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끊기던 날
지난 달 이란 정부는 휘발유 가격 인상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를 제압하기 위해 인터넷을 10일간 차단하였습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역시 온라인 마켓입니다. 10일간 온라인 마켓이 입은 피해액은 약 7억 달러(8,200억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만일 같은 일이 한국에서 발생했다면 피해가 얼마나 될까요? 대략 그 피해 규모가 3조원에 이를 거라고 하는군요.
*관련기사: 이란국민 반정부 시위에 정부 인터넷 차단, 온라인 시장 7억달러 피해, 아시아기자협회
이란 젊은이가 인터넷 접속이 차단된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EPA=연합뉴스>
극단적인 상황입니다만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더 극단적인 상황은 테러나 사고로 데이터 센터가 파괴되는 일입니다. 온라인 마켓이야 다시 개설하면 되고 완전히 파괴되었더라면 5일장이라도 열리겠지요. 만들어 놓은 상품이 어디를 가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오로지 클라우드에만 저장되어 있던 나의 데이터는 영원히 사라지는 겁니다.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습니다. 접속할 수 없는 인터넷 서비스의 추억이 어떻게 사라지는 지 말이죠.
콘텐츠 산업에 있어 클라우드 의존성은 좀 더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물성이 있는 상품거래와 달리 물성이 없는 디지털 콘텐츠는 그 원 데이터가 사라지면 복구가 불가능합니다. 데이터의 기록과 보관이 점점 클라우드 시스템에 의존되어가고 상황에서 이러한 물리적 사건, 사고의 가능성은 위험한 미래를 그려보게 합니다.
금전적 피해는 클라우드 업체들이 보상한다 한들 그 원본 데이터의 상실은 무엇으로도 회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개인의 백업 습관이 필요한 일입니다만, 편리성을 따지다 보면 자꾸 클라우드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개인보다 더 큰 문제는 개별 온라인 업체들조차 자신들의 서버를 클라우드 시스템에 의존하여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편리하고 활용도가 높지만 한 번의 사고로도 사업기반 전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 사업을 통째로 온라인에 넘겨주는 일은 사실 도박 같은 일이 아닐까요?
그럼에도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콘텐츠 산업은 매우 유혹적입니다. 무한 복제가 가능하고 닳지도 망가지지도 않는 디지털 콘텐츠는, 기업들에게는 재고 부담도 없고 관리비용도 크게 필요하지 않은 간편한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몸을 잃은 디지털 콘텐츠는 공기처럼 그 가격이 가벼워졌습니다.
인터넷이 연결되던 날
온라인 기업에게 인터넷이 끊기는 날이 재앙이라면 콘텐츠 기업에게는 인터넷이 연결되던 날이 재앙이었습니다. 몸을 잃은 디지털 콘텐츠는 공짜라는 인식이 생겨나 버린 겁니다. 업계의 산업표준과 유통기준이 자리를 잡기 전에 빠르게 변화한 콘텐츠 산업의 디지털화는, 기존 유통업계는 물론 창작자와 제작자 모두에게 재앙과 같은 상황을 맞닥뜨리게 하고 말았습니다. 온라인 네트워크는 세상의 모든 콘텐츠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고 사람들은 그곳을 지구 도서관처럼 자유롭게 드나들었습니다. 콘텐츠의 소유권은 사라지고 무제한 자유이용권만이 시장에 넘쳐났으며, 콘텐츠로 발생하는 부가가치는 망사업자와 플랫폼 사업자들이 독식하게 되었습니다. 창작자와 제작자들의 존립 기반 자체를 위협하는 재앙의 날이 도래한 것입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음반의 쟈켓을 읽고 책을 손에 쥐는 물성의 경험은 사라져 아쉽지만, 어쨌든 턱없이 싼 가격에 심지어 공짜로 알맹이(내용물)을 즐길 수 있으니 수지맞았다 생각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구독경제와 결합한 콘텐츠 산업은 음반 한 장, 책 한 권 값으로 무한대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해주었으니, 이거 참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그건 정말 공짜일까요? 그건 정말 싼값에 수지맞는 일일까요?
통계청에서 발표한 가구당 가계 통신비 규모에 관한 통계입니다. 월 15만원 정도 되는 군요.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2007~2009년 이후 가계 통신비는 급 상승했습니다. 사실 이 비용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에는 발생하지 않는 비용이었습니다. 2000년대 이전 말이죠. 20세기의 이야기입니다만..
개인의 수입이라는 게 빤 한데, 먹고 입고 자는 의식주 비용(엥겔지수)을 제외하고 개인의 수입에서 여가비를 포함한 문화비로 지출하는 비용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마련입니다. 경제 위기라도 오면 가장 먼저 줄이는 비용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 빠듯한 문화비의 많은 부분, 심지어는 대부분을 통신비가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책사고 음반사고 하던 비용을 털어 스마트폰에 쏟아붓고 있는 것이죠. 콘텐츠 창작자들의 주머니에 들어갈 돈을 털어 거대 통신사의 지갑을 불려주고 있는 꼴입니다.
디지털 콘텐츠는 초기 통신사업자들의 아주 좋은 마케팅 미끼였습니다. 그들은 떨이로, 묶음 상품으로, 마구 싼 값에 자신들의 고객에게 디지털 콘텐츠를 제공했습니다. 가격결정권은 콘텐츠 제작자, 창작자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거저에 가까운 가격에 마구 풀어대는 데 이를 막아 낼 재간이 없었던 겁니다. 왜 대동단결하여 공급 자체를 거부하거나 또 다른 자체 유통망을 만들지 못했는가 질책하기엔 인터넷 환경은 너무도 빠르게 밀려왔고, 정부의 초고속 인터넷 정책은 콘텐츠 산업의 피해를 모른 척 눈감으며 통신업체 살리기에 올인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닷컴 열풍의 수혜를 온몸으로 누리며 인터넷 혁명의 전사인냥 칭송을 받았습니다.
강도당하던 날
시장을 강도당한 콘텐츠 산업은 유통의 주권뿐만 아니라 가격 결정권마저 망사업자와 플랫폼사업자에게 헌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내 곡의 가격을 내가 정할 수 없을까요? 누구 마음대로 내 작품을 할인 상품, 묶음 상품으로 팔아댄단 말입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한쪽에서 이쑤시개값으로 팔아대는 데는 당해 낼 재간이 없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강도당한 업계는 음악산업입니다.
한국은 IT산업의 강국입니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과 스마트폰 보급률 모두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IT 산업과 관련하여 한국은 전 세계의 테스트 마켓이자 가장 먼저 미래를 경험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과정에는 정부의 공이 큽니다. 97년 IMF 이후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정보통신망 보급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전폭적인 정부 정책 속에서 전례없이 빠른 속도로 초고속 인터넷 망이 보급되며 많은 산업이 온라인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을 위해 콘텐츠 산업의 희생을 방조했습니다. 덕분에 한국의 콘텐츠 산업, 그중에 음악산업은 테러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MP3 음원 무료 다운로드는 전 세계적인 문제였습니다만, 한국은 매우 빠른 속도로 초고속 인터넷 네트워크가 확산되었기 때문에 법과 제도를 정비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정부의 방관 속에 변화에 대처할 새도 없이, 한국의 음반 유통사들의 대부분은 문을 닫거나, 망사업자와 플랫폼 기업에 인수되었습니다.
그러나 음악 시장을 장악한 한국의 통신사업자들은 음악산업 자체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온라인 음악 플랫폼은 자신들의 가입자 수를 늘려주는 미끼 상품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음원을 말도 안 되는 싼 가격에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음원 유통망을 장악한 통신사들은 50~60%씩 할인된 가격으로 음원을 판매했습니다. 덕분에 한국의 음악 팬들은 한 달에 버스 한두 번 탈 돈으로 무제한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음원 권리자들과는 아무런 협의가 없었고 창작자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시킬 수 없었습니다.
2012년 전 세계를 강타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2012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286만 건이 다운로드되었습니다. 영국과 한국의 다운로드 최저가로 비교해 보면 한국 가격으로는 매출이 약 1억 8천만원 정도인데 영국의 가격으로는 약 30억! 17배 차이가 납니다. 만일 286만 건을 인터넷 보급 이전 시절의 음반 판매량으로 환산한다면 개당 만원씩만 잡아도 286억 이상의 매출을 올렸을 것입니다. 몸을 잃은 콘텐츠의 가치가 1/100 이하로 떨어진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스트리밍 시대가 열린 이후, 이제는 음원 다운로드조차 잘 받지 않습니다. 한국의 스트리밍 음원의 곡당 단가는 4.2원입니다. 이쑤시개 하나가 6.35원인데 말입니다. 이 방식으로 계산하면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매출은 1,200만원에 불과합니다. (2012년 국정감사에서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이 발표한 추정 자료에 따르면 강남스타일의 2012년 국내 음원 매출은 3,60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평면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온라인 덕분에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버는 걸까요? 통신사들은 그러한 부가가치 대부분을 빨아들이고(수입이든 마케팅 효과든) 그것을 배분하는 데는 매우 인색합니다. 결국 한국의 제작사와 창작자들은 아직 온라인화가 덜 된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여건하에서 돌파구로 찾은 해외 진출은 오히려 '한류', 'K-POP 신드롬'이라는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CD 판매가 가능하고 기존 아날로그 매체에 대한 수요가 살아있는 일본 등의 해외 진출은 제작사로서는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덕분에 한류가 시작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한국의 프로덕션들은 음원 판매의 수입보다 음원을 통해 얻은 인기로 행사나 CF 등의 부가사업을 통해 수입을 창출하는 매니지먼트 회사로 변신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음반은 행사와 공연을 위한 팬 서비스 품목이 된 것입니다.
국내 콘텐츠 사업자 앞길 막은 통신사
통신사들은 눈 앞 이익 때문에 국내 콘텐츠 제공자(CP)들을 차별해 국내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린 ‘원죄’를 갖고 있다. 그동안은 물밑에서 ‘경쟁력 없는 콘텐츠 사업자들의 우는 소리’ 정도로 치부돼 왔는데, ‘공정’이 중시되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국내 콘텐츠 사업자들의 불만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서 서둘러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한국 통신시장 정책은 그동안 통신사들의 적극적인 통신망 고도화로 정보기술 강국을 만들고, 그에 힘입어 통신망 장비·소프트웨어와 콘텐츠 같은 전후방 산업들이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쪽에 초점을 맞춰왔다. 통신사들이 통신요금을 적정 수준보다 비싸게 책정하는 것을 눈감아주고, 정치권과 시민단체 쪽의 요금인하 요구를 은근슬쩍 가로막아주는 것도 이를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머뭇거리더니
이것은 비단 음악산업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음반 산업의 몰락을 지켜본 출판산업은 디지털 시장 진출을 늦추었습니다. 급속한 디지털 시장으로의 진출을 위험하게 여긴 출판산업계는 E-book으로의 디지털 시장 진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비자의 입장에서 정보는 읽는 행위를 통해 습득될 뿐입니다. 책을 읽을 수 없으면 다른 것을 읽으면 되는 것입니다. 포털들은 검색 서비스를 개시했고 블로그 세상을 열었습니다. 뉴스를 가져다 서비스하기 시작하였으며 흡입력이 높은 만화/웹툰을 무료로 서비스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자들은 습득해야 할 정보를 더이상 종이책을 통해 소비하지 않아도 된 것입니다. 하루의 소비할 수 있는 문자량이 정해져 있다면 그 대부분을 스마트폰과 온라인을 통해 소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무료로 말입니다.
대중의 텍스트 소비의 환경이 디지털 텍스트로 변화하면서 종이책 구입 비중은 점점 하락해 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종이책을 통해 저작을 해 온 기존 작가들 외에 새로운 정보를 가지고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려는 신진 저자들은 블로그와 지식인, 위키피디아 같은 집단저작 플랫폼 등을 통해 자신의 지식을 배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진입장벽이 높은 기존의 종이책 시장보다 비록 수입이 거의 전무하다 할지라도 독자의 반응을 바로 접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은, 무명의 작가와 신진 창작자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재능기부(?)의 장이 되어 주었습니다. 온라인 포털들은 이러한 새로운 지식들과 기존의 저작자료들을 무료 데이터로 제공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더는 종이책을 뒤적거릴 필요가 없게 만들었습니다.
허를 찔렸는지 모릅니다. 출판업계가 디지털 산업으로의 진출을 머뭇거리는 사이, 지식정보의 표준은 책이 아닌 블로그와 검색, 지식인이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탄하지만, 인류가 유사 이래로 이렇게 많은 텍스트를 소비하던 시절이 또 있었을까요? 열심히 읽고 심지어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현대 인류는 말이죠. 블로그에, 이메일에 심지어 댓글과 톡으로.. 온라인 세계가 열리기 전까지 콘텐츠 플랫폼의 중심에는 출판이 있었는데 말이죠. 모든 것이 책을 유통하는 서점을 중심으로 배포되었는데 말이죠. 만일 출판업계가 주도해서 콘텐츠 플랫폼을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요? 디지털 환경에서는 텍스트와 음악, 영상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면 해당 장면과 어울리는 OST가 자동재생되고 어떤 부분에서는 텍스트 속 주인공의 영상인터뷰를 삽입할 수도 있겠죠. 만화가 온라인에 빠르게 적응하며 스크롤 방식의 웹툰으로 진화했듯이, 텍스트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콘텐츠 제작환경을 선제적으로 구축할 수 있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유통의 환경도 지금처럼 처참한 결과를 낳지는 않았을 겁니다. 음악은 너무 빨랐고 출판은 너무 느렸습니다. 음악산업은 앉아서 당했고 출판산업은 주저하다 당했습니다.
망사업자가 콘텐츠 유통의 독점권을 갖는 이런 유통구조는 참으로 문제가 많습니다. 음악산업의 기획사와 제작사들은 그나마 이렇게라도 버텼으나 이 과정에서 이를 유통하던 도소매 레코드점들은 모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영상업계에서는 각종 렌탈점이 모두 문을 닫아야 했고, 만화방과 서점들 역시 그 파고를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작은 디지털 산업의 특성상, 유통 환경의 변화는 거대 플랫폼 업체를 탄생시켰고, 이들은 단지 기술 변화에 민감했다는 이유만으로 산업 전체의 이익을 독식해 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콘텐츠 산업에 대한 부족한 이해를 드러내는 유통방식으로 소비자와 생산자를 혼란과 불편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무료로, 무한한 디지털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어 좋다 하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공짜가 아니란 말입니다.
공짜가 아니야
그러면 소비자는 정말 공짜로, 싼값에, 디지털 콘텐츠를 사용하고 있는 걸까요? 음원의 경우, 뮤직 플랫폼의 스트리밍 상품에 가입하면 싸게는 3,000원 ~ 10,000원에, 또는 동영상 플랫폼이나 기타의 플랫폼을 우회하면 세상의 모든 음악을 공짜로 들을 수 있는 것 같지만, 그 콘텐츠는 공짜가 아닙니다. 모두 인터넷망에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데이터 사용료를 지불하여야 합니다. 게다가 그것을 저장이라도 하려고 하면 단말기의 저장용량에 따라 사양을 높여야 합니다. 앱 깔기도 바쁜데 말이죠.
앞선 통계에서 한 달의 가계 통신비 규모가 대략 15만원 선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인터넷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책사고 음반 샀을 돈이란 말입니다. (여행이나 기타 여가비는 지금도 월 15만원 선이라고 하니 위의 통신비는 콘텐츠 구입비로 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그 비용이 이전에는 콘텐츠 제작자와 창작자에게 돌아갔을 돈입니다. 그러나 가격결정권과 유통망을 쥐고 있는 망사업자들은 그동안 통신망 구축이라는 명분하에 일방적으로 콘텐츠 산업을 희생 시켜 왔습니다. 그들의 전략은 기가 찹니다.
일단 단말기 가격의 비중이 너무 높습니다. 2년마다 교체하게 만드는 이노무 스마트폰은 대당 100만원이 넘습니다. (일부러 2년마다 교체하게 내구성을 조절한다는 음모론도 있습니다.) TV, 냉장고도 한번 구입하면 10년은 사용하는데 이를 2년마다 바꾸는 꼴입니다. 게다가 저장공간은 갈수록 부족합니다. 어찌나 업데이트를 해대는지 1년 정도 사용하고 나면 데이터는 물론 앱조차 지웠다 깔았다 하며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려면 가격이 더 비싼 상위급 모델을 구입해야 합니다. 그렇게 유도합니다.
더 큰 요인은 데이터 가격입니다. 2G, 3G, 4G, 5G 데이터 전송속도의 개선을 핑계로 통신사들의 데이터 요금은 내려갈 줄을 모릅니다. 소비자들은 당하는 줄 알면서도 이미 데이터 없이 살 수 없는 라이프가 되었기에 다른 비용에 우선하여 데이터 요금을 지불합니다. 콘텐츠를 공짜로 즐기는 대신 데이터 요금을 내고 있는 겁니다.
소비자는 유튜브를, 검색을, 블로그를, 웹툰을 공짜로 저렴한 가격에 사용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창작자와 제작자에 돌아갈 몫을 망 사업자와 플랫폼 기업의 이윤으로 전환시켰을 뿐입니다. 음반과 책을 사던 돈으로 데이터와 저장용량을 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통신사는 데이터 사용료로, 단말기 제조사는 저장용량에 따른 단말기 가격 차등으로, 문화비를 콘텐츠 구입비를 잠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체 형식과 유통망을 독점하고 있는 플랫폼 사업자와 통신사 그리고 단말기 제조사들이, 제작자와 창작자에게 돌아가야 할 보상을 대신 갈취하고 있는 구조가 현대의 디지털 콘텐츠 유통 구조입니다. 그러므로 소비자는 결코 공짜나 싼값에 콘텐츠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망사업자와 플랫폼 사업자들 역시 이윤을 우선으로 하는 기업입니다. 착하다 선하다 한다고 자신들의 수입을 떼어 콘텐츠 창작자와 제작자에게 돌려줄 리가 없습니다. 비싼 요금을 주고 꼭 5G 데이터를 사용해야 할까요? 소장할 수도 없고 사업자가 망하면 사라지고 마는 일시적 데이터를 즐기는데 너무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돈이 없지 가오(몸)가 없냐
산업환경의 변화를 법과 제도로만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각 주체들의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하고, 대응이 잘못되면 시장 논리에 의해 도태되는 걸 일방적으로 보호할 수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잃는 것이 더 많거나 필요한 산업 자체가 위축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디지털 콘텐츠로의 빠른 변화의 과정에서, 이 새로 도래하는 매체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제작자와 창작자들의 미숙한 대응도 물론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정당한 보상조차 보호받을 수 없다면, 누구도 콘텐츠를 창작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작한 당사자가 가격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는 환경은 매우 불합리한 구조이고, 이러한 환경에서는 좋은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생산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를 타파하려면 콘텐츠에게 몸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망사업자의 독점 유통망으로부터 콘텐츠를 분리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분리된 나의 저장장치에 내가 값을 지불한 콘텐츠를 소유, 소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온라인에 접속하지 않아도 언제든 내가 소장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플랫폼업체의 폐쇄 여부와 상관없이 내가 구입한 콘텐츠는 언제나 내 손안에 있어야 합니다. 팔리든 말든 내가 만든 콘텐츠의 가격은 내가 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묶음 상품으로 할인 상품으로 팔지 말지는 내가 정하는 겁니다. 내 콘텐츠의 주인은 나입니다. 돈은 못 벌어도 쪽은 팔지 말아야 하는 겁니다.
Next body for contents, 리플릿
리플릿은 디지털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는 콘텐츠들에게 디지털 세계에 걸맞은 몸을 돌려주려고 합니다. 자신의 권리와 보상을 정당하게 돌려받지 못했던 창작자와 제작자들에게, 그들의 가치를 공정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콘텐츠 유통환경을 돌려주려고 합니다. 이 리플릿의 새로운 생태계에서는 제작자와 창작자뿐만 아니라 소비자 또한 콘텐츠의 물성을 경험함으로써, 만지고 경험하고 소유하려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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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릿 : Activating 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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