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배 느린, 27배 느린
한 예술가의 상상으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광대역 통신망은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합니다. 페이스북보다 빨랐던 싸이월드, 구글보다 빨랐던 네이버, 아이팟보다 빨랐던 아이리버, 유튜브보다 빨랐던 판도라TV까지.. 한국은 디지털 온라인 세계의 최첨단을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너무 빠른 발전 속도는 콘텐츠 산업의 근간을 흔들어 놓았고 세계적인 ‘한류’의 유명세와는 달리 창작자의 무덤이 되어버렸습니다.
한국, 무선 인터넷 속도 세계 ‘최고’.. 와이파이는 최대 27배
한국의 무선인터넷(광대역 LTE), 공공 와이파이 다운로드·업로드 속도가 북미, 유럽 등 해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세계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10일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는 미국 뉴욕·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라스베이거스, 캐나다 토론토, 일본 도쿄, 홍콩,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국내 이동통신 서비스 품질을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국내 LTE 이동통신 서비스 속도가 해외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최대 5배 가량 빠른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결과, 국내 무선인터넷 다운로드 속도의 평균값은 133.43Mbps에 달했지만, 뉴욕은 31.00Mbps, 샌프란시스코는 43.34Mbps, 런던은 41.24Mbps, 파리는 53.89Mbps에 그쳤다. 한국을 제외하고 가장 다운로드 속도가 높은 곳은 토론토였는데 속도가 74.17Mbps로, 국내 절반 수준이었다.
무선인터넷 업로드 속도 역시 우리나라는 평균 34.04Mbps였으나 외국 주요 도시는 이보다 낮은 17∼30Mbps 수준이었다. 공공 와이파이에서는 차이가 더 벌어졌다. 와이파이의 경우는 6~27배까지 차이가 난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와이파이 다운로드 속도(286.73Mbps)·업로드 속도(296.86Mbps)가 무선인터넷 다운로드 속도보다 훨씬 높은 데 반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와이파이 다운로드 속도가 훨씬 느렸다. 뉴욕의 와이파이 다운로드 속도는 15.22Mbps, 업로드 속도는 16.85Mbps에 그쳤고, 런던은 각각 11.32Mbps, 12.17Mbps 수준이었다. 공공 와이파이 속도가 가장 빠른 파리도 각 47.79Mbps, 78.48Mbps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는 "국내 공공 와이파이 서비스 수준이 월등하게 우수한 것으로 나타난 이유는 와이파이 AP에 연결된 유선망의 회선 품질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해외에 나가 보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느끼실 겁니다. 대중교통과 함께 한국의 인터넷 네트워크의 속도가 얼마나 좋은지 말이죠. 서울 시내에서는 공공와이파이만으로도 끊김 없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모바일 인터넷의 속도는 5배가 빠르고 와이파이는 27배가 빠르다니, 반대로 해외로 나가면 모바일 인터넷은 5배가 느리고 와이파이는 27배가 느리다는 얘기입니다.한국에서 다운로드받는 데 1시간이 걸리는 영화 파일을, 모바일로는 5시간, 와이파이로는 27시간 걸려 받아야 한다는 얘깁니다. 속 터집니다. 나가서 영화를 보고도 남을 시간입니다. 호텔 방에서 사진 한 장 업로드 하기 위해 뚝뚝 끊기는 와이파이로 고생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실 겁니다.
영국의 런던 같은 경우는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지하철에서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전화 통화도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책을 읽거나, 다운로드 받은 음악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비단 런던만의 일이 아닙니다. 세계의 인터넷 통신망 환경은 한국의 그것에 비하면 한참 열악합니다. 와이파이는커녕 전화도 터지지 않는 음영지역들이 많고, 통신회선의 품질도 한국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여전히 사람들이 콘텐츠를 사용하는 데 있어 책이나 CD와 같은 아날로그 콘텐츠 매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와 관련된 유통망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한국의 인터넷 네트워크가 이토록 발전한 것은 정부의 정책 때문이기도 하지만 땅덩어리가 작고, 그나마도 대도시에 촘촘히 모여 살아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찌감치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깔아 놓은 광대역 통신망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여건입니다. 많은 나라들이 광대역 통신망 구축을 포기하고 모바일 네트워크로 선회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위의 기사에서도 언급했듯이 와이파이 AP의 품질은 연결된 유선망의 회선 품질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당분간은 다른 나라들이 한국적인 인터넷 환경을 구축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얘기가 되기도 하는 겁니다.
5G, 심지어 차차세대 6G 통신은 인공위성을 활용한 기술이라고 하니 시간이 지나면 좀 격차가 해소될까요? 어쨌거나 이 독특한 한국적 상황에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미래도시를 경험하는 것 같겠습니다.
통신 유토피아, 창작자들의 디스토피아
통신 서비스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토피아 한국은 콘텐츠 산업의 우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디스토피아인지도 모릅니다. 27배, 5배나 빠른 한국의 인터넷 환경이 어떻게 콘텐츠 산업을 망가뜨렸는지 세계가 연구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의 음악시장은 2015년을 기점으로 디지털 음원의 매출이 실물음반의 매출을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음악산업은 이미 2003년에 디지털 음원의 매출이 실물음반의 매출을 넘어섰습니다. 그 결과로 한국의 음악산업 종사자들의 형편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미 충분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직은 시간이 있습니다. 디지털 콘텐츠의 비중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CD를 사고 책을 삽니다. 줄어들고는 있지만, 서점과 레코드 가게들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그러나 대세는 거스를 수가 없습니다. 디지털 콘텐츠가 빠르게 오프라인 시장을 잠식하고 있고, 통신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니 전 세계의 오프라인 콘텐츠 유통업계와 창작자들은 이제 한국적 상황에 대비해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한국의 창작자와 제작자, 그리고 관련 오프라인 유통산업이 경험했듯이 어쩌면 모두에게 참혹한 재앙을 예고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때까지. 세계의 창작자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세계의 창작자들이 한국의 창작자들처럼 일방적인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한국이 걸어간 발자취를 잘 연구해 보아야 합니다. 그대로 따라오면 큰일 납니다.
구독경제의 위협
미국 10대들의 우상, 테일러 스위프트는 애플뮤직이 출시 이벤트로 3개월간 무료 서비스를 하면서 저작권료를 3개월간 지불하지 않기로 하자, 이에 반발하여 자신의 앨범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이에 애플은 하루 만에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와도 수익 배분 문제로 모든 앨범 계약을 철회하기도 하였습니다. (왠지 한국에서였다면 해당 아티스트의 급작스런 열애설, 마약설이 터졌을 거란 묘한 기시감이 들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쟝르를 불문하고, 모든 콘텐츠의 영역에서 무차별적인 산업구조 개편을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스트리밍 기술의 발전은 콘텐츠에서 물성을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소유의 개념조차 포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멜론, 스포티파이, 넷플릭스와 같은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 모델의 대두는 콘텐츠를 점점 공공재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콘텐츠를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기술의 발전은 환영해야 할 일이지, 우려해야 할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콘텐츠에서 물성(몸)을 제거하고 공기처럼 전파를 따라 둥둥 떠다니게 만들어 놓고선 그것을 세상에 내어놓느라 수고한 창작자와 제작자가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한다면, 누가 콘텐츠를 제작하려고 하겠습니까? 게다가 기존 산업의 구성원들과 아무런 논의나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산업구조를 개편해 가는 일은 기술의 발전을 등에 업은 폭력인 것입니다.
구독경제가 마치 최첨단 경제모델인 것처럼 각광을 받고 있지만, 그놈의 구독서비스는 콘텐츠의 비정규직화랑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필요할 때만 고용을 유지하는 비정규직의 양산이 노동자에게 어떤 해악을 끼쳤는지, 세대 간에 어떠한 갈등을 일으켰는지 굳이 여기에서까지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원래 신분이 프리랜서, 비정규직인 창작자의 작업환경을 넘어 이제 공들여 만든 창작자의 콘텐츠마저 비정규직화하겠다면 누가 영혼을 담아 콘텐츠를 만들겠습니까? 영혼을 불어넣어 세대와 세대를 거치며 생명력을 잃지 않는 명작을 만들어도 부족할 판에, 잠시 잠깐 유행 따라 지나가고 마는 인스턴트 콘텐츠만을 양산하게 하는 이러한 산업구조는 그 끝이 암울하기만 합니다.
구독모델은 통신망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온라인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서비스를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소비자는 콘텐츠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에 접속할 뿐입니다. 짝사랑하는 그, 그녀의 실루엣마냥 훔쳐보고 잠깐보고 돌아서고 돌아서야 하는 겁니다. 접속의 연인처럼 평생 얼굴 없는 상대와 아쉬운 대화만을 나누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다 어느 날 사용료를 내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통신망에서 제거되고 접속은 불가능해집니다. 구독을 멈추는 순간, 경험한 콘텐츠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아쉽고 말지 모르지만, 창작자들에게는 기록만 남는 것입니다. 작품의 기록, 작업의 기록, 접속의 기록.. 자신의 창작물은 서버 어딘가로 영원히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모니터속 연인은 존재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지는 겁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그러나 아직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5G 시대의 개막과 같은 통신기술의 발전은 플랫폼 사업자와 단말기 제조사, 그리고 통신사업자의 디지털 콘텐츠 유통망을 더욱 확장해 가도록 하겠지만,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전히 CD와 DVD, 종이책과 같이 물성을 가진 매체를, 콘텐츠를 담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고, 그 수요 또한 줄어들고는 있을지언정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더 늦기 전에,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며, 창작자와 제작자 그리고 기존의 오프라인 유통구조에서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구조적 대안이 새롭게 제시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콘텐츠에 새로운 몸(물성)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리플릿이 필요합니다. 한국적 상황이 전 세계적 상황이 되지 않으려면 콘텐츠 기술의 발전이 빠뜨리고 갈 뻔한 디지털 콘텐츠의 다음 몸을 새로 입혀 주어야 합니다. LP - TAPE - CD, DVD를 잇는 콘텐츠의 다음 몸, 리플릿을 입혀 주어야 합니다.
[리플릿 : Activating 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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