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2월 무렵.. 고등학교 동창 여럿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서 오랜만에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평소 별 다른 대화없이 직장생활의 신세한탄을 늘어놓거나 가끔씩 경조사를 전하는 기능으로 연명하던 방이었는데 읽지 않은 대화글이 수십개가 넘은 것을 보고 “무슨일이 있나?” 하며 들어가 보았다.
욕이 난무하던 토론의 골자는 이랬다. 평소 말이 없던 한 친구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매입해 수십배의 수익을 거둔 것을 인증하며, 곧 이것이 화폐를 대체할 것이니 당장 사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친구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고 소위 작전질, 다단계 사기 등을 언급하며 그 친구의 제안을 분탕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난 조용히 그 대화를 관망하며 어떠한 피드백도 남기지 않은 채, 조용히 비트코인 거래소를 검색하고 당시 어디에도 쓸데없던(?) 비자금을 탈탈 털어 이더리움을 샀다. 난 그렇게 처음으로 “블록체인”을 접했다.
최근 사무실, 치킨집, 카페 등 어딜가도 비트코인, 블록체인 얘기를 한다. 한 방송국에서는 8시뉴스를 대체하여 2시간짜리 토론 방송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작년 한해 사회적으로 가장 이슈화 되었던 키워드가 아마도 블록체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도대체 블록체인이 뭐길래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할까?
워낙 많은 매체를 통해 소개되어 블록체인이 뭔지, 비트코인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블록체인은 암호화된 분산 원장 기술이며, 이 기술을 기반으로 마치 화폐와 같이 사용할 수 있도록 익명의 개발자가 프로토콜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비트코인이다. 화폐는 그것의 가치를 사용자들이 신뢰하도록 해주는 각국 정부, 은행과 같이 중앙화된 미들맨(Middle Man)이 있어야 사용자들이 믿고 쓸 수 있는데 이 기술은 그 프로토콜 위에서 사용자끼리 신뢰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설계되 있어 미들맨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존 사회에서 뿌리 깊게 박혀있고 태초부터 그래야만 했을 것 같은 화폐에 관한 자본주의의 프레임을 완전히 와해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이 개념은 쉽게 이해되거나 적용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가즈아”를 외치며 이 어려운 개념에 투자했고 엄청난 시세 폭락에 “구조대” 를 기다리며 블록체인을 “학습”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화폐의 가치는 항상 하락했다. 노동의 댓가로 받은 월급을 “신뢰하는” 은행에 넣으면 그 숫자가 아주 조금은 커져서 돌아왔지만, 그 숫자로 살 수 있는 상품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화폐를 그냥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가장 멍청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이 현 사회다. 비트코인 열풍은 바로 이러한 현 사회의 화폐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불만으로 인해 생긴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블록체인은 어떻게 될까? 다가올 새로운 ICT산업의 핵심은 모든 것이 초연결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네트워크에서 수많은 형태의 정보와 가치들이 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자동차는 시스템과 통신하며 운전자 없이 움직이고, 청소기는 빅데이터를 분석해 더러운 집을 스스로 청소한다.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가 기기끼리 전달되고 그에 따른 이용의 댓가는 상응한 가치로 보상 되어야 한다. 현재의 화폐가 이 유기적인 생태계 안에서 가치의 척도로 작동될 수 도 있지만, User가 직접 해당 Data에 대한 Owner-ship을 갖고 의사 결정하며 그 것이 미들맨에 의해 정의되지 않고 그 네트워크 안에서 합의된 약속에 의해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생태계가 있다면 어떨까? 이런 신뢰의 네트워크에선 모든 유저, 기기 등이 조금 더 유기적이고 효율적으로 동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것이 바로 블록체인이 나아가야 할 “토큰 이코노미” 생태계이다.
현재 수 천개의 암호화폐가 거래소에서 사고 팔리며, 백서를 내놓고 ICO를 진행하는 코인은 수만개에 이른다. 제대로 돌아갈 수준으로 구현되지 않은 암호화폐들의 가치를 화폐 단위로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향후 ICT의 신사업 영역에서 미들맨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유저들의 사용성에 기반한 최적화된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발전된다면 그것이 토큰 이코노미 생태계 구축을 통한 블록체인 가치의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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