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달가워하지 않거나 스스로와는 맞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의 유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이야기에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되묻는 사람이다. 그 '어쩌라고'는 본디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 쪽이기도 하거니와, 모든 이야기에서 교훈이나 메시지를 찾으려 할 필요가 없는 것이기도 해서다. 어떤 경우 '그랬다'는 사실 자체가 곧 이야기가 된다. (하나 더, 좋은 이야기일수록 대답보다는 질문을 남긴다. 질문에는 질문이 아니라 대답이 따라오는 게 마땅하겠다.)
누군가는 '나도 그랬어'라고 응답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말도 안 된다'라고 치부하겠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은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한다. 어차피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같은 건 이 세상에 없으므로, 스토리텔러의 역할이란 그런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나 아니면 상상한 이야기를 하기.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날씨의 아이>(2019)를 본 '할리우드 리포터'의 데보라 영은 본 작품에 대해 "Magical Realism"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표현은 가능한 표현인가. 8월에 폭설이 내리고 대도시에 홍수가 발생하는 세계라면 그런 표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날씨의 아이>가 전제하는 세계는 바로 그런 곳이므로, 그 세계의 자연에 살고 있는 누군가는 초자연의 힘을 반드시 믿어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Magical Realism'이 가능하다면, 'Realistic Magic'도 물론 가능하다.)
신카이 마코토는 전작에서 힘 있게 다룬 공동체의 이야기 대신 철저히 개인의 감정으로 <날씨의 아이>의 범위를 한정하려는 듯 보인다. 연일 계속되는 폭우와 그로 인한 여파를 묘사하는 방식에서 그렇게 느껴진다. 또한 '맑음 소녀'로 불리는 '히나'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적 범위의 사적인 계기로 '맑은 날씨'를 의뢰한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호다카'는 처음에는 '무서운 도쿄'에서 단지 맑은 날씨를 볼 수 있는 방향으로 행동해왔지만 어느덧 '맑은 날씨'와 '히나'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럴 때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날씨의 아이>는 흔한 10대의 판타지 로맨스로 보일 함의가 짙은 애니메이션이지만, 굳이 대단한 이야기로 보일 생각도 없다.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바라고 또 바라는 소년의 이야기. <날씨의 아이>는 그것으로 족하려 하고, 또한 그 간절함이라는 것을 되풀이해서 강조한다.
SF 문학사의 기념비와도 같은 거장으로 손꼽히는 어슐러 르 귄(1929~2018)은 "통찰력과 연민과 희망을 얻는 데 상상력만큼 적합한 도구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판타지는 존재의 혼란과 복잡성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에 숨은 질서와 명징성을 암시하는 문학이다. 판타지에서는 타협할 필요가 없다"라고도 말했다. 간절하게 바라는 것으로 비 오는 날씨를 맑게 만들 수 있는 소녀. <날씨의 아이>는 거기서 시작했을 것이고 거기에는 어떤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이 이야기는 그냥 그런 이야기라서다. <날씨의 아이>는 가이아 이론을 잠시 빌리는 듯하다가도 그것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지는 않는다.
작품 초반에는 J.D.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이 두 차례 간접 등장한다. <날씨의 아이>의 모리시마 호다카를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에 빗대는 건 알맞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뉴욕을 방황하는 홀든의 이야기와 빗속의 도쿄를 떠도는 호다카의 이야기가 그렇게까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날씨의 아이>는 기후 위기라는 화두를 굳이 강조하려 애쓰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대해 논할 때 중요한 것은 오직 '그가 하려고 한 이야기'다. '그가 하려 하지 않은 이야기'에 대해 말하는 건 불필요하다. 마찬가지로, 허구로 상상해 낸 이야기에 대해 말할 때 중요한 건 그 이야기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일어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왜 그런 모습일까' 같은 것이다. 픽션을 말할 때의 전제란 그런 것이다.
'Weathering With You'라는 영제가 뜻하는 것처럼 어떤 이의 마음을 그저 날씨에 빗대어본 것에 가깝겠다. 작중에도 "날씨는 하늘의 기분"이라는 언급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에겐 세상 모든 것이기도 하다. 도대체 이걸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 싶은 비관 속에서도 신카이 마코토는 그저 '괜찮음'이 되고 싶은 간절함에 대해 상상한다. 불확실함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이 이야기는 그러니까 필요한 것이다.
*브런치 계정에 먼저 게재한 글입니다. (원문: https://brunch.co.kr/@cosmos-j/890)
영화 URL: https://www.themoviedb.org/movie/568160?language=en-US
별점: 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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