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사람이 멍 때린다는 말이 있잖아요. 생각을 안하고 있는 그 순간은 혹시 어떻게 보시나요.
답변: 그것은 번뇌 중 무지(어리석음)에 빠진 것으로 여김, 따라서 불교에서는 졸라 깨어있으라고 하잖아요. 자각함을 잃어버리는 것이지요. 생각을 놓아버리는 것은 멍때리는 것이 아닙니다.
질문: 과학자들은 컴퓨터가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을 연구중입니다. 그것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답변: 인공지능이 인간이 만들었다고 착각하는 것이 문제지요. 제 개인적인 생각은 그 '마음'은 조건이 발생하면 일어나는 법입니다. 인공지능이 감정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그 '마음'이 형성되는 조건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참고로 감정은 마음의 보조적인 요소일 뿐입니다. 불교의 유식사상이 그러한 기조에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연구를 졸라해서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지게 된다면 '마음' 일어나는 조건이 형성되어져서 새로운 생명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인간(과학자)은 그 출현의 조건을 만들어준 셈이겠지요. 이러한 생각은 불교의 입태경이나 티벳사자의 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어느정도 수긍할수 있습니다.
질문: 환자들 중에 뇌는 죽어있지만 육신만 살아있는 경우는 어떻게 해석하시나요.
답변: 유식사상이나 남방불교의 아비담마로 해석할수 있습니다. '마음'의 구조를 이해해야 합니다. 마음에는 표층의식과 심층의식이 있는데, 심층의식중에서 '아뢰야식(유식사상)' 혹은 바왕가(남방불교/생명지속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심층의식은 표층의식과 달리 외부와 소통하지 못하지요. 그러나 외부와 소통하지 못하는 것인지 우리는 모르긴 하지요. 식물인간을 보고 우리는 그가 의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 그가 의식이 없는지 확인할수는 없지요. 즉, 식물인간과 정상인의 표층의식과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가 뇌사상태이지요. 그러나 심장은 살아있지요. 그래서 고대인들은 심장을 뇌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것 같습니다. 심층의식은 표층의식과 연결되어 있지만 표층의식이 심층의식에 접근하기는 졸라힘들지요. 그래서 요가수행자들이 겁나 수행을 통해 거기에 접근하고 나아가서는 심층의식을 청정하게 만들어 부처를 이룬다고 표현하지요.
세번째 질문의 그 아프신 분은 생각이 없다고 하는게 아니라 또 다르게 해석하시는군용. 잘보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