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일기] 필로폰 1그램의 시가가 10만원이라고 경찰이 알려주다

in #drug5 years ago (edited)

#2018년 5월23일 (수) 마약일기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건물.jpg

이놈의 세상은 숨돌릴 틈조차 주지 않는구나. 직장에서 해고된지 하루도 안지나서 경찰에 조사를 받으러 나가야 했다. 다시는 방문하고 싶지 않은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건물로 이은의 변호사와 함께 들어섰다. 마약수사대는 서울경찰청 건물에 있지 않고 별도의 허름한 안가같은 곳에 따로 있다. 웬지 한번 갇히면 영원히 세상 구경을 못할 것 같은 80년대 경찰 안가 같은 공간. 낡은 철문같은 문을 열고 조사실로 들어갔다. 팀장이란 사람이 커피를 타주는 호의를 베풀었다.

따뜻한 커피와 냉정한 수사관의 공격이 교차했다.

“모발 검사에서 필로폰이 검출된 것을 인정하십니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그렇게 검출되었다고 통보하였으니 인정합니다.”
“필로폰을 제공한 상선은 누구입니까.”
“상선이 뭐지요?”
“필로폰 제공업자입니다. 마약 사용자들의 용어입니다.”
“전 그런건 모릅니다. 신경안정제 비슷한 거라 해서 그런건줄 알았습니다. 투약 직후 이건 신경안정제 그 이상이란 걸 저도 당연히 눈치챘습니다. 사전에 그게 마약인지 알았다면 그것을 했겠습니까? 그와는 헤어진지 너무 오래여서 연락처랑 모든 정보는 삭제해버려서 없습니다.”
“얼마에 구입하셨습니까.”
“구입을 한게 아니고요. 그 사람이 준 것입니다.”
“보통 1그램에 10만원 정도합니다.”
“알려주셔 감사합니다.”

마약인지 알고 했건 모르고 했건 뭐가 중요한가. 마약임을 눈치채고나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은 것도 나다.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형사처벌을 받자. 그러나 난 이미 직장에서 잘렸다. 가장 큰 처벌이다. 오늘의 조사는 내게 큰 의미가 없다. 내게 지금 더 중요한건, 내 정보를 시중에 퍼뜨려 나를 공개망신 시킨 경찰을 찾아내는 거다.

“대체 내 입건 정보를 누가 퍼뜨린겁니까.”
“중요 사건은 청장님에게 보고가 돼요. 그 과정에서 유출이 된 것 같아요. 저희는 절대 아닙니다.”

마약수사대 팀장은 자신에게 정보 유출의 책임이 돌아올까봐 애써 나의 기분을 달래려는 듯 했다.

“기자님. 초범이고 단순 투약같은 경우는 기소유예 처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용기를 가지세요.”

기소유예? 상관없다. 난 애초부터 처벌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 이런 극단적인 경험을 통해 내가 마약을 다시 안하게 될 수 있다면 되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건 내 삶의 토대가 무너지지 않는 것인데, 모든 것이 이미 무너져버렸다. 내 입건 정보를 시중에 유통시켜버린 그 경찰을 잡아서 묻고 싶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런거냐고.

2시간여 수사관과 입씨름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는 이런 곳에 오지 말자. 사람은 한번쯤 살면서 실수를 한다. 내가 상상했던 범위 밖의 큰 실수이지만, 이건 실수다. 마약은 내 인격을 설명하는 전부가 결코 아니다.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말아야 사랑하는 부모님을 마지막까지 보필할 수 있다. 언제쯤 이 지옥같은 터널을 모두 빠져나갈 수 있을까. 빨리 뛰어 벗어나고 싶지만 도무지 앞이 안보여 엉금엉금 기어서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는 이 컴컴한 터널을.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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