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일기] 끝내 이용마 선배 영결식에 가지 못했다

in #drug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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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23일 중독자의 회복일기

손혜원 의원실에서 일하던 김성회 보좌관이 연락을 해와 만났습니다. 최근 그는 의원실을 나와 '씽크 와이'라는 여론동향 연구소를 만들었습니다. 국회의원만큼 유명한 보좌관답게 그는 이미 많은 구독자들을 확보하고 이런저런 바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허재현이라는 기자가 김 보좌관같은 유명인에게 되레 기대어야 할 것 같습니다.

김 보좌관과는 업무 관계로 알고 지낸지 수년 째 되었습니다. 자주 만난 건 아니지만 서로 SNS 상에서 응원하고 각자의 활동을 지켜봐왔습니다. 사람이 잘 나갈 때는 여러 사람들의 연락이 당연하게 옵니다. 하지만 사람이 잘 나가지 않을 때, 먼저 만나자고 연락해주는 사람은 드물지요. 김 보좌관은 후자의 경우입니다. 잘 드러나지 않던 '인간의 결'이란게 이런 곳에서 보이는 것이지요.

"기자님. 재능있는 칼잡이는 계속 칼을 들어야 해요. 노는 건 죄입니다."

김 보좌관은 이런 메시지를 보내며, 불쑥 연락해왔습니다. 당연히 저를 격려해주러 오신것이기도 하지만, 제가 최근에 시작한 유튜브 방송의 질이 너무나 형편 없어서 이런저런 구독자 늘리는 방법과 방송 촬영 요령을 알려주러 직접 찾아 오신 겁니다. 좋은 가르침과 격려까지 받아 제가 대접해야 하지만, 밥과 차도 김 보좌관이 다 사고 홀연히 가셨습니다.

이런 분들이 계셔서 제가 꼭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됩니다. 저같은 흠결많은 기자가 다시 우리 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를 응원해주다니요. 그저, 감동을 받고 송구하기 그지 없습니다. 김 보좌관은 지역구 국회의원 출마도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이런 분이라면, 지역구 주민들에게 참 힘이 되고 따뜻한 위로를 줄 수 있는 인물이 되겠구나 생각해보았습니다.

KakaoTalk_20190920_193654557.jpg 김성회 보좌관(오른쪽)과 함께

김성회 씽크와이 대표와 헤어지고나서 잠시 어디로 갈까 고민을 했습니다. 사실 오늘은 암투병중 끝내 작고한 이용마 엠비씨 선배의 영결식이 있는 날입니다.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진다기에 저도 가볼까 고민했습니다. 정권의 방송장악에 맞서 언론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스트레스를 받고 암투병까지 하게 된 이용마 기자의 작고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저같은 후배 언론인은 더더욱 슬픔을 느낍니다.

제가 평상시라면 이용마 선배의 영결식에 당연히 참석하고 시민장례위원으로서 이름도 올리고 영정 사진 앞에 작은 꽃이라도 올려드리고 오겠지만, 겁이 났습니다. 내가 저곳에 가도 될까. 많은 언론계 동료와 선후배들이 나를 쳐다볼텐데. 격려해주는 분도 있겠지만 따가운 시선을 품는 분들도 분명 많을텐데. 그 모든 시선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았지만 끝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나는 죄가 많은 언론인이다. 언론민주화 운동을 벌이고 계신 분들 곁에 서는 것조차도 부끄러운 존재다. 당분간은 참자. 대신 올바른 언론인으로서 충분히 더 증명해 낸 뒤 그들 곁에 서자.'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2014년 11월 국민티브이가 마련한 동아투위 선배들의 40년 투쟁을 기념하기 위한 특집 방송에 한겨레 기자로서 초청을 받아 원로 선배들과 대담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한겨레는 자유언론실천을 위해 애쓰신 동아투위 선배들의 유산으로 남은 언론사이기에 후배로서 기꺼이 시간을 내어 감사인사를 드리러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되레 불러주어서 영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언론계 어디서도 저를 부르지 않습니다. 괜찮습니다 . 부끄러워서 제가 차마 곁에 서지도 못하겠습니다.

한겨레에 입사할 때 솔직하지 않았던 게 하나 있습니다. 사실 저는 기자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선배들이 벌여온 자유언론실천운동을 후배로서 이어받고 싶어서 들어갔습니다. 한겨레가 적당한 활동 공간같아보였습니다. 하지만 너무 운동권 기자처럼 보이면 안 뽑힐 거 같아 이 생각은 숨겼었습니다.

한겨레 입사하고 나서도 노조에서 언제 한번 일해볼까 하고 기웃거렸습니다. 원래 요즘 기자들은 경력 단절을 걱정하며 노조일을 안하려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든 좋으니 사무국장 자리같은 거 비면 연락 주세요"라고 선배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그만 한겨레를 나오게 되었고, 저는 영원히 한겨레 노조에서 일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가 다시 기회를 준다면, 저는 바깥에서 언론자유실천운동을 하겠습니다. 어차피 한겨레 사무실과 책상이 아니더라도, 언론자유실천운동은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리포액트라는 작은 대안 매체를 꾸릴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기에 제가 다시 뛸 수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비록 이용마 선배의 영결식에는 참석 못했지만, 이 선배가 못다하고 떠난 남은 과제들을 제가 계속 이어받으면서 늙어가겠습니다. 평생 영결식을 치르는 마음으로 살려 합니다. 그게 언론계와 시민사회에 끼친 제 크나큰 빚을 갚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부끄럽고 흠결 많은 언론인 허재현은 오늘도 이렇게 가슴을 치면서 걷습니다. 앞으로 제 인생은 어떻게 펼쳐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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