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보(7연대 대전차포중대장)
송광보는 심일의 직속상관으로 이대용의 주장에 의하면 심일이 대전차포 1문을 유기했을 때, 이를 문책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연대장에게 건의한 사람이다. 그는 현재 외국(캐나다)에 거주중이지만, 육군군사연구소의 인터뷰에 응하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육군군사연구소와 면담 이전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와의 전화 면담에서는 그들이 질문하는 내용에 대해 나름 성실하게 답변한 것으로 확인된다. 국방부와의 면담은 2016년 6월 27일 이루어졌으며, 당시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
“(6월 25일 상황에서 심일 중위가 전차를 파괴한 것은 확실하지요?) 그건 제가 말씀을 드렸죠. 그건 여러모로 그 때 당시의 상황이 여러 곳에서 입증된 것으로 압니다. (전차를 파괴한 것이 2대가 맞는냐는 질문) 네, 맞습니다. (심일 중위가 직접 파괴한 것이 맞는가?) 예 맞습니다. (심일 중위가 직접 파괴한 것도 맞는가?) 지휘했지, 지휘했지요. 그분이. (수류탄과 화염병으로 파괴한 것에 대한 질문) 그렇지, 그렇지요.
그가 국방부 면담에는 응하고, 육군의 인터뷰 요청에는 거부감을 갖는 이유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국방부측은 기존의 주장을 지키려는 측이었고, 육군은 이를 반대하는 측으로 여겼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다만 이것도 필자가 추정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광보는 심일의 공적 진위 여부와 관련해서 중요한 증인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심일의 직속상관으로서 심일의 문책을 주장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전투상보(전사부 본)에는 대전차포로 사격을 해서 적 자주포를 파괴한 장본인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7월 14일 육군군사연구소에서 1차 전화통화를 통해 캐나다 무관의 자택 방문 조율을 실시했다. 하지만 전화통화에서 자신은 기억이 없으니 별로 할 말이 없다며 인터뷰에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당시 전화 통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보세요,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지금 한국입니다. 육군군사연구소 000이라고 합니다.) 군사연구소요? (예, 육군본부입니다.) 저하고는 관계가 없어요. 뭐 물어보지 마세요. (선생님 저희가...) 물어보지 마세요. 전화 끊을래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희 캐나다 무관이 찾아뵈려고 하는데, 괜찮으시면...) 아니에요. 전화 끊습니다. 만나고 싶지 않으니까 전화 끊어요. (선생님 저희가 심일소령에 대해서 지금 재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거 뭐 얘기 들었는데요, 지나간 일, 내가 지금 기억이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깐 어려운 만남은 내가 괴로우니깐, 하여튼 그런 줄 알고 전화 끊습니다. 만나봐야 내가 지금 기억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이렇게 전화로 여쭤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저희가 직접 찾아 뵙고 여쭤 보고자 합니다.) 아니야, 아니에요. 내가 기억력이 없어서 만나봐야 내가 도리어 미안하고 괜히 폐 끼치는 것 같아서 거절합니다. 전화 끊습니다. (선생님 그래도 선생님께서 그 때 당시의 유일한 생존자이시고, 그때 상황을 그래도 목격하신 분이니까...) 좌우간 전사관계를 물어보려고 하는 모양인데, 내가 기억력이 없다니까요. 하여튼 전화 끊습니다. 다시 걸지 마세요. 내가 기억력이 없어서 그래요. (예, 알겠습니다. 어쨌든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전화 통화시 전화를 끊겠다는 말을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6회를 할 정도로 인터뷰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불과 한 달 전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와의 전화 인터뷰에 응해서 당시 상황에 대해 나름대로 성실히 답변한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두 번째 전화 면담은 2016년 7월 27일이었다. 이 때도 마찬가지로 인터뷰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1차 때 보다는 많은 말을 했다. 세부내용은 아래와 같다. “(지금 아니면 바로 잡을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전화 드렸습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요? (전투상보에 적 자주포를 파괴한 사람이 중대장님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글쎄 그것은 잘못 들었을 것이야. 나는 한마디도 증언한 것이 없어요. 전산편찬위원회에 편찬위원이 있을 것이고, 또 거기에 증언한 사람 이름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잡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당신네들 할 일이고 나는 거기에 대해서 하나도 이야기할 것이 없어요. (심일이 적 자주포를 파괴하는 것을 직접 보셨습니까?) 저는 연대에서 지시하는 대로 대대에다 배치하라면 배치하고, 그렇게 해왔지, 제가 포대 전체를 움직여 본 적은 없어요. 그렇게 아시고 직접 격파하는 것을 보았느냐 그렇게 묻지 마시라고.... (심일이 자주포를 파괴할 당시에 중대장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글쎄, 그것도 기억이 안나요. (육탄 5용사가 있었습니까?) 5용사가 뭐요? 사병을 말하는 거에요. 뭐 모르지 있기는 있었겠지, 묻지를 마시라고... (중대장님과 1소대장은 1950년 12월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는데 심일은 왜 못 받았는지?) 몰라요, 그게 다 연대에서 추천을 하는 것인데, 제가 추천하는 것도 아니고... (자주포를 파괴한 것이 25일입니까, 26일입니까?) 저는 지금 기억을 못하겠습니다. (1문이었는지 2문이었는지도 전혀 기억이 안 나십니까?) 예, 기억이 없어요. (수류탄과 화염병으로 파괴한 것에 대한 질문) 전화 끊읍시다. 그만큼... 저는 그 때 당시에 중대장이지만 실제로 전차를 파괴하고 그런 것은 심일 소위, 그 소대에서 한 거니까 그렇게 기록해 주시면 좋겠어요. 하여튼 그건 집필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내가 답변할 수 있는 것은 하여튼 그 이상 더 없어요. 아무리 나한테 캐물어 봐도 없어요.”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와의 전화면담에서는 자주포를 심일이 직접 파괴했으며, 그 파괴대수도 2대, 파괴방법은 수류탄과 화염병을 가지고 했다고 증언한 바 있었지만, 육군군사연구소와의 전화면담에서는 전혀 기억이 없다고 말해 그의 국방부 전화면담 내용의 신뢰성을 떨어뜨렸다. 게다가 자신은 심일의 공적에 전혀 관계가 없으니 캐묻지 말라는 태도는 그가 무엇을 숨기고 있거나 혹은 그의 말대로 아는 게 전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어쨌든 그가 한 말 가운데 의미심장한 부분은 우선 중대장이 자주포를 격파했다는 전투상보의 기록은 오류라고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심일이 그것을 했다고 증언했다. 다만 자신은 자신이 자주포를 파괴했다고 증언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전투상보의 실체를 모르고 있었음에 분명했으며, 그 기록이 누군가의 증언에 의해 기록된 줄 알고 있는 눈치였다. 대부분의 질문에서 정확한 전투상황에 대해서는 증언을 거부하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변을 회피했다. 전쟁 초기 자신과 1소대장은 훈장을 받았는데, 왜 심일이 같이 훈장을 받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에 자신이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으며, 단지 연대에서 추천해서 받게 되었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지...
스팀에 박재하는 이유가 훗날의 진실을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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