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일기] 노무사와 한겨레 복직 소송 문제를 상담했다

in #drug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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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29일 (화) 마약일기

친구 우성이와 점심을 먹었다. 우성이는 자기와 같이 사업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우성이는 갖고 있는 아이디어가 참 많은 친구인데 실행력이 뒷받침 되는 동료가 없어 추진을 못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우성이는 작은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호텔 체크아웃을 마친 여행객들의 가방을 공항으로 대신 날라다 주는 사업을 하고 싶은데 차량을 운전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한다. 내가 1종 보통 면허를 갖고 있다. 맡겨만 주면 무조건 같이 하겠다고 했다. 우성이가 사업 투자금을 모으면 곧바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직장에서 갑자기 해 되니 생계문제가 당장 큰 벽이다. 부모님께는 월백만원씩 꼬박꼬박 넣어드렸다. 검소하신 부모님이 이 돈을 다 생활비로 쓰시지도 않지만, 평생을 막일로 몸을 부서뜨리며 살아오신 부모님이 노후만큼은 조금 여유롭게 보내게 해드리고 싶었다. 내 경제력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효도이자, 자식으로서 살아가는 이유였다. 그런데 앞으로 이 돈을 어찌 넣어드릴 수 있을까. 나도 이런저런 사회생활 비용을 충당하려면 월 200만원은 벌어야 할텐데. 큰일이다.

택시운전이라도 해볼까. 알아봤더니 마약 전과가 있으면 그것도 채용이 안된단다. 제기랄. 아직 나는 전과가 확정되진 않았으니 일단 지금이라도 당장 택시회사에 취업부터 해볼까. 설사 나중에 유죄가 확정되어 회사를 잘리더라도 한번 해볼까. 그런데 전에 다니던 직장은 뭐라고 기재해야 하지? 한겨레신문사 기자라고 적을 수는 없지 않나.

논술학원에 취업해볼까. 고시공부같은 거 하다가 10년 날려먹었다고 거짓말 하면 믿어줄려나? 어차피 내 이름을 조금만 인터넷에 확인해보면 마약전과자인게 다 검색될텐데. 학원장이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학부모들이 나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체 내가 뭘로 먹고 살 수 있을지 암담하다. 정녕 막일밖에는 대안이 없는 걸까. 난 육체적으로 힘쓰는 것에는 그다지 자신이 없는데.

아무리 마약 전과가 있다 해도, 나는 노동자로서 아무런 신체적 문제가 없다. 지난달에는 심지어 기자협회가 주는 기자상까지 받지 않았나. 내가 마약에 찌들어 정신이 나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다른 취업을 아예 할 수 없는 거 같아 숨막힌다. 현실이 너무 팍팍하다. 아니 팍팍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내가 앞으로 사회인으로서 숨쉬면서 살 수나 있을까.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마약 사용자들의 내동댕이쳐진 밑바닥 삶의 현실이 내게 화살처럼 휙하고 날아와 몸 곳곳에 박히는 것 같다. 마치 갑자기 시간의 블랙홀에 빠져 70년대 한가운데로 떨어져 ‘여기가 어디지?’하고 두리번 거리며 방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오늘 우성이가 함께 일하자고 해주어 살아갈 힘이 생기는 듯 하다. 나와 함께 일하자고 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게 이렇게 큰 힘이구나. 마약 중독으로 인해 몸이 망가지는 것보다 사회적 관계와 기반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이 더 큰 병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 당장 나를 굶어죽지 않게 만들어줄 친구 한명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느낀다. 오늘은 중단했던 운동도 다시 하러 갔다.

저녁에는 노무사 일을 하고 있는 대학 선배를 만나러 갔다. 선배는 복직소송을 해볼까 하는 나를 우려했다. 내 소송이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회사가 각종 자료를 들고나와 나에게 견디기 힘든 상처를 또한번 줄거라 했다. 그 과정이 매우 고통스러운데 견딜 수 있겠느냐는거다. 복직소송을 치르어내는 수많은 해고자들을 지켜봐왔으리라. 이름을 밝히기 어렵지만 선배는 과거 한겨레신문에서 해고된 어떤 분의 복직소송을 맡아본 적이 있다고 했다. 선배는 그때 한겨레신문이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나오는지 다 지켜봤다고 한다. 끝내 그분은 그 소송에서 이겼지만 그 과정에서 회사의 태도에 적잖이 상처를 받고 회사를 다시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나도 똑같은 일을 겪을 거라는 거다.

나도 잘 모르겠다. 어차피 해고된 거 한번 부딛혀볼까 하다가도, 내가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어차피 난 이 회사를 다시 다닐 마음이 없어져버렸다는게 내 결정을 가로막는다. 내가 한겨레에 피해를 입힌 것도 크지만, 나 역시도 이번 일을 겪으며 한겨레에 상처를 받았다. 마약 사건으로 입건됐다고 해도, 이렇게 판결도 나지 않은 사건을 갖고 즉시해고 해도 된다는 건가. 심지어 나는 마약을 하다 걸린 거도 아니고 과거 사건을 내 스스로 자백한 거 아닌가. 왜 한겨레는 이런 내 주장을 들을 생각도 안하는가.

해고의 사유도 너무 과하다. 내가 중범죄를 저질렀나. 정말로? 내가 무슨 뇌물을 받거나 부정청탁을 받거나 그런 법을 어긴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마약으로 입건되면 그냥 어떤 평가든 다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솔직히 너무나 창피해서 나도 싸울 힘이 없다. ‘마약’이라는 단어는 내 입에 담기에도 아직 스스로 부끄럽고 낯선 문제다. 제기랄.

내가 갑자기 흉악한 ‘악마’라도 된 느낌이다. 그래서 drug를 우리나라에선 ‘ 마 ’ 약라고 부르는거야?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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