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형 유괴사건

in #zzan5 years ago

1962년 9월 10일 조두형 유괴 사건

치안에 관한한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거뜬히 든다는 한국이지만 미제 사건은 역시 많고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한 채 파일 속에 묻힌 사건도 부지기수다. 하물며 다들 어려웠고 과학 수사와는 거리가 멀었던 시기는 닐러 무삼하리오 일 것이다. 그 가운데 유명한 사건 하나가 조두형 유괴사건이다. 박정희 장군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감투를 쓰고 나라를 다스릴 때의 일이었으니 이미 반 세기도 더 전이다.

1962년 9월 10일 두형이는 맛있는 걸 사주겠다는 청년 두 명을 따라나섰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뒤 협박 편지가 잇달았고 경찰은 그 흔적을 뒤쫓았지만 찾지 못했다. 여덟 번 째 온 협박편지에는 돈 20만원 (요즘으로 하면 2천만원쯤 될 듯)을 요구했는데 경찰의 잠복 실패로 누군가 돈만 가로챈 채 아이는 돌려보내지지 않았다.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마이크 앞에 서서 두형이만 돌려 보낸다면 관대히 처분할 것을 공지했고 (이 사람 생애 마지막 해에는 정효주 유괴사건이 일어나 효주만 돌려보낸다면 관대히 처분하겠다고 했었으니 기분이 묘했을 것이다) 온 국가 기관이 들고 일어나 두형이 찾기에 나섰다.

체신부 우체부들은 편지를 배달하며 두형이 사진이 담긴 전단지를 돌렸고 교통부도 철도청을 동원하여 기차 승객들에게 두형이 전단지를 돌리며 얼굴을 본 사람을 찾았다.한국전력이나 여성단체들도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며 두형이를 찾아 보자고 호소했지만 두형이를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있었어도 거짓말이나 사기였다. 이 사건은 몇 년 후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 “내가 두형이를 죽였다.”고 거짓말한 사형수의 말을 좇아 사방을 파헤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무척 젊었던 여가수 하나가 ‘두형이를 돌려다오’라는 노래를 불러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 노래는 대한늬우스 뒤의 문화영화 속에 등장하여 한창 신파극이 유행하던 당시 영화 보기 위해 준비했던 손수건들을 미리 적시기도 했다. 그 여가수의 이름이 바로 이미자였다. 그런데 노래 가사 1절이 조금 어색하다.

“두형아 내 동생아 너 있는 곳 어데냐. 너를 잃은 부모님은 잠못들고 운단다.

동에 가도 네가 없고 서에 가도 너 없으니 낯선 사람 정을 붙여 엄마 생각 잊었느냐.”

물론 2절에는 “죄도 없는 어린 목숨 부모에게 돌려 주오.”라고 유괴범에게 호소하고 있지만 유괴 사건을 노래한 노래에서 두형이를 향해 “낯선 사람 정을 붙여 엄마 생각 잊었느냐.”는 가사가 나오니 이 아니 어색하고 생뚱맞은가, 그런데 당시에는 영아나 아동 유괴가 반드시 돈을 노려서만 행해지는 범죄는 아니었다고 한다. 아이가 없는 집에서 이른바 누군가를‘업어와’ 키우는 범죄가 종종 발생했고 피해자들은 부모와 연이 끊긴 채 전혀 엉뚱한 집에서 자라나기도 했다는 것이다. 1986년 5월 26일의 동아일보 명물칼럼 횡설수설에는 이런 사람이 등장하고 있다.

“대전인지 전주인지 분명히 기억되지 않는 개천가에서 어떤 아주머니에게 업혀간” 최웅갑씨다. 그는 ‘스스로 부모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이 될 때까지 참자고 다짐하며 살아왔다“면서 나이 서른 여덟의 교사가 되어 그 친부모를 찾아 달라고 호소했다. 그 양부모가 유괴범이었는지 아니면 어느 인자한 손에 길러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양부모에게 충격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친부모를 찾겠다고 했다. 두형이도 차라리 그렇게라도 되었으면 좋겠지만 1962년 9월 10일 유괴된 조두형 사건은 지금까지 미제로 남아 있다.

아이의 유괴는 참으로 끔찍한 범죄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최고의 처벌을 받아 마땅한 일일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 하나를 덧붙이자면 언젠가 미아찾기 방송을 통해 한 아동 실종 사건을 취재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양천구 집 앞 놀이터에서 실종됐었고 그 아버지와 어머니의 피눈물을 찍으며 근 열흘을 붙어 있었다. 한강을 걸어서 건너다가 다리 위에서 통곡하는 아버지를 보면서는 나도 눈물이 글썽했었고 아이 잃은 아픔 속에 서서히 금이 가는 가족을 보면서 아이를 데려간 누군가에 대한 분노를 불태웠었다.

몇 통의 제보전화가 있었고 확인을 하러 다녔지만 다 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여기 신길동인데요. 너무 닮은 아이가 있는데.... 갑자기 동네에 나타났거든요. 확실히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릴께요.” 그런데 다음 날 아이가 별안간 집 앞에 나타났다. 동네 어귀에서 헤매는 아이에게 아이 사진을 항상 수첩에 넣고 다니던 경찰관 아저씨가 “너 아무개 아니냐?” 하자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왔고 아버지는 아들을 껴안고 울었다. 도대체 누가 데려갔다가 데려다 놓은 것인지는 그때는 몰랐지만 아무튼 지옥에서 아이를 찾은 기분이었다.

또 며칠 후 부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범인이 잡혔다는 것이다. 아니 스스로 잡혔다고 보는 편이 옳겠다. 어느 날 어느 할머니가 집 앞에서 아이를 부르는데 아이가 소스라치며 엄마 품으로 파고들더라는 것. 아이 엄마가 긴장하여 나가 보니 할머니는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개야 다시 너 데리러 올게.” 까무라칠 정도로 놀란 엄마가 경찰에 신고하고 어리둥절한 경찰이 집 앞에 들이닥칠 때까지 할머니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집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할머니의 변인즉슨 자신이 모시는 신이 아이를 데려가라고 명했다나. 왜 다시 데려다 놓았느냐고 하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두형이의 부모가 지금도 살아 계시다면 아직도 그분들은 두형이를 어린 모습 그대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장성하여 환갑을 바라보게 되었을 연배의 아들은 꿈에도 없고 오직 맛난 거 좋아하고 누나 잘 따르던 착한 아이 두형이로 남아 있을 것이다. 두형이, 아니 조두형씨가 잔인한 손에 세상을 떠나지 않고 지금도 어느 하늘 아래서 떠오르지 않는 부모를 그리며 살아가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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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었군요.
가슴아픈 유괴사건이 참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