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억지로 만들어봐야 사상누각이라 언젠간 밑천이 드러나겠죠. 하지만 현행 입시제도는 사상누각형 인간을 만드는데 최적화된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침 일전에 다른 글에 적었던 댓글이 있어 아래에 다시 인용해봅니다 ————
저는 기본적으로 아이와 부모들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공정성을 잃어가고 있는 학종에 반대하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한 번의 시험으로 진학을 결정하는 정시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사실은 미국처럼 여러 차례의 시험 기회를 주고 최고의 점수를 택하게 만드는 SAT 시스템이 가장 합리적이죠 -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이렇게 가겠지만) 하지만 여러 분들의 다른 의견도 들어보고 있으며 아래에 제 생각을 적어봅니다.
정시만으로 진학을 결정할 때 생각할 수 있는 단점이라면,
첫째, 서울의 교육열 강한 특정 학군 안에서 소위 명문대 정원을 싹쓸이 한다는 것입니다. 사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지방에서 전교권에 들어가나 부모의 재정적 서포트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불리하죠.
둘째, 고교 교육이 4년제가 될 수 있습니다. 재수가 당연히 필요한 과정으로 굳어지는 것이죠. 단순히 학습 시간만으로도 재학생이 재수생을 못이기는 바람에 생기는 문제인데, 대부분의 고교 3년생은 재수 1년을 추가하면 더 나은 학교를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미 대학에 입학한 학생도 반수를 유행처럼 하는 요즘 상황을 보면 뭐, 이것은 이미 현실이 되었습니다.
셋째, 등골브레이커 노스페이스 점퍼와 빵셔틀로 회자되는 과거 일진들의 흑역사가 고교에서 부활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잠이나 쳐 자면서 선생님 말 안들으면서 교권이 땅에 떨어졌던 시절이 왜 생겼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수능 점수로 대학을 결정하던 당시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휘두를 권력이 없었습니다. 당시 학생들은 수능 공부를 학원가서 했지 학교에서 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이야 선생님들이 학생부에 확 그어버려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지만, 당시는 못그랬을겁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이유 외에는 정시를 반대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머지는 모든 것이 장점입니다.
부모의 더 적은 투자 환경하에서 아이가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성취도를 이끌어내기 쉽다는 것이 장점이고,
대학 교수들이 그들의 관점에서 더 나은 학습 능력을 갖춘 아이들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고,
부모님 입장에서는 고교 교사님들의 압박에서 객관적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고,
최근 숙명여고 사건에서 그랬듯, 암암리에 펼쳐져왔던 교사들의 자녀 비리나 짬짬이 전횡이 생길 구석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노력한 학생들이 덜 억울하고 덜 불리해지는 것이죠.
더 나아가서는 사회라는 곳이 더욱 독립적이고 창의성이 뒷받침된 인재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곳이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은 특정 기간대에 수시 전형으로 입학한 명문대생이 나중에 사회에서 무시 당할 수 있다는 메시지와 같다고 봅니다. (정확히는 무시라기 보다는 낮은 경쟁력을 들키는?)
어찌되었건 현행 수시 체계는 중학교때부터 6년간 (학원이 몰려있는 대치나 반포, 혹은 목동 근처에서는 이것이 초등학교 고학년때부터 선행이 시작되어 어쩌면 그 이상일수도 있습니다.) 힘들고 긴 학원 교육이 시작됩니다.
정시 진학을 위한 수능 시험 문제는 평가원이 최고의 문제출제위원을 모아 고퀄로 내고, 수시 진학을 위한 중간고사, 기말고사 문제는 고등학교 교사의 자격을 갖춘 학교 쌤이 냅니다. 누가 보아도 이 두 가지 시험의 성격은 매우 다르며,
일단 공부를 하고자 마음먹은 고등학교 학생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렇게 성격이 다른 두 가지 시험을 위한 공부를 별도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2학년 2학기나 3학년 1학기면 수시는 많이들 포기하죠. 해봐야 기대치에 못미치니까요. 차라리 정시로 방향을 틀고 재수를 더 많이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써 온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 부모 입장에서는 문제입니다. 국가의 입시 정책이 방향을 흐릿하게 하며 부모들이 마음을 졸이게 만들다보니 비용도 두 배를 쓰게 하는 것이죠. 학원 과정도 수능을 위한 것, 그리고 학교 시험을 위한 것이 따로 있으니 말이죠.
더 웃긴건 정부가 어떻게 방향을 잡건 그에 상관없이 사교육 생태계는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학원에 쏠렸던 부모의 관심을 학교로 옮기고 아이들의 내재된 능력을 키우고자 했던 수시라는 체계가 이제는 학원을 한 개 더 다니게 만드는 괴물이 되었고, 수시/정시 컨설팅이라는 명목하에 부모들은 가나다 여러차례 수백-수천만원을 써야만 합니다. 마이너스 빚을 내서라도요.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태계의 확장이 결국 선생님과 외부 학원 선생님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더 공고해지는 것은 아닌지요. 강직한 선생님들의 시험 문제는 외부 학원 선생님들이 어렵사리 여러 경로로 입수해 분석하겠지만, 널널하게 일하려는 학교 선생님들의 경우에는 외부 학원의 문제 은행을 이용하지 말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인생은 다 각자의 취향대로 가는 것이니까요.
사실 요즘 공부 좀 하는 아이들에게 추앙받는 영웅은 쇼미더머니의 1등이 아닙니다. 메가스터디와 같은 사교육 기관의 1타 강사이죠. 그들은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법을 넘어서서 돈 버는, 벌었던 영움담을 짬짬이 가르치고 있으며 아이들은 집에와서 부모님에게 그런 영웅담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재테크 내지는 경제 이슈로 교감케 만드는 영리한 전략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저는 현행 학생부 종합전형에 반대합니다. 그 복잡성도 복잡성이거니와 이를 거들어야 하는 부모의 시간과 비용과 어마무시합니다. 아이 혼자서 하기 어렵고 부모가 올인할 때 효과가 나옵니다. 한편, 선생님은 1학년 때 부터 몇 명을 찍어서 3년간 양육해야 합니다. 혹여 2학년이나 3학년때 정신차려 공부한 아이가 중간에 치고 들어온다면 바로 제거해야 하지요. 공들인 노력이 희석되는 것은 싫으니까요.
모두가 이야기하는 저비용, 공정성을 생각하면 수능만으로 평가하는 정시가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교권을 생각하면 수시를 놓을 수 없지요. 하지만 이 사회엔 학부모가 많을까요? 아니면 고교 교사가 많을까요? 어느 이해 당사자가 많을까요.
그래서 인터넷 뉴스 댓글만 보면 정시 목소리가 크지만 실상은 제도권에 있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아주 크게 반영되어 수시가 무려 80퍼센트 입니다. 어느 누구도 제도권에 들어가면 권력을 놓치고 싶지 않지요. 교사들도 마찬가지일겁니다. 교권을 지키려는 그 노력에 힘입어 앞으로도 현 체제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작은 목소리가 더욱 커져야 이 사회가 덜 복잡한 경쟁과, 덜 투자하는 교육 체계에서 더 나은 인재를 더욱 공정한 기반에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교사의 교권은 보장되면서 아이들은 부모 의존, 간섭 없이 본인이 공부한 만큼 제대로 평가받으며, 본인의 수학 능력에 걸맞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시스템은 과연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