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호선 지하철은 붐비지 않아서 늘 앉을 자리가 생긴다. 군복을 입으면 자리에 앉는 게 죄송스러운 기분이 들어 웬만하면 서서 탔는데 9호선을 타면서부터는 복귀할 때 자리가 꽤 남아서 앉아서 가곤 한다. (9호선에 직장을 잡은 작은 누나에게 감사하며.)
환승할 동작역까지는 열두 정거장. 복귀 시간은 지하철을 타고 어디로 나서기도,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도 아니라 애매해서 사람이 없다. 덕분에 자리에 앉았다. 두 정거장쯤 지났을까, 내 앞자리에 나이로 보아 할머니와 손녀로 보이는 두 사람이 앉았다. 자리가 많이 남아 할머니는 손녀에게 누워도 괜찮겠다고 말했고 내 조카보다 나이가 있어 보이는 손녀는 신발을 내동댕이 쳐가며 벗고는 할머니 넓적다리를 베고 누웠다.
이내 심심했는지, 할머니가 들고 있던 종이 가방 안의 장난감을 손녀가 꺼내든다. 욕조에서 쓰면 재밌을 것 같은 거북이 장난감이다. 눈 둘 곳도 없었고 아이가 어찌나 장난감을 가지고 잘 노는지 괜히 자꾸 보게 됐다. 딱히 특별한 부분은 없었다. 어미 거북의 엉덩이(?)에 새끼 거북이 붙어있고 둘은 서로 줄로 연결되어있다. 새끼 거북을 잡아당기고 놓으면 줄이 당겨지면서 생기는 동력으로 어미 거북의 팔이 세차게 움직인다. 새끼는 줄이 당겨지면서 다시 어미에게 달라붙는다. 어미 거북은 새끼가 따라오는지 마는지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고 마냥 팔을 열심히 흔든다. 보고 있으니 부모가 험한 길을 헤치고 그 헤친 길로 자식이 따라가는 모습이 연상됐다. 그렇지만 한 번도 자식을 뒤돌아 보지 않고 그저 열심히 팔을 흔드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당연히 머리를 뒤로 움직일 수 없는 장난감일 뿐인데,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며 열심히 나아가지만 정작 제대로 잘 따라오고 있는지 보지 못하는 부모의 모습이 장난감에서 보여 그랬나 보다. 당연히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서로 줄로 연결되어 있으니 그래, 별일이 없다면 새끼가 잘 따라오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다시 아이가 새끼 거북을 당겼다 놓았다 하는 걸 보았다. 할머니는 아이 부모님에게 아이와 지하철을 탔고 곧 도착할 거란 통화를 한다. 부모님이 아닌 할머니와 함께 어딘가를 다녀오는 아이가 그걸 가지고 노는 게 어쩐지 측은하게 느껴진다. 언젠가 줄이 끊어지면 새끼 거북은 동떨어지고 어미 거북은 줄이 끊어진지도 모르고 끊어진 줄이 마지막으로 다시 돌아가며 홀로 나아갈 생각을 하니 문득 마음이 아팠다.
ㅎㅎ 필력이 좋으시네요..!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스티밋에서 자주 봐요 :) 누구신지 알려주시면 좋은 분들과 더 많이 소통할 수 있을거에요! ㅎㅎ
감사합니다 :)
어미 거북이와 새끼 거북이의 모습이 gardencandlee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우리들의 부모님과 자녀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식이 잘 되길 바라며 열심히 나아가지만, 앞만 보느라 자녀도 부모님 당신의 모습도 제대로 못 살피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후에 끊어진 줄 앞에서 홀로 서 있는 거북이와 같은 많은 사람들 또한 마음을 찡하게 하네요.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