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5월 27일 쓰시마 해전 막전 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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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해전과 얼키설키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 연이어 일어났던 20세기. 20세기가 열리자마자 아시아에서는 두 나라가 격렬하게 충돌한다. 일본과 러시아. 이미 망쪼가 든 나라 대한제국과 만주 일대의 패권을 놓고 맞붙은 거지. 승부는 뻔해 보였어. 세계 최대의 육군국 러시아가 아무렴 일본 정도에 어찌 되겠나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 하지만 작심하고 덤벼든 일본의 공격은 매서웠어. 일본 청년들의 시체로 산을 만들다시피 한 희생으로 러시아 군의 뤼순 요새가 함락됐고 태평양 함대가 궤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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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약이 오른다. 황태자 시절 일본을 방문했다가 웬 미치광이같은 일본 경관의 칼에 죽을 뻔 했었던 (이때 일본은 거국적으로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 러시아한테 죽을까봐- 한 여성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용서를 빌기도 했다) 경험이 있는 이 짜르는 마침내 중대한 결단 하나를 내린다. 표트르 1세가 건설했고 그 후 수백년간 러시아의 자랑이었던 발틱 함대를 머나먼 극동 앞바다로 출동시키기로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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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틱 함대는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짜르가 원하면 달려갈 거야 무조건 무조건이야”를 부르며 기나긴 항해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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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면 여북이나 편했으련만 일본의 동맹국이었던 영국이 고개를 저어서 발틱함대는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야 했지. 석탄 공급에도 애를 먹었고 기나긴 항해에 수병들이 지쳐 나가 떨어질 지경이 돼서야 그들은 극동의 해역에 도착해. 일본 역시 이 발틱 함대의 위력을 알았고 이 함대가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한다면 전쟁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갈 것이고 일본이 기껏 확보해 놓은 유리한 국면이 사라진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지. 쓰시마 해협을 거쳐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항로는 세 개였는데 러시아 함대가 어느 길을 택할지는 아무도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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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한 정보가 입수돼. 석탄운반선이 함대로부터 떨어져 나왔다는 것이었지. 그렇다면 최단거리를 택해 블라디보스톡으로 직행하겠다는 계획일 거다..... 마침내 진해에 있던 일본 연합함대가 움직인다. 일제 시대 내내 일본 해군은 진해의 충무공 사당에 경의를 표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해. 그만큼 일본 해군은 이순신을 인정하고 자신들의 조상을 때려잡았던 위업(?)을 평가했다는 얘기야. 도고 헤이하치로 연합함대 사령관도 옛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저승사자였던 이순신 생각을 했을 거다. 그가 내린 명령은 이순신처럼 비장하다. “제국이 흥하고 망하고는 이 일전에 달려 있다. 각 대원은 한층 분발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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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1904년 5월 27일 러시아 함대는 일본군에게 발각된다. 도고 제독은 이른바 ‘T자 전법’을 들고 나와. 당시 해전은 전함들이 늘어서서 대포를 주고받으며 포격전을 전개하는 양상이었는데 일본 함대는 횡대로 늘어서서 전진해 들어오는 러시아 함대의 선두부터 집중포화를 퍼붓는 방식이었지. 이순신의 학익진과는 다르지만 좁은 수로에서 도망가다가 갑자기 뱃머리를 돌려 둥근 학날개를 형성하고 일본 함대를 때려부순 방식과 어딘가 비슷하긴 해.
러시아 군은 그야말로 박살이 난다. 일본군 군함은 보다 최신형이었고 속도도 빨랐으며 먼 항해로 지쳐 있지도 않았지. 러시아 함대는 보통 해전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대패를 당해. 발틱함대 37척 가운데 19척이 가라앉고 7척은 항복했으며 나머지는 블라디보스톡과 남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까지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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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리는 아시아인들을 흥분시켜. 네루는 “날아갈 듯이” 기뻤다고 술회하고 영국에 있던 중국 혁명가 쑨원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지. 아랍인 노동자들은 쑨원에게 축하한다고 악수 세례를 퍼부었대. 그가 일본인인 줄 알고. 심지어 그로부터 1년 뒤 ‘시일야방성대곡’을 쓰는 장지연마저 일본군 승리에 환호를 보냈다. 당시 아시아인들에게는 “황인종이 백인종을 백인종의 방식으로 격퇴한” 세계사적 사건이었던 거야. 사실은 백색 늑대 사이에 황색 늑대 하나가 낀 것에 다름 아니었지만. 이 패배 이후 러시아에서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벌어지면서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기 시작하고 일본은 본격적으로 한국을 집어삼킬 행보에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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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투의 뒷 얘기는 무척이나 무성하다. 100년 가까이 끌고 있는 게 ‘보물선’이야. 당시 발틱함대는 군자금으로 금괴를 가득 싣고 있었고 처음에는 이 금괴가 경리선, 즉 경리를 담당하던 배 나히모프 호에 실려 있었다는 소리가 나왔고 많은 일본인들이 수십년 동안 이 나히모프 호를 찾아 나선다. 1980년에야 겨우 나히모프 호를 찾았고 그 배에서는 실제로 금괴(?)가 발견돼. 그러자 소련이 당장 그거 ‘그 노다지 노타치!’를 외치며 압력을 넣었고 인양 작업은 중단되고 말아. 하지만 문제는 그게 금괴가 아니라 그냥 쇳덩이로 밝혀졌다는 거. (소량의 금괴는 나왔다는 말도 있고) 그럼 금은 어디로 갔는가.
2000년에 동아건설은 그 금을 옮겨 싣고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다가 울릉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돈스코이 호를 발견했다는 발표를 해. 드디어 러일전쟁 보물선의 꿈이 한국 해역으로 옮겨 온 거지. 동아건설 주가는 갑자기 연속으로 상한가를 때리고 그게 몇백억도 아니고 150조 정도 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하지만 러시아 쪽에서는 발틱 함대에 그런 금괴 실었다는 자료가 없다고 도리질을 쳤고 인양 소식도 끊겨 버렸지.
실제로 금괴가 있다고 해도 러시아 정부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동아건설이 대박을 칠 확률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아건설은 결국 반짝 뒤의 퇴출을 경험하게 돼. 이 돈스코이 호를 필두로 김대중 정권 말년에는 보물선으로 사기를 치고 패가망신을 하는 사람들이 속출했어. 이용호 게이트는 그 한 예였지. 어떤 매체에서는 이런 보물선 환상이라는 불에 뛰어든 불나방같은 사람들을 두고 “러시아 수병들의 저주”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그럴 듯 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쓰시마 해협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친 순양함 한 척이 있어. 그 이름은 전함답지 않게 예쁜 ‘오로라’ 이 배는 후일 러시아 혁명으로 유명해진다. 페테르스부르크 항구에 정박해 있던 오로라 호 승무원들은 혁명군에 가담하여 장교들을 쓸어버린 후 붉은 기를 올리고 겨울 궁전을 향해 함포 사격을 하며 혁명을 응원하게 된다. 그래서 대한 해협에서 꽁지가 빠지게 도망갔던 이 배는 역사적 유물이 되어 지금도 페테르스부르크의 나히모프 해군 학교에서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도고 헤이하치로는 승전 후 말할 것도 없이 영웅이 되지. 승전 축하 파티가 열리는 와중에 일본을 방문 중이던 미국 해군 장교 후보생들도 초청돼. 그 중의 한 명은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승리에 깊은 감동을 받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지. “쓰시마 해전이야말로 해전의 근대적 표본이며, 교과서다. 도고 제독의 생생한 교훈이 담긴 해전을 교과서 삼아 그 이상 가는 전투를 해 보이겠다는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지나가는 도고 제독을 붙잡고 잠깐의 가르침을 청할만큼 열성을 보이기도 한다. “도고 제독 각하. 저희에게 시간을 내 주십시오!”
이 텍사스 사투리 무지하게 심하게 쓰던 젊은 장교 후보생의 이름은 바로 체스터 니미츠. 후일 2차대전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해군을 철저하게 때려 부순 바로 그 사람이다. 역사는 이렇게 좀 어이가 없을만큼 짖궂다니까.
오늘도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어찌 그리 해박하신가요?
다 검색하면 나오는 사실들을 주저리주저리 엮는 것입니다. ^^
정말 짖궂네요.
역사라는 이름의 물살
제가 어쩌다 제 책에 서명하게 되면 항상 쓰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일상이 역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