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의 문신, 이승휴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대쪽 관료였다. 결국 충렬왕의 실정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파직, 은둔 신세가 되었다. 이승휴는 첩첩산중의 절집에 머물며 붓을 들었다. 당시의 정치 사회 윤리를 바로 잡겠다는 일념으로 글쓰기에 몰두했다. 한민족의 대서사시 '제왕운기'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그가 은둔하며 '제왕운기'를 완성한 곳이 바로 삼척 두타산 아래 '천은사(天恩寺)'다.
천은사 입구 해탈교를 건너자, 나뭇가지 사이로 절집 지붕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즈넉한 산사다. 뒷뜰로 산길이 나있다. 이정표는 쉰움산과 두타산을 가리킨다. 대쪽 이승휴가 삭탈관직 후 뒷짐 지고 오르내렸을 그 길을 따라 산에 들었다. 쉼없는 오름길이 까칠하다. 날씨는 더워도 숲이 짙고 깊어 선선하다.
호젓한 산길을 걸으면 마음이 맑아지고 쉬이 무념에 이른다. 산을 찾는 여러 이유 중 하나다. 막힌 氣가 트이는 기분이다. 돌탑군을 지나 조금 더 올라서면 너른 반석지대가 나타난다. 두타산 길목 능선에 자리한 '쉰움산(670m)'이다. 반석은 군데군데 움푹 패여 물이 고여 있다. 자연이 빚은 진풍경이다.
쉰움산의 '쉰움'은, '50개의 움'이라는 뜻이다. 정상부의 반석에 크고 작은 움이 50개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신통방통하게도 움에 고인 물에서 올챙이와 개구리를 발견했다. 정상표시석엔 '五十井'이라 음각되어 있다. 사방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다. 동쪽 산아래 바다와 맞닿은 곳에 삼척항이 가물가물 눈에 들어왔다. 근간에 '해상 노크 귀순'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았던 곳이다. 북동쪽으로 무릉협곡도 눈에 들어온다.
아직 갈길이 멀다. 두타산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갈림길에 닿았다. 이정표 밑에 임자없는 배낭(?)이 수두룩하다. 두타산은 11시 방향, 무릉계곡은 4시 방향이다. 무릉협곡 거쳐 삼화사로 내려서려면 다시 이곳 갈림길을 지나쳐야 한다. 배낭을 내려놓고 정상으로 향하는 이유다.
가파른 구간이 잦은 만큼 호흡도 점점 거칠어졌다. 다리가 천근만근 느낌이더니 왼쪽 대퇴부가 뻐근해 왔다. 그 님(쥐)이 오신게다. 살살 달래가며 된비알에 올라붙었지만 그럴수록 강도가 더해졌다. 정상을 400여미터 앞둔 지점에서 결국 주저앉았다. 한 걸음도 뗄 수가 없었다. 지나던 산객이 호랑이 연고를 건네주며 쥐가 난 부위에 잔뜩 발라 계속 문지르라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좀 나아지면 곧장 하산하란다. 고맙고 감사한데 정답까지 던져준다.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낼 때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갈림길로 내려와 두고간 배낭을 둘러멨다. 두타산성 방향으로 내려섰다. 대퇴부 근육이 온전히 회복된 게 아니어서 걸음걸음 신경이 곤두선다. 깔좋은 적송에서 신선한 기운이 발한다.
산성12폭포와 거북바위가 건너다 보이는 전망바위에 섰다. 수량이 충분치 못해 12폭의 위용은 느낄 수 없다. 다만 무릉 협곡의 존재감은 묵직하게 다가왔다. 마치 천연요새 같다. 지금은 허물어져 그 흔적만 간신히 남아있는 성벽이지만 그 옛날, 협곡을 둘러 길게 이어졌을 두타산성을 상상해 본다.
험준한 산세를 이용해 처음 축성한 것은 서기 102년 신라 파사왕 때라고 한다. 이후 조선 태종 4년(1414년)에 삼척부사 김맹손이 높이 1.5m, 둘레 2.5㎞의 산성을 다시 쌓았으며 임진왜란 때는 젊은 의병들이 이곳에 모여 왜적과 맞서 싸워 대승한 전승지이기도 하다.
고도를 낮출수록 계류소리가 우렁차다. 두타산성 갈림길로 내려섰다. 무릉계곡이다. 용추폭포, 4단폭포 그리고 학소대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란 표현이 무색치 않다.
오대산 월정사의 말사인 삼화사를 지나자, 무릉반석이 눈에 들어왔다. 너른 반석 위에는 옛 묵객들이 음각해 놓은 글씨가 많이 눈에 띈다. 이 중 백미는 초서체로 음각된 열두글자(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다. 풀이하자면 '무릉계 자연 속에서 노닐며 탐욕을 버리면 수행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이곳 비경과 선인들의 풍류가 잘 녹아 있는 명문장으로 통한다.
너덜해진 삭신을 이끌고 대과없이 하산을 마무리했다.
두타산의 ‘頭陀’는 불교용어로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 수행을 닦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소생, 속세에서 쌓은 덕이 부족하고, 수행도 미치지 못했나 보다. 오늘 내게 두타산은 '頭陀'가 아니라 '頭打' 즉 '골 때리는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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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산 처음 듣는데
빛이 내리는 두타산의 모습이 너무 멋지네요
백두대간의 척추 쯤 되는 산이죠.
처음 들어보는 산인데 태백산맥의 주봉이군요.
정말 절경입니다~!
삼척항을 등진 산으로 청옥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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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서 "골때리는산"인가요???
네, 쫌 빡센 곳이긴 하죠.
산 정상에서 바다가 보이네요 장관일 것 같습니다. ㅎ
해상노크귀순, 삼척항 일대입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