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에 떨고 있는 노랑선씀바귀에게 쑥부쟁이는 나직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조금만 견디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마치고 편안하게
겨울잠을 잘 수 있을 거라고...
이상하게도 마음이 끌렸다.
아침부터 카톡이 산행 소식을 전하는데 전혀 내키지 않았다.
오늘이 음력으로 며칠일까 하는 생각에 달력을 본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이 바로 구월 스무이틀이다.
이맘 때였다.
고추가 빨갛게 마르고 햇살 바른 툇마루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햇고구마를 날름날름 받아먹으며 재잘거리는 일상을 찢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어리둥절하던 날도 옷에 도깨비바늘씨를 잔뜩 붙이고 있었다.
젊으나 젊은 작은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뜨셨다.
스물네 살 꽃 같은 아내와 딸 둘을 두고 하늘을 건넜다.
어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의기양양해서 친구들을 데리고 와
줄을 세웠다. 제사가 많은 우리 집은 제삿날이면 내가 대장이었다.
먹을 게 귀하던 시절 제사는 아이들이 십리 길도 따라갔고 밤이면
쏟아지는 잠을 쫓으며 기다리기에 충분했다.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서러우면 서러운 대로 세월은 언제나
같은 걸음으로 걸었다. 가슴을 저미는 아픔 속에서도 한 해가
가고 앞서 간 아들의 소상이었다.
노모는 문상을 온 아들 친구들을 붙들고 애간장을 녹이듯 우셨다.
한참을 우시고 눈물을 닦으시며 무슨 결심을 하셨는지 부지런히
술을 걸러 한 동이 내 놓으시며 우리 아들 몫까지 많이 먹으라고
권하시고 돌아서시다 벽을 짚으며 쓰러지셨다. 그 길로 가슴에 묻힌
아들을 찾아 하늘 길을 가셨다.
언제나 두 딸 중에 하나만 아들이었어도 제사라도 받아먹을 걸,
나중에 산소에 풀이라도 깎아줄 걸 애걸하시던 마음이 끝내 저승까지
따라가셨다.
지금도 동생들이 할머니 제사 지내고 상 물리기 전에 메를 올리고
작은아버지 제사를 지낸다. 할머니 사랑을 제일 많이 받은 나는
해마다 내년에, 내년에 하면서 못 가게 된다.
오늘도 동생들이 어린 조카들과 함께 할머니 제사를 지내고 딸도
오지 않는 작은아버지 제사를 지낼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리다.
섬으로 받고 줌으로도 못 갚는 빚을 떠안고 살기를 또 어설픈
다짐을 해 본다.
내년에는 할머니 제사에 꼭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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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기일이 아니더라도 항상 할머니 생각만 해도 충분할 듯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일이 다가오면 가슴이 참 시립니다...
나이 들수록 추억은 짙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