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두 글을 쓴다. 태어나서 가장 먼저 깨닫게 되는 것은 말이지만 이내 교육을 통해 배우게 되는 첫 번째는 글이다. 말은 깨닫는 것에 가깝다면 글은 공부하고 배우는 쪽에 가깝다.
누군가는 작은 냅킨 조각에 글을 쓰고 누군가는 200자 원고지에 글을 쓴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은 큰 하얀 도화지에 글씨를 쓰고 초등학교에 막 들어간 아이들은 열칸노트에 글을 쓴다. 혹자는 어른이 되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 또 다른 누군가는 어른이 되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기도 한다. 한편 사람들은 글을 쓰는 목적 역시 제각각인데 그 목적이라는 것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면 그건 아마 남들이 볼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인가 아니면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고 혼자만을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냐의 차이정도가 있을 것이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강원국님께서 쓰신, '글쓰는 사람은 태생이 '관종'이다.'라는 글의 일독을 권합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47&aid=0002183549)
아주 오래전에는 내가 쓴 글을 남들이 볼 수 있는 방법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지금처럼 온라인 매체가 존재하기 전에는 그야말로 인쇄하고 찍어내고 배포하는 활자 매체들이 사실상 유일한 매체였다. 그런 매체들은 일간지에 해당하는 신문 그리고 이외에 주간지나 월간지에 해당했고 이와 같은 매체의 수는 매우 제한적이다 보니 그 곳에 글을 쓸 수 있는 대상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인쇄 활동에 동반되는 비용이 낮지 않았으니 그런 현상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덕분에 매체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 가치를 높게 평가 받았다. 컬럼리스트나 주필과 같은 이름을 가졌던 그들은 사회와 시대를 비추는 큰 빛과 같았다. 심지어는 영화 '내부자들'에서는 이와 같은 글쟁이의 권력을 백윤식이라는 훌륭한 배우를 투영하여 보여주었으니 매체와 글의 힘이 막대하였음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매체를 한 번 생각해 보자. 과연 매체란 무엇일까?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가 정의한 IT용어사전에 따르면 매체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일이나 작용을 전달하는 데 매개가 되는 것. 자기 카드, 디스크, 종이 테이프 등은 자료나 정보를 전송하기 위해 고안된 매체의 예이다. 영어의 media라는 단어는 medium의 복수형으로서 라틴어로 ‘중간의’를 나타내는 medius에서 유래되었으며, 매체 또는 수단으로서 어떤 의사나 사실을 전달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신문이나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 등의 매스커뮤니케이션을 지칭하는 미디어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매체의 정의는 간단하다. 그것은 글과 대중 혹은 독자를 연결하는 중간자이다. 그곳에서는 애초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트래픽이 생성되며 서로간의 정보가 오고가거나 보관이 된다. 영어로 media의 앞을 장식하고 있는 med가 접두어로서 중간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미루어보면 그 특징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매체는 그렇게 존재해왔다. 적은 수의 지면과 그곳에 글을 쓸 수 있는 적은 수의 필자 그리고 많은 수의 독자,
그리고 이미 그곳에 글을 쓴다는 것은 권위와 능력을 대변하였기 때문에 구태어 글의 권력자는 그곳에서 직접적인 수익을 원할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심지어 직접적인 수익이 있기도 했다. 원고료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마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인류가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었던 수단은 원고료 하나 뿐이었을 것이다. 즉 목적에 따라 작성된 글에 대한 그 글을 필요로 하는 대상 1인 혹은 1개의 조직이 지급하는 직접비용말이다.
하지만 시대가 흘러 이와 같은 글쓰기 문화는 점점 바뀌어 가기 시작하였다. 그 시작은 단연 온라인으로부터 태동되기 시작한 아마추어 작가들의 범람이다. 그들은 매체에 올라타지 못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표현하거나 자신만의 기술이나 역량을 써내려갔고 그에 대해서 기존의 활자매체에는 미치지 못할지언정 트래픽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그 시작은 PC통신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고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유니텔의 게시판 글들은 이후 WWW의 페이지들로 옮겨지고 또 새로 생겨났다. 웹의 도메인들은 글을 쓰고 싶어했던 창작가들에게는 앞마당의 놀이터와 같은 공간이었다.
이렇게 과거 적은 수의 필자로 제한되었던 글쓰기 문화는 모든이의 글쓰기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모든이의 글쓰기는 모든이의 보상과 연결되지는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글을 써내려가는 매체들은 모두 자생력이 없이 단순히 글을 쓰도록 허용만 하는 수준에서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최근까지 열심히 글을 써왔던 카카오의 브런치 (https://brunch.co.kr/)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곳에는 수 많은 작가들과 읽을 거리가 있고 심지어 좋은 글 혹은 선택받은 글은 다음/카카오의 수 많은 매체로 글이 퍼져나가는 호사를 누릴 수 있지만 그 호사의 범위는 즐거운 기분에서 그친다. 브런치는 직접 보상이 없기 때문이다. 브런치와 달리 수 많은 블로거들은 블로그를 꾸미기 위해 수 많은 글을 쓰고 거기에 광고를 달거나 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수익은 '글'의 본질과 연결된 수익은 아니었다. 그건 그냥 트래픽에 따라 수반되는 광고의 수익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글쓰기 문화의 변화를 한 번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온라인과 블로그/창조의 범람
리트윗/재소비
브런치/아마추어작가들의 등장(인플루언서 단계)
스팀잇/직접보상
당연히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은 4번 스팀잇과 직접 보상에 대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글이라는 창작물에게 직접 보상이 합당한지에 대한 부분 먼저 이야기해보자. 스팀잇은 스팀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글을 쓰고 보팅을 받으면 얻게되는 보상 역시 스팀이다. 쉽게 생각하자면 스팀은 스팀잇을 통해서 스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스팀의 순환을 활성화 시키며 스팀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비즈니스 모델의 구축이 가능하며 이 가운데 일부분을 스팀 Writing에 프로모션 비용으로 지불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구조는 과거 많은 활자매체와 온라인의 소셜미디어 혹은 매체들이 자신의 매체를 바이럴 하기 위해 자신들을 또 다른 매체에 광고를 했던것과는 사뭇 다른 방식이다. 즉 자생적 구조로 매체와 작가가 직접적으로 가치 교환을 하는 것이다. 그 동안 인류가 수천년을 살아오면서 살아오고 떠나갔던 많은 이들이 수도 없이 많은 글을 쓰고도 보상을 얻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동안의 매체는 스스로 가치를 생성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수익은 의존적이었고 덕분에 그들중 많은 수는 퍼블리싱되어야 하는 글의 톤앤매너도 정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최근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이슈에 대해서 개탄을 하는 네티즌의 의견 가운데 가장 동감이 되었던 부분은 우리가 이러려고 주커버그 돈 벌어주려고 페이스북에 그 많은 트래픽을 몰아주고 있었나하는 말들이다. 심지어 21세기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던 페이스북마저 창조와 가치교환은 동등하지 않았으며 플랫폼은 플랫폼에 기여를 하는 수 많은 이들이 아닌 플랫폼의 오너를 위해 수익을 창출해 왔다.
결과적으로 스팀잇은 개개인의 창조활동과 가치를 직접 교환하는 최초의 매체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스팀의 창작물들 지속적으로 직접적 보상을 받으려면 당연히 스팀시스템의 지속가능한 운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그 Risk는 스팀의 가치가 낮아지거나 스팀의 보상체계가 글쓰는 이에게 흡족하지 못하거나 대체가능한 보상이 있는 경우 일 것이다. 이런 창조화 교환의 구조는 기본적인 형태는 사람이 신발을 만들고 돈을 받고 팔듯이 당연한 교환구조이지만 전혀 유명하지 않는 나라는 한 사람이 쓴 글이 직접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좀 더 개념적인 정착이 필요해 보인다. 아직 사회적 분위기는 안드로이드에 무료앱을 만들과 광고를 붙여 놓는 돈을 버는 것보다 스팀잇에 글을 올리고 돈을 버는 것에 더욱 생소해 하기 때문이다.
뭐 어쨋든 글을 쓰는 이유는 이제 하나가 더 늘어나,
- 기록을 남기기 위함이다.
- 기분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 관종이기 때문이다.
- 경제적가치를 생성하기 위함이다.
와 같을 터인데
이는 연이어 창작자와 이를 관찰하는 주변인(글의 경우에는 독자 혹은 구독자이다.)의 관계 사이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우선 관찰자 혹은 주변인 역시 창작자가 되는 구조가 중요하며, 구독자 혹은 독자가 평가자가 되는 관점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변화는 구독자가 최초 창작자의 창작물을 활용하거나 평가하는 관점에 대한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것은 로그이며 동시에 분산원장의 개념인 것이다.
이제 다시 한 번 창조를 돌아보자. 우리는 이 글을 통해서 계속 '글쓰기'라는 창조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창조는 그 카테고리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창조의 카테고리를 조금 압축하자면 글쓰기 이외에 그림그리기, 음악하기 정도로 축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창조를 통해 보상을 받아왔으나 그 대상이 소수였으며 1:1로 재화를 넘겨 받는 방식이었던 인간의 창조가 최소한 두 가지는 더 있는 것이다. 그 창조들은 그 동안 소수의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거나 혹은 창조의 시점과 창조자를 정확히 지명하기 어려운 시스템상의 한계로 인해 표절이나 도용의 논란이 많았다. 하물며 건전한 창조와 재활용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이들 역시 최초의 창조자를 찾기 어려워 직접 재화를 지급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이부분에 대해서 국내 힙합 뮤지션인 일리네어 레코즈의 더콰이엇은 한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좋은 음악을 받아 사용하기도 하는데 저작권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여 원 저작자를 최대한 찾아서 라이센스를 구매하거나 혹은 기본적인 음원에 대한 사용료를 지급하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몇몇 경우에는 영원히 그 원작자를 찾지 못하여 그에게 보상을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기존의 창작과 공유의 시스템의 한계를 한 번에 드러내는 인터뷰 내용인 것이다.
나는 비록 기술적으로 무지함이 있지만 음악과 미술의 영역에서 이처럼 글쓰와 동일하게 창작의 결과물들이 더욱 보편적으로 드러나도록 하며 이어서 직접 보상과 평가가 동반된다면 창작의 혁신이 더욱 폭넓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경우에 따라서 음악과 미술은 글쓰기와는 다르게 더 많은 토론이나 활용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미 존재하는 사운드클라우드와 같은 시스템이 이런 욕구를 반증하고 있을 것이다. 블록체인 기반의 시스템에 사람들이 창작물을 올리고 이에 대한 평가와 논의가 진행되며 vote와 함께 그 저작에 대한 사용권한을 코인의 형태로 지급할 수 있다면 이보다 훌륭한 시스템이 어디 있을까? 지금까지 예를 들어 사운드 클라우드(사실 나는 사운드 클라우드를 써 본적은 없다. 내가 알기로 그곳은 rapper 및 힙합 뮤지션들이 자신이 찍은 비트를 올리는 곳으로 알고 있다.)가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그곳에서 즉시 최초 창작자에 대한 보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창작자들이 블록체인 포털에 자신의 창작물을 올리게 되면 표절의 이슈 상에서 개인의 최초 창작 시점을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편으로는 인류는 아직 막다른 벽까지는 아니지만 창작의 활동이 점점 그 신선함을 잃어가고 있다고 본다. 결국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표현처럼 음악도 제한된 음표와 박자 그리고 강약의 조합이고 그림 역시 색과 표현력 구도 등의 조합인데 다양한 창작 활동이 공유되고 이에 대한 샘플링이나 변주가 허용될 수 있는 장이 생긴다면 또 그만큼 의미 있는 것이 어디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요즘들어 스팀잇에 대한 시스템상의 한계에 대한 글이 많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고래에 대한 이슈와 어뷰징에 대한 이슈 등이 그런 쟁점의 한 가운데에 있는데 사실 나는 이런 부정적인 이슈는 어느 시스템에나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과는 별개로 시스템과 플랫폼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아주 다른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관점에서 글이 아니라 '창조'자체가 공유되고 창조가 평가되고 보상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형성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Good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