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일기] 악몽에 경찰은 안나오고 회사 사람들만 나온다... 진정한 공포는 경찰이 아니라 해고다

in #drug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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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26일 (일) 마약중독자의 일기

잠에 들기까지 너무 힘들다. 계속 괴로운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 유튜브 방송이나 틀어놓고 잠들 때까지 내버려 둔다. 어떤 소리가 계속 내 귀에 꽃히게 하려는 의도다. 그래야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모바일레전드라는 즐겨하는 모바일 게임이 있다. 게임했던 것을 녹화해두고 전투장면 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청하기도 한다. 다른 생각의 침투를 허용하지 않고 오로지 게임만 생각하면서 잠에 들면 그나마 편하다.

잠 드는 것을 겨우 성공하면 그 다음은 악몽과 마주할 시간이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악몽은 나를 재방송하듯 덮친다. 해고 당하던 순간, 사람들이 비난하거나, 해고 이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내 모습이 나온다. ‘해고는 부당하다’고 외치다가 ‘아 참. 난 마약으로 해고된 거구나’ 하면서 자포자기 하는 내 모습이 반복된다. 잠을 자야만 괴로움을 잊을 수 있는데 잠을 자면 그곳에서 또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나온다. 정신적 쇼크란게 이런 거구나. 마약 중독이 사람을 죽이는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죽이는 것 같다. 하루하루 어떻게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을까.

신기한건 내 악몽에는 단 한번도 경찰이 등장하지 않는다. 분명 내 인생의 악몽의 시작은 경찰의 등장부터 시작된 것인데 왜 경찰은 안나오는 걸까. 계속 나를 비난하는 회사 사람들만 나타난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공포는 직장 해고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과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구호를 외쳤던 게 떠오른다. 해고가 이런 것이구나. 내가 앞으로 느끼게 될 진정한 고통의 근원은 마약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달 25일은 월급이 들어오는 날이었다. 나는 월급에서 매달 백만원씩 뚝 떼어 부모님의 생활비를 드려왔다. 평생 막일과 식당일로 몸이 부서져라 일해오신 부모님의 노후만큼은 풍족하게 만들어드리고 싶어 기꺼이 해왔던 일이다. 내가 살아가며 느끼는 몇 안되는 낙이었다.

너무나 갑작스레 해고 되어 앞으로 계속 생활비를 드릴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일단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오늘 부모님의 통장으로 백만원을 이체했다. 내 통장을 살펴보니 천만원 정도의 여윳돈이 남아있다. 1년 가까이는 부모님께 생활비를 차질 없이 드릴 수 있는데 그 이후부터가 걱정이다.

먹고 살 길을 생각하니 모세혈관 구석진 곳에까지 퍼져있던 한숨이 꾸역꾸역 나와 폐를 거쳐 심장을 때리는 것 같다. 가슴이 왜 이렇게 아플까. 죽는게 편하겠다. 죽을수도 없지만.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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