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이 실크로드의 출발점이라고 한다면, 둔황은 중국 경내의 마지막 기착지로 실크로드의 중국측 출입구에 해당하는 곳이다. 둔황에서 양관과 옥문관을 통과하면 천산북로와 천산남로로 갈라져 아시아 내륙을 거쳐 유럽에 이르는 대장정이 시작된다.
유홍준 선생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에서 ‘중국 답사 일번지’로 꼽은 곳이 바로 둔황이다. 나에게는 윤후명의 소설 <돈황의 사랑>을 통해 처음 접했던 도시. 시인으로 먼저 활동한 윤후명 작가의 소설은 쉽게 읽히는 문체가 아니어서 줄거리를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지만, 이 작품은 나의 마음 한구석에 ‘돈황’이라는 신비로운 이름을 각인시켰다.
둔황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막고굴이 있어 역사유적탐방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도시이다. 막고굴은 4세기 중반부터 13세기에 이르기까지 약 1,000여 년간 조성된 것으로 당나라 측천무후 시기에 건립된 석굴이 이미 천 개를 넘어 천불동이라 불렸다고 한다. 둔황시 동남쪽 25km 지점 밍사산 절벽 위 1,680m에 걸쳐 조성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석굴 492개에 2,400여 개의 소상(찰흙으로 빚은 형상)과 연면적 5만㎡의 벽화가 소장되어 있다.
특히 장경동이라 불리는 막고굴 제17호굴에서 약 5만여 권의 고문서들이 발견되어 세계를 놀라게 했고, 이는 ‘돈황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혜초 스님의 인도 여행기 ‘왕오천축국전’ 필사본이 발견된 것도 이곳이다. 그런데 돈황에서 발견된 ‘왕오천축국전’은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왜 중국도 한국도 아닌 프랑스에 있는 것일까.
갑골문의 발견과 더불어 중국 학술사상 커다란 사건으로 기록되는 1900년 둔황 유물 발견으로부터 7년 후 영국 탐험가 스타인, 이듬해 프랑스 학자 펠리오, 이어 일본인 오타니를 비롯해 러시아인과 미국인에 의해 차례로 둔황 유물이 약탈된 과정이 여러 책에 소개되어 있다. 오타니가 약탈한 둔황 유물 중 일부가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도 보관되어 있어,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문제이다.
좋은 여행기 작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