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다 / Day 1

in #tripsteem6 years ago (edited)





사적인 파라다이스를 위한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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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Day Vipassana Meditation Course│Da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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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사나 명상 수련 일과표 / ⓒchaelinjane, 2019




첫 아침




 새벽 4시가 되자 어김없이 종소리가 울린다. 일어나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봉사자들이 돌아다니며 방문 바로 앞에서 종을 울려주니 음파의 진동에 놀란 잠이 달아난다. 4시 30분 전까지 메디테이션 홀에 가야 한다. 양치를 하려고 화장실에 가니 벌써 샤워를 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쓰는 화장실 건물에는 샤워실이 3개가 있다. 화장실 건물은 오르막길 위 두 번째와 세 번째 기숙사 사이에 하나가 더 있다. 샤워는 언제 해야 좋을까?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야 한다. 5분 내로 어떻게 샤워를 끝낼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컨디셔너는 제외하고 샴푸와 바디 샤워만 해보기로 한다.


 새벽 명상 2시간은 졸음과의 싸움 그 자체다. 가부좌로 앉은 다리는 역시나 고통을 선사하고 무조건 눈을 감고 있어야 하니 '앉은 채로 잘 준비 완료!'라고 몸에게 선언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앞사람의 고개는 고엔카 선생님의 찬팅이 시작되자 점점 밑으로 숙여진다. 마칠 때쯤엔 아예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잠이 든 남자도 있다. 2시간 동안 생각이 불쑥 찾아들고 그것을 지워내려 애쓰고 눈꺼풀 위로 보이는 형상을 쫓으며 또 다른 생각을 이어간다. 처음 느껴지는 것은 덩어리들. 군중을 떠올리거나 주위의 소리에 집중하면 눈 앞에 덩어리들이 꽉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굉장히 부담스럽고 현기증이 난다. 생각을 좇을 때면 나도 모르게 호흡을 멈추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코끝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시작했는데 막막해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검은 바탕 위로 초록색 형광 줄이 은근히 보이기에 그것을 계속해서 바라본다. 그리고 사람들의 뱃속에서 정말 다양한 소리가 들린다! 꼬로록, 꾸르륵, 푸쉬익, 가끔은 빈 속에 누군가 비브라폰을 연주하는지 믿을 수 없게도 '도레미파' 음계가 들리기도 한다. 내 배에서도 물론 경미하게 소리가 났지만 배가 고플 때 들리는 큰 소리는 다행히 나지 않는다. 생각보다 배가 고프지 않고 속이 편안하다.


 새벽 명상을 마치고 부리나케 달려가 샤워를 마치고 돌아온다. 새벽 명상이 끝나는 6시 30분부터 8시까지는 아침 휴식 시간이다. 생각보다 이때 샤워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조급한 마음이 덜하다. 절반은 아침을 먹고 보충 잠을 더 자는 쪽을 택하는 것 같다. 방에 들어가면 쓰러져 잠을 자겠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글을 쓸 정신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씻는 것만 생각하다 아침을 안 먹었구나. 서둘러 다이닝 홀로 간다.


 아침으로 보겔 토스트 한 조각과 끓인 오트밀, 그리고 대추·계피·건포도 같은 열매를 넣은 차를 마신다. 버터와 잼까지 곁들이니 완벽하다. 7시 반이 지나자 봉사자들이 다이닝 홀을 슬슬 정리하기 시작한다. 오늘 아침을 늦게 먹는 사람이 나 말고 두 사람 더 있다. 내일부터는 아침을 빨리 먹고 씻어야겠다.


 오전 8시-9시 단체 명상도 잠을 이겨내느라 힘겹다. 방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눕자마자 넋을 잃고 잠이 든다.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는 메디테이션 홀이든 개인실이든 자율 명상을 이어가면 된다.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려보니 9시 45분. 어휴, 45분이나 지나다니! 남은 시간이라도 잘 해보려고 몸을 일으킨다. 아주 맑은 정신으로 명상을 시작한다. 잠은 더 이상 오지 않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어떤 공간을 만들어갈 것인지를 계속 탐구한다. 내가 원하던 고민이었는지 시간이 파도치듯 흘러간다.


 오전 11시. 점심으로 토마토 파스타&리조또와 샐러드, 옥수수 반 개를 먹고 루이보스 차를 한 잔 마신다. 시간을 재어보니 먹는 데 25분이 걸린다. 이를 닦고 숲 산책을 하고 와서 시간을 확인하니 11시 45분. 점심 휴식은 2시간이라 아직도 충분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이제 겨우 첫 아침을 보냈지만 상당히 만족스럽다. 앞으로 어떤 명상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끊임 없는 호흡 관찰




 오후 명상은 시간이 빡빡하다. 오후 1시부터 2시 30분까지 명상한 뒤 화장실을 다녀와서 곧바로 3시 30분까지 그룹 명상이 이어진다. 3시 30분부터 5시까지 이어지는 명상은 몸이 너무 고단해 메디테이션 홀에는 가지 못하고 방에 있다가 눈을 붙인다. 일과표를 확인해보니 눈 씻고 찾아봐도 'Dinner break'라는 말이 없다. 5시-6시에 있는 차 휴식(Tea break)이 전부다!


 새로 온 수련생들은 카모마일 티와 바나나 하나, 사과/배/키위 중 원하는 과일 하나가 저녁으로 주어졌다. 코스를 경험한 적 있는 수련생들은 오로지 차 한 잔이 끝이다. 배가 고팠던 터라 바나나와 사과를 소중하게 먹는다. 내심 어제 먹었던 채소 수프를 기대했는데 그냥 내일 아침의 버터 바른 토스트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오후 6시부터 9시 30분까지는 홀에서 두 번의 명상과 새로운 명상 기술을 익힌다. 하루가 이렇게 길었나 싶다. 점점 안 좋은 기억들이 명상 중에 떠오르기 시작하고 최근에 있었던 충격적인 일도 그때의 슬픔 그대로 재생된다. 고엔카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Just observe(그냥 지켜보세요), " 현재 일어나는 일들과 감정을 지켜보아야만 한다.


 저녁에 듣는 강론은 각자의 모국어로 들을 수 있다고 안내를 받는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비파사나를 이해할 수 있게 하려는 세심한 배려인가 보다. 오늘 오후 명상이 혼란스러웠던 이유도 Day 1 강론에 설명이 되어 있다.

  • 비파사나는 호흡을 조절하는 명상이 아니다. 내가 뱉고 내쉬는 숨이 짧은지 긴지 얕은지 깊은지 자연스럽게 인지하고 그 호흡에 주의 집중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 시각화 금지! 명상하면서 무언가를 보려 하지 말 것. 온전히 호흡에만 집중한다.

  • 마음 속 생각이 과거나 미래로 이리저리 나뒹굴 때, 현재를 직시하는 도구가 바로 나의 들숨과 날숨에 있다. 이는 내면세계를 탐구할 수 있는 두 다리가 되어준다. 한 숨 한 숨마다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 생각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다보면 호흡을 관찰 중이라는 사실을 잊기 쉬운데 그럴 때마다 최대한 빨리 알아차리고 본인의 호흡으로 돌아와야 한다.

  • 쉴 때 5분 이상 누워 있으면 안 된다. 무조건 잠들게 되어 있으니!

  • 첫날 지쳐서 관두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몸과 마음이 처음 맞이하는 일상에 반항을 하는 것이다. 단단히 버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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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인 파라다이스를 위한 수련 기록

    Day 0




│by @chaelinjane


여행지 정보
● Dhamma Medini Vipassana Meditation Centre Burnside Road, Makarau, New Zealand



완전히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다 / Day 1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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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chaelinjane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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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보내세요 :)

나름대로 수련을 잘하시나 봅니다.

처음 배워보는 비파사나 명상에 대한 기록이에요. :-)

보클,해요^^

감사합니다 ^^

명상을 잘은 모르지만, 오롯이 명상에만 빠져들 며칠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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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명상이 가만히 앉아서 편하게 마음껏 상상하는 행위인 줄 알았는데, 고행에 가까운 수련이었답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시간이 있을 때 배워두었어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텅 빈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현대에는 쉽지 않네요. ㅠ

오호..이런것도 있군요.

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답니다. :)

이 여행기에서 내면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정과 사색의 표현이 충분히 기술되면 좋겠네요. 그리 된다면 그리고 저의 시간이 허락한다면, 새로운 Eat, Pray, Love 로 제가 각색 한번 하고 싶을 정도네요. 때문에, 앞으로의 글이 정말 기대됩니다!

어디까지나 시간이 허락한다면! ;) 오늘도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와아 새로운 Eat, Pray, Love이라니 ! ㅎㅎㅎ 제 글이 자료가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네요 :))) 모자란 기록이지만 생생히 묘사해두려고 그 당시에 굉장히 노력했어요 :))) 앞으로의 글도 잘 부탁드립니다 !!!

잘 읽었어요. 앉으실 때 허벅지에 있는 혈해혈을 자극하고 앉으시면 좋아요. 턱을 안쪽으로 당겨서 앉고, 척추와 축추 사이에 공기가 있는 듯 앉으시면 됩니다. 허리 부분이 약간 안으로 말리고 가슴은 자연스럽게 펴지고. 어깨가 아래로 축 ~ 이완되어 있구요. 좌골을 앉으시는 연습도 도움이 됩니다.

덧) 권태의 시간을 충만의 시간으로 바꾸는 예술. 그게 명상 같아요.

덧2) 호흡을 따라 하시기 보다, 단지 혀를 입천정에 대고 있으면(혀를 말고 있으면) 됩니다.^^

인석님 말씀해주신 자세가 제가 고난 끝에 찾아낸 자세인 것 같아요-! 혈해혈 자극이, 발바닥을 허벅지 안쪽에 완전히 붙인 상태로 앉는 자세가 맞다면요 ㅎㅎㅎ 와아 디테일한 보충 수업 감사합니다. :)))) 발리에서 명상 수련 때 혀를 말고 하는 것도 연습해봐야겠어요! 역시 마음챙김의 대가십니다 !!! 헤헤

“권태의 시간을 충만의 시간으로 바꾸는 예술” 이 말이 너무나 멋집니다...! 백퍼센트 공감합니다. :))))

^^ 내 발바닥을 허벅지에 올려서 대지의 기운을 차단시켜요. 그리고 [일상에서도 혀를 말고] 지내시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허리는 중력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연스럽게 이완되고 위로 쭉 펴지는 느낌. 그 느낌을 잡으셔야 합니다. 귀를 어깨에 맞추시고 귀가 공중으로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 B54E00EE-BFD8-4B76-897B-093E7D31D39F.jpeg

그림 해설까지...! 정말 감사합니다, 인석님! :-)
제가 아주 오랫동안 구부정한 자세로 지냈는데 그림에 표시된 화살표를 보니 어느 방향으로 몸을 당기고 인식해야하는지 분명히 알 것 같아요. ㅎㅎㅎㅎ 너무나 감사합니다!!!

명상을 하루에 세 번이나 하나요? 그야말로 수행이군요.

횟수로는 여덟 번이에요. :) 단체 명상이 네 번, 자율 명상이 네 번. 시간으로 따지면 12시간 남짓 되더라구요..! 구도자의 삶을 10일간이나마 흉내내고 돌아왔습니다 :))

위파사나 수련을 나중에 태국에서도 체험을 해 보시지요. 자연속의 사찰에서 일정에 따라 진행 하는 코스가 많이 있습니다.

오오, 히마판님 태국의 자연 속에서 명상 하는 걸 상상해보니 그것도 무척 좋을 것 같아요 -! :-)))

처음에는 기후를 적응 하는게 관건일 듯 합니다.
고도의 수련자들은 기후와 상관이 없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