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타는 지하철, 매일 걷는 길과 매일 보는 사람들. 일상의 기반에는 본질적으로 ‘반복’의 연속이 있다. 일상의 이러한 단조로움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새로운 것에 목마르게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여행을 꿈꾼다. 누군가에게 여행은 일상의 반복성을 탈피할 간절한 탈출구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 자체로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짧은 여행을 꿈꾸며 매일을, 오늘의 일상을 견디는 것이다. 어쨌든, 여행이란 그 신선함만으로도 일상에 지친 우리들에게 달콤한 유혹이 된다.
그러나 여행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여러 경제적, 현실적 여건이 막아선다. 그러나 그 뿐만은 아니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우리는 ‘반복적이지만 그로 인해’ 안정성을 주는 일상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하며, 또한 돌아오고 나서도 그 일상이라는 것과 다시 동일하게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 후 똑같은 일상으로의 복귀는 그 짧았던 여행과의 극적 괴리 때문에 더욱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 매일의 일상이 여행과도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 단 530만원의 자금으로 371간의 세계 일주를 마친 학우가 있다. <오늘은 잘 곳을 구할 수 있을까?>의 저자, 이미경(경제13) 씨이다. 일상을 탈출하고 싶다는 단순한 간절함으로 시작한 여행이 의도치 않게 1년간 이어졌다. 긴 여행 후, 매일의 일상조차 여행의 연속이 되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Q : 371간 41개국이라는 긴 여행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었나요? 세계 일주에 도전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재수까지 해서 어렵게 대학에 왔지만, 멀쩡히 대학 생활을 하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행복한 적이 없었어요. 어느 날 문득, “내가 진짜 행복한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답은 명확히 “아니다” 였어요, 항상 남이 정해 놓은 기준, 목표에 따르며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죠. sns에 보이는 남들의 생활을 부러워하고, 그들을 따라하려고만 하면서 살았어요. 그걸 인식하는 순간, 우울증이 올 정도로 힘들었어요. 일상은 매일이 똑같고, 무료하며 지루하기만 한데, 그 일상조차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을 하려고 이어가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내가 행복하지 않음’을 인식한 순간, 무의미한 일상을 그대로 지속하는 게 불가능해졌어요. 일단은 떠나야만 했죠, 이제는 정말 제가 원하는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의 저에겐 탈출구가 정말 간절했던 거죠. 더 이상 남이 정해주는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찾아보자” 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던 것 같아요. 돈도 없고, 용기도 그다지 없었지만, ‘한 달만이라도 떠나 보자’ 하는 생각으로 떠났어요 처음엔. 이렇게 길어질 줄은 정말 몰랐죠. (웃음)
Q : 여행 과정에서 인상 깊으셨던 사건, 일화가 궁금해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여행을 하셨나요? 여행지에서 본인을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던 사건이 있으신가요?
여행은 정말 ‘길 위의 학교’ 인 것 같아요. 매일매일이 새로웠고, 매일매일이 배움이었어요. 여행 내내 제 한계에 부딪치면서 도전을 하고,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위기를 이겨내야 했는데 그 과정들이 다 제 자산이 됐네요. 물론 처음에는 너무 두려워서, 제 자신을 꽁꽁 가두고 새로운 경험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오죽하면 첫 ‘카우치 서핑(현지인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는 여행방식)’ 때는, 바로 전화할 수 있도록 영사관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입력해 놓은 후에 덜덜 떨면서 초인종을 눌렀다니까요. 정말 좋은 분들이었는데 말이에요(웃음).
그런 저를 변화시켜 준 친구가 한 명 있어요. 아르메니아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였는데, 변태 택시 기사를 만나서 두려움으로 오들오들 떨고 있던 저에게 그 친구가 정말 소중한 말을 해 주었어요. ‘왜 두려워 하냐고, 당당히 맞서라고. 이런 경험 언제 또 하겠냐고’ 말이에요. 그 말을 듣고 나서 여행을 와서까지도 두려워하며 기회들을 놓치고 있던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어요. 그 이후로는 적당히 경계할 것 하면서도, 온전히 제 자신을 열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흠뻑 받아들이며 주체적으로 여행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Q: 긴 여행이 본인을 어떻게 변화시켰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여행이 본인에게 선물해 준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요?
우선, 가장 큰 변화는 제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상투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정말이에요. 이전에 저는 ‘삶이라는 걸 왜 연장하면서까지 살까?’ 라고 생각할 정도로 삶에 대한 애착이 없었어요. 아마도 제 스스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며 살아본 적이 없어서겠죠.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 순간을 영원히 연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한 행복감을 느꼈어요. ‘행복이란 게 이런 거구나, 삶이란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그리고 여행을 선택하고 이곳에서 내가 행복했듯이, 앞으로도 내가 원하는 것,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죠. 한마디로, 제 진짜 행복을 위해서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이런 여행지에서의 깨달음은 이후의 일상에까지 이어졌어요. 물론 처음 일상으로 복귀했을 땐, 매일매일 신선했던 여행지에서의 기억과 단조로운 일상이 너무나도 달라서 힘들기도 했어요. 아마 이건 모든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고민이 아닐까 싶네요. 매일 여행지에서의 기억만 떠오르고, 다시 단조로운 일상으로의 복귀가 힘들었던 거예요. 그때 제게 들었던 생각이 있어요. ‘매일매일을 여행처럼 살면 되잖아!’ 여행에서 행복했던 이유가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매 순간 선택하며 살았기 때문이듯이, 일상에서도 그러면 되는 거였어요.
오랜 갈등의 해답이 사실은 굉장히 간단했던 거죠. 그 이후로 일상 속에서도 제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을 택하며 매일 도전하듯이 살게 됐어요. 이전까지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끌려가는’ 삶이었다면, 여행 이후에는 제가 모든 것을 선택하는 주체성을 갖추게 된 거죠. 주체적으로 제가 원하는 것, 행복을 위해 하루하루를 선택할 수 있게 됐어요.
Q : 여행에서 얻은 변화와 경험들을 통해서, 여행 이후의 삶도 매일매일 여행처럼 신선하게 살게 되셨다는 거네요.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그렇게 선택하신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리고, 이후 어떤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시고자 하나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지요?
네, 맞아요. 오롯이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며, 자신을 치열하게 성찰하는 과정이었던 여행이 제게 준 선물이죠. 이는 여행 이후에 제 일상까지도 완전히 바꾸어 놓았어요. 일상이 반복적이고 비교적 좁은 반경에서 이루어지는 건 여전히 사실이지만, 이 안에서도 제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매일 찾아다니기에 더 이상 일상이 무료하지만은 않아요. 이번에 제가 도전했던 건 윈드서핑이에요. 계절학기로 윈드서핑 강좌를 듣게 됐는데, ‘아니 세상에.’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하루에 7시간씩 여름 내내 연습하고, 서울시 대회에도 출전했었어요.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서 지속적인 단기 목표를 세우고, 끝없이 도전하면서 이뤄 나가면 매일 여행 같은 일상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건 ‘바디 프로필 찍기’ 예요. 사실 책 쓰기가 제 1차 버킷 리스트였는데, 장장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네요. 제가 거쳐 온 순간들과 기억들을 담아 세상에 제 책을 내 보는 게 소원이었거든요. 출판사와의 계약이 무산되기도 하고.. 정말 많은 일들을 거쳐 정말 힘들게 나온 책이에요(웃음). 3년의 시간 동안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버틴 보람이 있습니다. 드디어 버킷 리스트에서 두터운 한 줄을 지워낼 수 있겠네요. 바디 프로필 같은 경우는, 운동을 시작하면서 꾸게 된 꿈이에요. 항상 살짝 통통한 게 콤플렉스였어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정말 즐겁더라고요. 매일매일 달라지는 제 모습을 보는 게 새롭고 행복합니다. 제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운동해서 꼭 프로필을 찍어 보고 싶어요.
Q : 여행을 결심하는 데 있어 서강이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나요?
정말 많죠. 여행을 정말 떠나도 될지, 걱정과 두려움만 많던 저에게 확신과 자신감을 주었던 건 참 감사하게도 서강입니다. 여행에 앞서 고민할 시기에, 많은 서강대 선배님들과 교수님들을 개인적으로 뵙고 의견을 여쭈었어요. 교수님들께서 생각보다 정말 긍정적이시더라고요. ‘네가 분명 얻는 것이 있을 거다, 좋은 경험이 될 거다’ 라면서 갈등하던 제 생각을 다듬어 주셨어요. 교수님 한 분 한 분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게 정말 큰 힘이 되더라고요.
현실적인 조언도 많이 해 주셨고요. 선배님들 또한 정말 감사했습니다. 갑자기 연락한 후배에게 친절히 밥도 사주시면서, 본인의 여행 과정을 토대로 한 조언을 아낌없이 해 주셨어요. 여행 과정에서 만나 동행하며 도움을 주셨던 선배님도 계셨구요.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동문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먼저 발 벗고 나서주는 따뜻함이 서강을 이루어 주는 정신인 것 같아요. 저도 모든 걸 경험해 본 건 아니지만, 여행과 관련해 조언을 필요로 하는 동문이 있다면 아낌없이 돕고 싶습니다.
Q : 여행을 꿈꾸는 서강의 학우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갔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를 따라서 좇는 행복도, 세상의 기준에 무조건적으로 맞추려는 행복도 말고요.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정말로 자신이 행복해지는 게 무엇일지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저의 행복은 여행이었지만, 각자의 행복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그 길에 발을 올려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는 순간, 매일 여행처럼 신선하고 새로운 하루하루를 살아가실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여행이 간절한 순간이 온다면, 뒤 돌아 보지 말고 일단 떠나는 것도 추천합니다, ‘여행 같은 일상’을 살게 되실 여러분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