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같이 떠나는 배낭여행] 미친여행 CHAP4_15 이탈리아 - 희한한 블로거 | 미션과 함께 세계일주 2년

in #tripsteem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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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블로거

2011년 12월 3일




1




내가 이 집을 떠나기 전날부터 다들 부둥켜안고 울었다.
닭똥같은 눈물을 애써 닦느라 바쁘다.
정은 주고 싶은데, 붙여본 적이 없는 분들이시다.
그래서 사람을 떠나보냄에도 익숙하지 않다.

전날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 사빌리아노 역까지, 이들의 눈물샘은 마르지 않았다.

한 분 한 분 뜨거운 포옹을 하고 밤새 쓴 편지 한 장씩 받는다.
가슴 한켠이 뭉클해진다.
하지만 난 이런 정도로는 울지 않는다.
이미 사람을 만나고 보내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기차가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입맞춤 한 번 씩 하고 올라탄다.

근사한 추억을 만들어준
사빌리아노, 사라, 부모님... 안녕~!







2





토리노에서 베네치아까지 가는 기차




토리노에서 베네치아까지 가는 기차 안.
고속열차라고는 하는데, 고속을 못 낸다.
KTX 호남선 구간의 기분이다.

기차는 충분히 속도를 낼 수 있는데, 노선이 고속선이 아니라 못 달리는 것 같이 말이다.

지도를 봐도 토리노에서 베네치아보단 베네치아에서 로마가 훨신 거리가 길지만,
토리노에서 베네치아까진 4시간 40분, 베네치아에서 로마까진 3시간 10분이다.
3시간이면 좀 참을 만한데, 5시간에 육박하면 좀 문제가 있다.

이탈리아 기차가 좀도둑으로 악명높은 건 다들 알고 있을 터.
털어갈 짐도 없긴 하지만,
만에 하나 옷가지가 모두 털리면 대책이 없기 때문에 계속 자리를 지켜야 했다.

4시간이 지나가자 엉덩이가 저려온다.
제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었지만 움직일 수 없다.
제자리가 한계다.

짐 감시할 사람도 없어 화장실도 못 가겠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밀라노, 베로나 같은 큰 역에 정차하면 왜 10분이나 죽치고 있는지...
그 시간에 달리면 절약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만데...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에 도착하니 몸이 뻐근해서 잘 움직여지지 않더라.



3





호스텔도 간신히 찾았다.
도로지도 덕에 근처까진 잘 찾았는데, 이상하게 그 번지수만 나오질 않았다..
30분을 왔다갔다 하다 결국 여행센터에 물어보고나서야 찾았다.
그 날 밤은 어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힘들다.
그냥 곧바로 침대에 쓰러졌다.








다음날 아침 8시. 보통은 6시 30분이면 일어나는데 피곤하긴 했나보다.
수건을 질질 끌면서 샤워장으로 기어간다.

그런데 동양스러운 사람이 아침부터 노트북을 달그닥거리고 있었다.
혹시나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지 뒤로 슬쩍 간다.
한글이다. 역시나 우리나라분이시다.

난 그저 모니터의 언어만 확인하고 씻으려 갈 생각이었는데,
촉이 빠르신 이 분은 아예 대놓고 ‘안녕하세요?’라 하시더라.

분명 새벽차로 떨어지셨을텐데 아침부터 컴퓨터를 잡고 계신 것이 정말 신기하다.
‘안녕하세요’ 후로는 다시 묵묵부답이다.

“잠시만요.. 블로그에 사진 좀 올리고요...”

블로그 관리를 열심히 하시는 분인가 했다. 그런 줄만 알았다...

씻고 나와보니 작업이 모두 끝난 모양이다.

“전 여행 나온 지 2년 되었고요, 여행 블로그 운영하고 있어요.”

“우와~ 2년동안 계속 여행기 올리신거예요?”

“그죠. 이젠 돌아갈 때가 다 되어서 좀 아쉽지만요.”

“근데, 그렇게 꾸준히 올리려면 힘들지 않아요?”

“매우 힘들죠. 귀찮기도 하고.
그런데 꾸준히 키우니깐 사람들도 많이 오고, 관심 가져주고 하는 맛에 열심히 하고 잇어요.”

말씀은 이렇게 하시는 데, 블로그 히트수를 보니 몇백만이다!

“혹시 파워블로거세요?”

“그런 쪽이죠.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네이버 블로그를 뚫었을텐데...
애초에 싸이월드를 고른 것이 매우 후회가 되요.”

“싸이월드도 매우 세지 않나요?”
(당시에는 싸이월드도 어느 정도 힘이 있던 때였다.)

“네이버와 비교해서 사람 수가 6배 차이가 나요. 꽤 차이가 커요.
네이버였으면 지금 블로그로 끝나는 게 아니고 책이나 사진집 하나라도 냈을텐데...”

사진첩을 하나한 넘겨가며 지난 2년간의 여행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 분은 싸이월드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XX희한한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분이다.
나는 태어나서 생전 처음 듣는 미션 여행이라는 것을 하고 계셨다.
(여행자 세계에선 흔한 아이템 중 하나일 수는 있지만..)
미션 여행이라 함은, 특정 여행지에서 하는 미션을 걸어놓고 다닌 것을 뜻한다.

처음에는 자신이 미션을 정하여 실천하고 다녔지만,
점차 블로그가 유명해짐에 따라 미션 요청을 받는다는 글을 올리면 별별 희한한 미션이 다 올라온다.
그래서 공중부양하는 사진, 프리허그 등등의 사진이 많다.




이것 말고도 정기 미션으로 100엽서 프로젝트도 진행중이셨다.
말 그대로, 현지에서 집 오기 전에 100명에게 엽서를 보내는 일이다.
‘엽서 받고 싶으신 분’ 포스트 하나에 달린 수십명의 댓글을 보니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사진들 중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옷이고 물건이고 하나도 없다. 집에서 안 입는 옷 달라’ 이런 걸 들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포즈로 앉아있는 사진이 있다.

“인도에서 버스를 타고 갈 때였어요. 짐들은 모두 차 위에 실으래요.
전 이거 뭔가 불안불안했죠. 가다가 떨어드릴 것 같아서 말이죠.
그래서 다시 물어봤는데 ‘노 프라블럼’이래요.
당신같은 사람 수백명 태웠는데 잃어버린 적 한 번도 없었다고요.”

그 다음 이야기야 뻔하다. 가다가 급커브를 돌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뭔가 ‘쿵’하는 소리가 들렸단다.
차에 큰 충격이 갔겠고, 짐이 날아갔을 것이라는 감이 확 왔단다.
바로 차를 세워서 짐 체크를 했다.
실어놓은 짐이 모두 사라졌다.




주위를 모두 찿아봤다.
그런데, 이상한 건 지나온 길 주변에 아무 짐도 떨어져 있는 게 없었다!
그 전에 이미 날아갔나 싶었다.

짐 배상을 요구했지만, 배를 째고 버티는 이 나라 사람의 특성상
두손두발 다 들고 목적지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모든 옷가지가 다 날아간 상황.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옷 구걸을 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전 그저 옷이 필요해서 집에 남는 옷 있으면 달라고 써 놓은건데,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요.
자기네 나라 사람들만 구걸하는 줄 알았는데,
딱 봐도 외국인이 거지꼴로 구걸하고 있으니깐요.”

그런데, 달라는 옷은 안 주고, 옷 대신 돈을 주고 가신다.
‘옷 사입어라’, ‘너의 여행을 응원한다’ 등...

“한 달 벌어봐야 30만원 버는 사람들이 저한테 몇 천원씩 적선을 하는거예요!
거의 하루 일당의 반을 저한테 준 거예요!
그렇게 10만원 넘게 모인 것 같아요.
힘들게 벌어 저한테 준 것 어떻게 써요?
근처에 사원에 가서 모두 기부했어요.”

스토리가 한둘이 아닌 것 같다.
왠지 이 분과 다니면 별 재밌는 일이 많이 벌어질 것 같다.

그리하여 베네치아는 이 분과 같이 다니게 되었다.
자기의 길잡이가 되어달라는 중국 아이와 볼로냐에 같이 가자는 스페인 형을 뒤로 하고.

















베네치아는 정말 구불구불하고 어디가 무슨 길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산 마르코 광장으로 가는지, 그 반대인지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바퀴달린 것은 존재하지 않는 곳.
모든 이동은 배로만 이루어지는 곳.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하지만, 4시간 쯤 돌고 나니, 금세 질려버렸다.
모든 곳을 배로 다니고 다리를 넘어 다닌다는 건 그저 4시간짜리 신비함일 뿐이었다.
더 이상 다니기 귀찮다.
그냥 점심 먹고 방에서 굴러다니기로 한다.

이번 점심은 여행 처음으로 내가 사게 되었다.
이 짠돌이가 갑자기 돈은 어떻게 푸냐고?

산 마르코 주변에서 한참 떠들고 있을 때였다. 그 분이 운을 떼신다.

“정말 저는 많이 얻어먹고 다닌 것 같아요.”

“여행이 그렇게 파란만장하시니 그렇죠.”

“여행 이야기 좀 많이 풀면서 가난하게 다닌다고 하면 다들 밥을 사 주시더라고요.”

사실 나도 그래왔다.
5달 동안 머리도 깎지 않고 자전거 여행을 하니
사람들이 딱해서라도 밥 많이들 먹여 주었다.

“근데, 하루는 절대 아무것도 사 주지 않던 분이 있었어요.
하루에 20유로로 다닌다고 가난하다고 했는데도 끝가지 사주지 않으셨어요.”



아, 아직 난 이 분한테 하루 20유로로 생활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는 전력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냥 보통 여행자처럼 보였을테고, 그래서 이런 말은 던져봄 직 하다.
비싼 서유럽에선 어떡하든지 도움을 요청해야 그나마 예산에 맞출 수 있다.
나도 한동안 그 생활로 살아왔다.
나를 내세우면 돈을 굳힐 수는 있겠다.,
하지만 난 곧 한국으로 간다.
이제 돈은 그렇게 생각 안 해도 된다.
이 분은 서유럽에서 한 달 반은 더 있어야 한다. 계속 아껴야 한다.

에스토니아에서 아르고가 그랬었지?

“나한테 보답하지 말고, 길 가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면 그게 나에 대한 보답이야.”

곤경에 처했다고 하긴 그렇지만
궁상맞게 여행하는 사람끼리 서로 도와주도록 하고 내 여행은 밝히지 않도록 한다.

미션여행이라는 새로운 여행도 배웠는데, 이번 밥 한끼가 아까우랴?
기막힌 여행 이야기엔 합당한 보답이다.
약소한 한 끼니로라도 더 스펙타클하고 골때리는 이야기의 원동력이 되기를!




옆 섬으로 가는 뱃길이 다 막혀버렸다.





이탈리아의 빨래 너는 법. 날이 맑았으면 훨씬 좋았을텐데










<이전 포스팅>

CHAP4 파리, 리옹, 멘체스터, 런던, 토리노, 베네치아, 볼로냐, 피렌체, 아씨시, 나폴리, 로마
CHAP4_14 이탈리아 - 일상 / 그들이 먹고 사는 물가
CHAP4_12+13 이탈리아 - 일상 + 그 남자 그 여자의 갈라짐
CHAP4_11 이탈리아 - 이들의 일상으로 | 모녀와 같이 토리노 나들이
CHAP4_10 이탈리아 - 인터넷에서 현실까지 2 | 한류에 중독된 이탈리아 여자아이
CHAP4_09 이탈리아 - 인터넷에서 현실까지 | 페북에서 만나 현실에서 보게 되는 현지인 여자아이
CHAP4_08 다시 찾은 런던 2
CHAP4_07 다시 찾은 런던 1
CHAP4_06 Manchester Life 5 - 돌아가면 대통령이 되고싶어요
CHAP4_05 Manchester Life 3, 4 - 영국에서 아이폰 사기, 영국의 불고기감은 짜다
CHAP4_04 Manchester Life 1, 2 - 교회체험, 박지성 경기 직관해보기
CHAP4_03 멘체스터에서 유서방 찾기 | 핸드폰 없이 사람찾기 2
CHAP4_02 얻으려면 기다려라
CHAP3_18 + 4_01 터키 안녕 + 파리에는 사람을 친절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나?

CHAP3 이스탄불
CHAP3_17 [Photolog] 오크에서 사람이 되기까지
CHAP3_15+16 호스텔에서 본 별난 스텝들 2+3 | 대책없는 사장, 쓸데없이 순수한 스텝
CHAP3_14 호스텔에서 본 별난 스텝들 1 | 한국 여자만 보면 눈이 뒤집히는 터키인 스텝
CHAP3_13 호스텔에서 본 별난 손님들 6 | 나를 화나게 만드는 진상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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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3_02+03 자괴감 + 이스탄불 대학 | 터키 대학교의 학식은 어떨까?!
CHAP3_01 터키 입성

CHAP2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코소보,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CHAP2_51(완) 마케도니아 -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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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2_02 크로아티아 - 낭만 | 바쁘게만 살아왔던 한 대학생의 생활 뒤돌아보기
CHAP2_01 크로아티아 - 안녕, 쉥겐 | 90일 제한시간으로부터의 탈출 | 도착하자마자 노숙하기

CHAP1 런던, 노르웨이, 스웨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체코, 독일, 오스트리아

CHAP1_47+48 오스트리아 - 잘츠부르크 길바닥에서 궁상떨기 | 민박집 사장님 인생은 파란만장 | 유럽사람들이 중국인을 싫어하는 이유
CHAP1_46 오스트리아 - 음악축제 보고 싶은데 양복이 없어요 | 잘츠부르크 음악축제를 가보기 위해 양복찾아 삼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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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42 독일 - 로만틱 가도에 서다! | 전독일 청소년 합창대회 | 뷔르츠부르크에서부터 다시 노숙의 길로
CHAP1_41 체코 - 프라하에서의 평범한 나날 2 | 뭉치면 시끄러운 한국 사람들 | 해부에 능한 전주자매들 | 희극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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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18 에스토니아 - 에스토니아 여자는 동양 남자를 싫어해! + 19 이젠 되는 일이 없다
CHAP1_17 에스토니아 - 오를레앙과 함꼐하는 탈린 나들이
CHAP1_16 잠시 동안의 탈린 나들이, 그리고 안녕
CHAP1_15 웁살라, 너와 같은 하늘 아래
CHAP1_14 아직은 ... 말할 수 없다
CHAP1_13 그녀를 만나기 12시간 전
CHAP1_12 욕창 터지고, 기차에 실려 가고
CHAP1_11 배낭을 털리다
CHAP1_10 사람의 따뜻함을 느끼다 + 노르웨이의 자연에 호되게 데이다
CHAP1_8 한국영화 많이 컸네? + 9 첫 주행, 첫 노숙, 첫 봉변
CHAP1_7 이런 곳에도 한국사람?
CHAP1_5 첫 주행 + 1_6 북한도 자전거로 달린다고?
CHAP1_3 + 1_4 Bryan Almighty + 자전거의 운명은?
CHAP1_1 + 1_2 인천 출발 + 히드로 도착

CHAP0 준비

CHAP0_번외 가져갔던 장비 일람
CHAP0_6 출국 그리고...
CHAP0_4 자전거 맞추기 + 5 쉥겐조약
CHAP0_3 항공권과 장비 마련하기
CHAP0_2 어디를 어떻게 가볼까?
CHAP0_1 다짐




혹여나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시는 스티미언분들.. 도움이 되셨을련지요?

도움이 되었다면 UpVote + 리스팀 부탁드리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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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문을 선물해주신 @mimitravel 님 감사합니다!!


여행지 정보
● Savigliano, 쿠네오 이탈리아
● Venezia, 베네치아 이탈리아



[남들과 같이 떠나는 배낭여행] 미친여행 CHAP4_15 이탈리아 - 희한한 블로거 | 미션과 함께 세계일주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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