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도구탓] 홋카이도 여행기 1일차

in #travel7 years ago (edited)

12월 23일 1일차

  • 비행기는 아침 8시 반에 출발해 11시에 신치토세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도착하는 대로 숙소 체크인을 마치고 삿포로 시내 여기저기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23일 아침 인천공항에는 안개가 가득 차 있었다. 비행기 창가에 앉았지만 관제탑은커녕 바로 옆에 있는 비행기의 회사가 무엇인지도 알아보기 어려웠다. 안개가 걷히고 먼저 출발했어야 할 비행기들을 보내기까지 다섯 시간 정도 걸렸다. 오후 1시를 넘겨 출발한 비행기는 4시쯤 도착했다. 서울보다 북쪽에 있는 삿포로는 이미 해가 져 어두웠다. 짧은 여행 기간 중 하루를 날린 것 같아 괜히 억울했다.

  • 계획했던 모든 일정을 뒤로 하고 저녁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여행의 첫 메뉴는 양고기 철판구이인 징기스칸이었다. 여자친구의 스마트폰에 설치된 익숙지 않은 구글맵과, 여자친구의 환상적인 방향감각에 의지해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삿포로의 유명한 징기스칸 전문점인 다루마, 그 중에서도 본점을 목적으로 걸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다루마 5.5점에 도착했다(이날 밤 숙소에 도착해 내 폰에도 구글맵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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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이 길어 1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좁은 비행기 안에서의 5시간 기다림으로 단련되어 있어서인지, 그렇게 지루하진 않았다. 다루마의 양고기는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평소 양고기를 좋아했던 나도, 잡내가 심하다는 편견 때문에 양고기를 먹지 않았던 여자친구도 폭풍흡입했다. 거기에 삿포로 생맥주까지. 장시간 대기로 인한 피로와 억울함이 한순간에 잊혀졌다. 2차로 스스키노의 이자카야를 갈 생각이었던 우리는 양고기를 적당히 먹기로 했었지만, 다루마를 나왔을 땐 이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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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진다. 연착으로 침울해진 마음으로 여행 온 기분을 내지 못했던 우리는, 다루마를 벗어날 때 비로소 새로운 환경에 설렘과 기쁨을 느꼈다. 스스키노의 관람차, 닛카 위스키 로고가 박힌 전광판, 거대한 털게 간판 등이 존재감을 과시하는 거리를 보며 계속 걸었다, 한국인에게는 무조건 이국적인 느낌을 줄 수밖에 없는 전차를 타며 놓쳐버린 여행 첫 날의 아쉬움을 달랬다. 일본에 왔음을 실감하기 좋은 돈키호테, 드럭스토어, 편의점에 들렀다가 숙소에 돌아와 홋카이도 한정판 삿포로 캔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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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삿포로에 도착했을 땐 설렘보단 아쉬움이 컸는데, 기대했던 눈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삿포로는 유난히 추웠던 지난주의 서울보다 따뜻했다. 새하얀 눈이 쌓인 거리를 뽀득뽀득 밟을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반쯤 녹은 눈은 발바닥과 만날 때마다 치덕치덕 소리를 낼 뿐이었다. 평소 보지 못했던 몇 가지 것들로, 이곳이 눈이 많이 내리는 곳임을 겨우 짐작할 수 있었다.

    삿포로나 이후에 갔던 오타루, 요이치 등 시내 거리 곳곳에는 흰색과 빨간색으로 칠한 폴대가 세워져 있었다. 도로의 코너, 전압기, 소화전 등 도로나 인도의 설치물들 옆에는 폴대가 꽂혀 있었다. 도로가 눈에 파묻혔을 때 이것들의 위치를 가늠하게 하는 역할인 것 같았다.

    사람이 다니는 길에, 특히 고층 건물 밑에는 어김없이 두상주의, 또는 낙설주의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옥상 등에 쌓인 눈이 인도로 떨어져서 사람이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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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스키노의 거리를 걷다가 가끔씩 거리에 세워진 일장기를 봤다. 여행 첫날인 12월 23일은 일왕의 탄생일이어서 일본의 공휴일이었다. 그래서 세워진 것 같았지만, 기분은 이상했다. 일본 사람이나 문화에 호감이 있고, 그래서 여행까지 와도, 일본이라는 국가나 정부에 대해 무의식적인 반감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싶었다. 한편으로는 일본 사람은 23일에도 쉬고 25일에도 쉬면, 24일에 휴가를 내 연휴를 푹 쉴 수 있겠다 싶었는데, 일본에서 12월 25일은 공휴일이 아니란다.

  • 맥주를 사들고 숙소로 가기 전에, 삿포로 테레비탑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탑 앞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져 있었고, 우리는 그 앞에 서서 트리와 탑 전체가 나오도록 찍으려 했다. 간이 삼각대를 세워 몇 번 시도했지만, 탑이 너무 높아 고역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한 일본인(현지인인지 관광객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도 단체로 와서 놀고 있었기 때문이다)이 사진을 찍어주겠다 자청했다. 탑이 다 나오도록 찍고 싶다는 뜻을 어찌어찌 전달했더니, 거의 바닥을 뚫고 들어가겠다 싶을 정도로 쭈그려 앉아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럼에도 사진에 탑이 잘 나오지 않자 미안해하며 다시 찍어주겠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바닥에 완전히 엎드릴 것 같았기 때문에 부탁하지 못했다. 고마운 마음이 커 이런 저런 표현을 통해 이를 전하고 싶었지만, 일본어가 짧아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만 연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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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삿포로 즐겨마시는데... 지명인지는 몰랏네유~ ㅎㅎ

삿포로 캔에 있는 별도 맥주 로고가 아니라 도시 로고라고 하더라고요~ 감사합니다!!

와 일본
일본은 참 가볼만한곳이 많은거 같아요 ^^
저도 4월에 일본여행 가는데 다음 포스팅 기대할께요 ^^

감사합니다~!! 저도 4월에 갔다 오실 일본여행 후기 기대할게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