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24일 (목) 마약중독자의 일기
이제 어떡해야 할까. 회사가 발행한 ‘해고 통고문’을 자세히 다시 읽어보았다. 해고통고를 받아든 첫날은 충격이 너무나 커서 ‘허재현을 즉시해고한다’는 문장만 띄엄띄엄 읽어보고 그만 종이를 덮어버렸다. 무슨 사형 선고를 받은 것처럼 힘겹다. 한 문장 읽었는데, 누군가 ‘죽어라’ 하고, 그 다음 문장 읽었는데 ‘아직 안죽었어?’ 하고 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언론사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적용 대상에 포함될 정도로 언론사 구성원들에게 보다 높은 도덕성과 책임이 요구 된다. 사회의 공기로서 언론사에게 부여된 막중한 책임과 역할을 고려할 때 그 어떤 조직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된다. 한겨레신문사 직원이 마약 투약이라는 중대한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
중대 불법 행위. 그렇구나. 사람들은 내가 앞에서는 정의로운 척 하면서 뒤에서는 중대한 범법을 저지른 위선자로 보고 있었구나. 난 중대한 불법 행위자가 되어 있다. 한겨레신문사가 법원인가? 중대한 불법행위 여부인지 아직 경찰이 조사도 마무리를 안했는데, 나를 중대 불법 행위자라고 표현하다니.
내가 법을 본의 아니게 위반한 건 맞는데, 난 왜 억울함을 느끼는가. 내가 파렴치해서 그런가. ‘중대 범죄자’라는 저 문구를 보니 되레 화가 나고 자기 방어적인 생각이 든다. 이건 좀 너무 한거 아니야? 그리고, 지들이 판사야? 아직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것도 아니고 판사가 판결도 안했는데. 지들이 뭔데 나보고 중대한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비난하는거야? 화가 난다.
내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반성할 기간은 안그래도 가지려 했다. 그런데 반성도 하기 전에 일단 옷부터 벗기고 돌팔매질을 하는 건 옳은가? 돌팔매질을 맞고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져 버린 탓에 내 부러진 팔과 다리의 상처부터 챙겨보게 된다. 안되겠다. 일단 살아야겠다. 자기 방어적 태도를 갖고 내 스스로를 위로하자. 안그러면 정말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살고 싶은 의욕을 가지려면 내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으면 안된다. 반성은 나중에 하고 일단 살자. 살아내야 한다.
해고 통지서를 찬찬히 다시 읽어본다. 사흘 안에 이의제기를 하지 않으면 해고가 확정된다고 써 있었다. 어랏? 이건 내가 못봤던 문구인데? 나 아직 해고가 확정된 게 아니구나. POP 모임의 나영정씨와 상의를 해보아야겠다. 한번더 이의제기를 해볼까.
하지만 다시 신문사로 출석하는게 너무 싫다. 마치 지옥불에 들어가는 것처럼. 온몸이 타들어가는 거 같다. 또 복도에서 누구를 마주치면 어떡하지? 징계가 과하다고 항의하는 것조차도 죽을 만큼 하기 싫다.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물에 탄 가루처럼 녹아 사라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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