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 : PGR21
최근 한국에서 있었던 트랜스젠더 군인, 트렌스젠더 여대 합격생에 관해 한 TERF(트랜스젠더 배제 페미니스트)의 트위터 글. 볼드체는 원글쓴이가 붙인 것.
저는 부모님 뱃속에 있을 때부터 기독교인으로 지냈고, 성소수자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수능 끝나기 전까진 들어보지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지금도 예배드리러 교회에 출석할 때마다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한 주가 멀다하고 성토하는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여러 경로를 통하여 자신의 육체적 성별과 젠더가 일치하지 않아서, 혹은 일치됨을 말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혼란한 정체성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은, 평생을 기독교인의 가치관으로 살아온 내가 이러한 사람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어떤 생각으로 대해야 할지, 동등한 사람으로써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인문학적 소양이 일천한 공돌이인 탓에, 이러한 정체성을 가진 분들에 대한 제 입장은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 주변엔 성소수자라고 분류되는 사람 - 혹은 그러한 정체성을 저에게 드러내고 이로 인해 고민하고 고통받는 사람 - 은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배타적인 신앙에 경도된 꼴통 개독의 위선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성소수자 분들에 대한 나의 태도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는 이유는, 적어도 그들이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을 밟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그들을 알게 되던지, 언제 관계를 가지게 되던지,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와 같이 평생 그들을 접해 볼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분들과 저와의 관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 신장을 위한 여러 운동들에 대해선 제가 잘 모르지만, 약자들은 말 그대로 약자라서 힘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정의되는 약자 집단들끼리 서로 연대하여 투쟁해 나간다고 들었습니다. 흑인들이 그러했고, 노동자들이 그러했고, 여성들이 그러했으며, 성소수자들도 그러하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연대하여 투쟁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우리들도 사람이다. 사람답게 대우해 달라.
성소수자들의 투쟁이 그 규모에 비해서 유달리 힘들고 처절해 보이는 것은, 그들이 사람으로써 존재하기 위한 전제조건인 성 정체성이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쉽게 받아들여지기가 힘들어서(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일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들을 약자로 정의하는, 그래서 강한 자에 맞서 자신들을 지켜내고자 하는 연대 안에서는, 그들은 사람으로써, 그들의 정체성으로써 받아들여지고,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상식처럼 갖고 있던 이러한 생각은 최근 숙대 트랜스젠더 입학 거부 사건에 의해 산산히 부서졌고, 조금 전 이 트위터 타래를 목격함으로써 일종의 공포로 변했습니다.
장로교가 교리로 삼는, 기독교 중에서도 가장 꼴통이라며 욕 많이 먹는 칼뱅의 예정론에서는, 각 개인의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있으며,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여지는 바늘귀만큼도 없다고 가르칩니다. 구원되기로 예정된 자는 그의 삶 동안에 무슨 일이 생기던지간에 반드시 구원받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관에서조차, 어떻게 해도 지옥에 떨어지게 될 가련한 영혼에게조차도, 넌 존재하지 말았어야 한다라고까지 하지는 않습니다.
여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했습니다. 여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그들의 성취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여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스스로 결정짓지 못했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대부분의 시간이 그러했으며, 선각자들의 지난한 투쟁 끝에 여성은 그들의 삶을 쟁취해 냈고, 쟁취해 내는 중입니다. 이제 여성은 사람으로써 대우받으며, 그들의 성취를 인정받고, 그들의 삶을 스스로 결정합니다. 아직 미흡한 점이 많을지언정 적어도 대한민국 안에서 전혀 그러하지 못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여성으로써 존재하며, 어느 누구도 그걸 부정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육체적 성과 젠더의 불일치로 고통받는 존재가 눈앞에 떡하니 있는데, 그들을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단언합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사상에 혼란을 주고 자신들의 이익에 반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 때문이랍니다. 성소수자 운동이 태동한 지가 언젠데 그 긴 세월 동안 트랜스젠더에 대한 입장조차 정립하지 못한 인문학적 나태함은 그렇다고 치고, 불과 몇십년 전까지 여성들도 인간이라고 부르짖던 그 여성들이, 한 개인의 정체성을, 존재 양식을 부정한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를 나보다도 훨씬 잘 알 터인 그런 작자들이, 저런 말을 자기 변론이랍시고 당당하게 지껄이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항의하던 것은 여성이면 인간으로 존재하지 못하던 부당함이 아니었습니까. 과거 인간이 아니어서 울부짖던 당신들이, 지금 저기서 울부짖는 저들을 인간 아닌 것으로 단언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수많은 인간 아닌 것들을 수용소로, 가스실로, 처형장으로 보내던 그들과 당신들이 다른 것이 대체 무엇이냐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당신들이 만들어가고자 하는 세상이 대체 뭐냐는 말입니다.
적어도, 당신들이 인간이라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니냐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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