된 사실이었다.
이 책은 서문, 1 장, 전쟁과 혁명에 책의 전체를 요약한 느낌을 준다. 학습된 타인의 역사인식에 대해서 새로운 역사인식을 주장하고 있다. 정치적 사건사고가 아니라 세계 대전 속에서 발생한 학살과 성폭력에 대한 사실을 언급한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시대의 학살, 성폭력에 대한 기록은 철저하게 숨기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기억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개인의 역사를 만들어간다. 시대를 보는 눈을 봉합하지 않은 만큼 저항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말처럼 불만과 열망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도 얼마 전 경험한 사실이고, 그 열망을 다시 잠재우기 위한 활동도 여전하다.
2부 폭력과 책임을 읽으면 역시 못된 놈들은 기만적이고 대단히 부지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권과 인간의 존엄을 위해서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죄인에게도 인권을 보장하는 현대사회의 추세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과거 동양에 존재했던 연좌제를 통한 9족을 멸해 씨를 말리는 멸문지화가 효과적이라고만 할 수 없다. 나는 인권도 좋지만 금수만도 못한 놈들에겐 금수의 법을 적용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무인도에 알아서 살게 가두던..
예전에 '나난'이란 책을 보며 참 슬펐다. 그것이 내가 이해하는 그 사건의 해석이다. 동일한 사건이 항상 수컷들이 만든 전쟁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성노예나 강제노역은 기원전에도 있었고, 우리가 문명사회라고 일컫는 최근의 100년에도 발생한 일이다. 한국은 또 현재 진행형이다. 결과가 다른 것은 인식과 해석의 수준이 다른 것이다. 책에서도 정의를 주장하듯 나는 정의를 주장할 인식과 문화가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보다 나은 사회와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선진 문명을 구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3부 냉전과 평화에서 레나테 홍의 이야기는 내가 상상해 보지 않은 영역이다. 북한도 여러 국가와 교류를 한다. 우리는 그들의 현대사에 대해서 무지한 편이다. 분단의 아픈 기억이며 우리가 이해하는 다른 이산가족이 존재한다는 새로운 인식이 생겼다. 또 수컷들은 항상 문제를 만든다는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4부의 대안과 전망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이야기와 브렉시트가 관심을 끈다. 우리나라도 자세히 보면 국위선양은 우월한 여성분들이 많이 한다. 종종 혼자의 생각이지만, 평화시기의 역사는 그 시대를 주도한 남자들이 폭주하지 않도록 잘 관리한 아내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 폭주가 관리되지 못하면 또라이들의 세상이 열린다. 물론 태후의 역사를 왈가왈부할 수 있겠지만, 왕이나 황제의 문제 건수가 훨씬 많다.
나도 잘 알지 못하지만 종종 출장을 갈 때 느끼는 러시아는 색다르다. 앵그리 색슨족, 이슬람, 동양이 문화가 혼재된 느낌을 받는다. 잘 보존된 역사, 문학, 음악을 보고 미국이나 서유럽의 문화를 비교해 체험하면서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됐다. 경계를 넘은 여인들을 읽으면 충분히 그럴듯하다. 그런데 나는 한국의 여인들이 더 적극적이라고 생각한다. 브렉시트는 개인적인 업무 연관성으로 작가의 이상적인 부분을 기대하고 싶다. 하지만 소란한 섬나라 사람들을 보면 '실패란 잘못된 선택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더 믿기로 했다.
5부는 한국 역사에 대한 문제, 제안 등이 복합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타국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한 넛지와 사고의 확장을 제시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진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활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을 간접적으로 적절하게 이야기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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