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오후 / 노보리베츠
스타벅스를 나왔다. 약하게나마 눈이 내렸다. 버스 출발시간에 맞춰 탑승 장소로 갔다. 노보리베츠의 숙소에서 운영하는 송영버스였다. 유료지만 대중교통보다 훨씬 쌌다. 1인당 편도 요금이 1000엔이었다. 삿포로에서 노보리베츠로 가는 JR 기차가 4000엔 정도, 고속버스가 2000엔 정도다. 일본의 교통 물가는 정말 비싸다. 여행 오기 전 인터넷을 통해 송영버스를 예약했다.
잠이 부족했나보다. 알람도 못 듣고 늦게 일어났는데도 말이다. 버스에서 한 시간 정도 잤다. 눈을 떴을 땐 눈발이 셌다. 중간에 들른 휴게소에는 제법 눈이 쌓여 있었다. 홋카이도에서 드디어 제대로 된 눈을 만나나 싶었다. 그간 반쯤 녹은 거리의 진눈깨비와 비만 봐왔던 우리였다. 편의점에서 과자 하나와 음료수 하나를 샀다. 평소 먹던 것과 얼마나 다를까 기대됐다. 과자는 평범한 감자칩이었다. 반대로 음료는 좀 더 특별했다. 밀키스와 이온음료의 중간 정도의 맛이었다. 탄산은 없었다. 과자보단 음료를 훨씬 맛있게 먹었다.
버스 창밖으로 도깨비 형상이 보였다. 지옥이라는 별칭이 있는 노보리베츠의 상징이 도깨비다. 노보리베츠 그랜드호텔 앞에서 내려 체크인을 마치고 객실로 들어갔다. 다다미로 꾸민 일본풍 객실을 예약했었다. 일본식 문화를 체험하고 싶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행 오기 전에는, 홋카이도에서 일본 전통을 체험한다는 것이 모순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일본이 홋카이도를 개척한 시기는 근대 이후니까 말이다. 그래도 신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유카타를 입고 다다미 바닥에 앉아 나름 조신하게 차를 마셨다.
유카타를 입고 거리를 돌아다녀도 문제없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겨울이었다. 산 채로 냉동되어 화석이 될 것이 분명했다.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눈이 주던 정취와 감상은 사라졌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기 때문이다.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혹한, 가혹한 추위라는 말을 실감했다. 택시를 탈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걸어서 지옥계곡으로 향했다. 언제 이런 눈을 또 맞겠나 싶었다. 지옥계곡은 숙소에서 멀지 않았다.
지옥계곡 입구에 도착했을 땐, 해가 져 어두웠다. 4시 반에서 5시 쯤 됐을 시간이었다. 두 번이나 겪었음에도 이른 시간의 일몰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지옥계곡을 어두워서 못 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오기로 했다. 아쉬운 마음에 유황 냄새만 한껏 들이마셨다. 향기롭지는 않지만, 자꾸 맡게 되는 구린내였다. 양손을 막 비벼 나는 냄새도 하다보면 계속 맡게 되는 것처럼. 니코틴 같은 중독 물질이 공기 중에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해봤다.노보리베츠 온천 지역엔 별다른 식당이 없다. 여행객들은 주로 료칸이 제공하는 석식, 가이세키를 먹기 때문일 것이다. 그랜드호텔이 제공하는 가이세키 가격은 1인당 5000엔 정도였다. 우리는 비싸서 가이세키를 예약하지 않았다.
몇 안 되는 식당이 모인 거리로 왔다. 그나마도 문 닫은 곳이 많았다. 7시도 안 된 시간이었다. 묘하게 환경적인, 또는 문화적인 시차가 느껴졌다.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문 열린 식당에 후다닥 들어갔다.허름하면서도 홀은 넓은 식당이었다. 한적한 바닷가의 조개구이집을 연상케 했다. 메뉴판을 보니 정말 여러 해산물들을 구워 파는 곳이었다. 자리를 잡고 가이센동 두 그릇과 생맥주 두 잔을 시켰다.
기대하지 않았던 식당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홋카이도에서 처음 혹한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을까. 정말 맛있게 먹었다. 해산물이 대체로 싱싱했다. 여자친구가 밥에 얹힌 생새우를 먹어봤다. 인생 새우라 했다. 갑각류 알레르기를 무릅쓰고 먹어봤다. 정말 그랬다. 이후 한동안 식도와 위 안에서 가려움이 올라왔지만.
└ 위에는내가 주문한 가이센동. 아래는 여자친구의 가이센동다른 테이블에서 옥수수를 주문했다. 점원이 정체 모를 소스를 발라 구웠다. 숯불 위에서 익어가는 옥수수가 정말 군침 돌게 했다. 배가 불러 더 먹을 순 없었다. 하나 포장해 달라고 점원에게 말했다. 받아들고 식당을 나왔다. 기념품점에서 선물용으로 마유크림과 입욕제를, 주류판매점에서 사케를, 편의점에서 몇몇 안주와 맥주를 사들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다시 유카타를 입고 온천장으로 갔다. 숙소로 돌아올 시간을 정해두고, 여자친구는 여탕으로 나는 남탕으로 따로 입장했다. 유카타를 벗어 바구니에 넣어뒀다. 샤워를 마치고 노천 온천에 입수했다.
야외였지만 벽으로 둘러쳐져 하늘만이 보이는 공간이었다. 콘크리트 기둥들 사이에 나뭇가지로 만든 울타리가 쳐 있었다. 인위적으로 만든 노천 온천이 분명했다. 하지만 밖에서 즐기는 온천 분위기를 내는 데는 충분했다. 유황 냄새가 나는 따뜻한 물에 피로가 풀렸다. 반대로 머리는 찬 공기를 접하고 있었다. 목조로 된 지붕이 있었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휘날리는 눈이 머리를 때렸다. 그때마다 온천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전혀 답답하지 않았다. 답답함 때문에 평소 대중목욕탕을 좋아하지 않았다. 실내에 있는 탕 안에 오래 있는 게 어려웠었다. 노천 온천에서는 달랐다. 두 시간 쯤 있다가 나왔다.방에는 침대가 없었다. 돌아오니 대신 다다미 위에 이불이 깔려 있었다. 온천을 즐기는 중에 직원이 들어와 잠자리를 세팅한 모양이었다. 이불을 한쪽으로 살짝 밀어뒀다. 아까 사 온 사케와 맥주, 안주들을 펼쳤다. 맛을 구별할 능력은 없지만, 처음 본 사케는 충분히 깔끔했다. 옥수수는, 기대만큼은 아니어도, 달달했다. 말린 건어물과 치즈가 더해진 씹을거리는 딱 술안주였다. 편의점에서 고른 과자는 또 감자칩이었다. 안에 고기가 들었을 줄 알았던 튀김은 감자 고로케였다. 홋카이도 한정판 삿포로 캔맥주는 언제나처럼 맛있었다. 다 먹고 잤다.
사진 너무 좋네요 마치 예전에 봤던 이니셜D가 떠올랐습니다ㅎ
앞으로 자주뵈요^^(팔로우&업보팅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맞팔했어요~! 종종 들르겠습니다ㅎㅎ
음식이 너무 정갈하고 먹음직스럽네요.
양이나 해물 종류가 다르긴 하겠지만, 가격도 삿포로나 오타루에서 파는 가이센동보다 저렴에서 더 좋았아요ㅎㅎ 감사합니다!!
지옥계곡이라는 곳의 사진을 보니까, 밤인데도 길이 환하게 빛이나네요? 길에 등을 새워둔 건가요?
네ㅎㅎ 사진은 위에서 내려다 본 구도고, 바로 지옥계곡과 맞닿아 걸을 수 있는 길이 등을 세워둔 곳입니다~
@timberbellsound 님을 이벤트에 추천했는데 관심있으시면 한 번해보시길 바랄께요 ~
즐거운 주말보내세요~
https://steemit.com/sevendaybnwchallenge/@dreamyacorn/7-day-black-and-white-photo-challenge-dreamyacorn-day6
와 어떤 사진을 올려야 하나 당혹스러움이 일면서도 재밌을 거 같아요ㅎㅎㅎㅎ
오늘부터 올릴게요. 좋은 이벤트에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