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이야기 - ②

in #writing6 years ago (edited)

외국에서 동물이 입국(?)할 때 수속 과정에 약을 바르나 보다.

진지를 들여온 에이전시 직원이 말했다.
“약품이 발려있을 거예요. 가능한 바로 씻어주세요.”

약품도 약품이지만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케널에서 꺼내주지 않는지 꼬리 주변에 오물이 가득 묻어있다. 이런. 첫 만남부터 목욕이라니. 고양이는 목욕을 싫어한다던데. 어디서 어떻게 씻겨야 하나? 첫 인상부터 망했어.

사실은 이런 생각을 할 새도 없이 그냥 씻겨야 하는 상황이라 욕실에 넣고는 씻기기 시작했다. 진지 입장에서는 웬 날벼락이었을까? 나도 무방비 상태에서 진지가 할퀴는 손톱에 양 팔을 그냥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물세기는 어느 정도로 해야 하지? 온도는? 애기들 목욕온도하고 비슷하면 되려나? 물이 너무 세면 놀라겠지? 샤워기 수압을 낮춰서 조심조심 쫓아다니며 씻긴다. 물이 닿아 털 볼륨감이 없어지고 보니 참 작다. 진지. 손에 잡히는 대로 털을 잡아서 물을 짜주고, 수건으로 꾹꾹 눌러서 물기를 없애본다. 털이 길어서 잘 되지 않네. 드라이어를 키니 화들짝 놀란다. 발을 들어 욕실 문을 연신 긁는다. 애옹 애옹.

며칠 지나면서 보니 이 녀석 사람한테 꾹꾹이를 안한다. 방석이나 도톰히 올라있는 이불에만 꾹꾹이를 한다. 혹시 엄마랑 너무 일찍 떨어져서 그러려나? 마음 한편이 짠하다.

진지는 사람마다 대하는 게 다른 데, 뭔가 나름 사람별로 정해둔 역할이 있는 거 같다.

나: 밥 주는 사람. 새벽에 일어나면 안방으로 와서 애옹거린다. 가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울 때가 있다.
큰 애: 놀아주는 사람. 큰 애가 장난감을 꺼내서 휘두르면 이리 저리 뛰면서 잡으려고 난리. 똑같은 장난감인데 내가 꺼내면 관심 1도 없다.
작은 애: 싫은 남자 사람. 작은 애가 안으면 불편한 기색이 역력.
남편: 배 긁어 주는 사람. 남편이 누워있으면 옆에 와서 발랑 뒤집는다.
내 동생: 깨무는 사람. 잠시 안겨있다가도 어깨를 깨문다.

진지이야기 2-1.jpg

털이 긴 흰 고양이를 키우면 힘든 점

  1. 털이 어디에나 있다. 전국 어디로든 따라다님(?)
  2. 화장실 처리를 알아서 잘 하지만 가끔 묻을 때가 있고 사람이 닦아줘야 한다. 뒤처리가 잘 안되면 엉덩이를 바닥에 끌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ㅠㅠ
  3. 검은 색 옷을 포기하거나 털이 묻어도 개의치 않고 입고 다녀야 한다. 옆 사람한테 옮기기 십상이다. 나는야 털 전도사.
  4. 긴 털이 몸 어디든 뭉칠 수 있다. 가급적 빨리 해결해 주지 않으면 점점 뭉치는 부위가 커지고, 나중에는 처치 곤란.
  5. 더운 여름이 되기 전 6월쯤 털을 밀어주는 게 좋은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리고 개처럼 가죽이 아니라 연한 피부라서 잘 못 하면 상처가 크게 난다.
  6. 그래서 고양이 미용은 전신마취를 하는 곳이 많다. 진지는 1년에 한번 정도 미용을 하는데
    가능한 집에서 해결해보려고 한다. 배 쪽이 뭉칠 때가 제일 문제라 뭉칠 때마다 가위로 조금씩 잘라줬다. 등쪽은 배 보다 이발하기 안전해서 가위로 잘라주고 이발기로 조금 밀어줬더니....

지금은 슈나우저 고양이가 되어버렸다.

진지이야기 2-2.jpg슬며시 시작한 진지‘시리즈’는 점점 갈 길을 잃고, 과연 다음 주에도 진지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을 지 불확실한 가운데... 뭔가 하나의 대상에 대해 글을 쓰는 게 어렵다는 걸 느꼈다. 순간 순간 재미있는 순간이 분명 많았는데 그걸 이야기로 풀어내려니 막막하다. 과연 다음 주에는 어떻게 될지. 두고봅시다.

그림: 큰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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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도 사진도 정말 귀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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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