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가족과 함께 빙수를 먹었다. 같은 건물에 있는 공용 화장실에 들러 휴지에 손을 닦으려는데 휴지 케이스와 빈틈없이 롤 휴지가 차있다. 빡빡하게 끼여 있는 롤 휴지. 젖은 손으로 조심스럽게 잡아당기면 휴지는 꿈쩍을 안하고, 힘을 주면 끊어진다. 막 휴지를 끼웠나 보다. 이럴 때면 휴지와 휴지케이스 사이의 여유 공간이 아쉽다. 내가 힘 조절을 못하는 건가?
여유 없이 꽉 차있는 것이 꼭 그동안 나를 거쳐 간 취미들 같다. 전투같은 취미. 맹렬하고 무언가 본격적이며 경쟁적이고 목표를 향해 달려갔던 취미들. 돌이켜보니 처음 취미였던 지우개 모으기부터 그랬다.
내 기억 속 가장 첫 취미는 지우개 모으기이다.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용돈을 받으면 꼭 지우개를 샀다. 또래 친구들은 딱지치기처럼 지우개끼리 쳐서 서로 따먹기도 했다. 하나라도 잃으면 속상할 거 같아서 그 놀이에는 끼지 못했고 주로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사다가 모았다. 네모, 동그라미, 긴 것, 짧은 것, 하얀 색, 회색... 그러다 미니어처 지우개들이 나왔다. 색색이 과일 모형, 음식 모형 등등.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편지지와 엽서 모으기에 매진했다. 모닝 글로리와 쌍벽을 이루었던 날고 싶은 자작나무. 귀여운 것이 유치해 보이는 사춘기 시절에 날고 싶은 자작나무의 편지지는 잡지책의 한 장면처럼 근사해보였다. 세상에. 이름도 멋지지. 나무가 날고 싶을 거라니. 주변에 둘러보면 어디에나 있던 나무에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게 한 그 이름이 신선했다. 편지지와 엽서 모으는 취미는 잠시의 휴지기를 거쳐 회사생활을 할 때 스티커 모으기로 바뀌었었다.
20대 후반에는 주로 손으로 하는 취미에 빠졌다. 퀼트, 십자수, 뜨개질. 퀼트로는 크고 작은 쿠션, 가방에 이어 벽걸이용 조각보까지. 십자수로는 쿠션, 시계, 작은 액자에 이어 12채의 작은 집들로 구성된 큰 액자까지. 12채 집은 한동안 미완성으로 있다가 몇년 후 겨우 완성했었다. 큰 아이를 가졌을 때는 뜨개질에 빠졌다. 조끼, 스웨터, 가디건, 원피스... 임신기간 10개월 동안 10벌을 떴으니 얼마나 열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만약 그 취미들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면 아마 수공예 고수 쯤 되어있을 거 같다. 그 취미들이 지금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힘 조절에 실패해서이다. 완성기간이 짧은 작품들을 할 때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작품이 커질수록 지루했다. 언제 다 하지? 아직 멀었어? 하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한땀한땀 완성하는 작품들 특성이 아무리 마음이 앞서도 결코 그 과정을 축약할 수 없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결과가 중요했고 소소히 이루는 과정의 즐거움에 무지했다.
결과가 중요해지면 소유가 중요해지고, 과정의 즐거움과 배움의 기쁨이 퇴색 된다. 소유를 할 뿐 배움이 확장되지 못한다. 소유에 치중하게 되면 나에게 체화되지 못하고 짐으로 남게 된다. 진짜 내 취미라고 하려면 나의 공간이 아니라 내 안에 남아야 한다.
지금 내가 하는 것이 취미인가, 욕망 혹은 집착인가. 취미라고 부르는 그 행위에 나는 매몰되어 있는가, 자유로운가.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미룰 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이 자유롭기 위해 새로운 취미들을 시작했다. 새로운 취미를 위한 나의 기준을 읊어본다. 엉뚱한 것을 시도하자. 하나에 몰빵하지 말자. 언제든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법정스님의 난 키우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선물 받은 난을 애지중지 키우던 중에 외출을 했는데, 뜨거운 볕에 난을 두고 온 생각이 나 급히 돌아왔던 일화. 그 마음이 집착임을 깨닫고 난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한 이야기. 집착은 마치 새 휴지가 휴지케이스에 꽉 차듯 마음이 움직일 공간을 없앤다. 어딘가에 마음이 늘 쏠려 떨치지 못하고 매달리는 일. 집착. 내 인생의 중반이 가까워지는 지금, 완급을 조절하면서 마음의 자유를 담보한 취미를 가져보려고 한다. 그래야 인생의 후반기를 풍요롭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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