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고 발칙한 모험가. 김민식
내가 처음 김민식 PD를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첫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였다. 책 제목으로 내용을 한 눈에 알 수도 있지만, 또 그만큼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책이라 그의 이름을 기억했던 모양이었다.
그를 다시 알게 된 것은 ‘김장겸은 물러가라!’라는 페북 영상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영화 공범자들 시사회에서 만난 김민식님, 세바시 강연 영상으로 만난** 김민식님을 종합한 나의 그에 대한 인상은 “유쾌하고 발칙한(?) 모험가”였다.*(참고로, 나에게 발칙함은 사전적 의미인 ‘버릇없고 막되 먹은’의 의미가 아니라, ‘창의적으로 경계를 허무는’이라고 부연한다)
나의 그런 인상은 김민식 PD의 신간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서문에서도 단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한양대 신입생이었는 20살 김민식은 건국대학교 교정에 “자전거로 전국일주하자”는 플랜카드를 보고 단번에 건국대 사이클부를 찾아간다. 그리고 한양대생이지만,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하고 싶으니, 동아리에 가입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겠는가?
우리는 암묵적으로 그어 놓은 여러 마음의 선이 있다. 그 선들 중 어떤 선들은 그것을 넘어갔을 때, ‘무례하다’, ‘상식이 없다’ 하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선들은 그것을 넘어갔을 때, 예상치 않은 ‘만남’과 ‘창조’를 일으키기도 한다.
신입생 김민식이 맞딱들인 선은 어쩌면 자전거에 대한 열정이라면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선이었던 모양이다. 놀랍다. 우리가 그어 놓은 마음의 선들이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선들은 넘어가는 열정과 용기라면,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민식님은 이렇게 말한다.
“남이 나를 거절할 수는 있어도 적어도 내가 나를 거절하지는 말자. ‘에이 네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하고 지레 포기하지는 말자.”(p7)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라는 성경말씀이 이쯤에서 생각난다. 열망이 있을 때, 눈 앞의 경계를 두드리라. 그러면 의외의 방법으로 열리리라.
토닥토닥!
김민식님이 경계를 넘어 지도 밖으로 나아가는 것이 항상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MBC 예능 PD로 입사한 후, 드라마 PD로 직종 전환했을 때였다. 드라마국은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곳의 텃새는 자신의 고통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김민식님에게도 고되었던 모양이다. 그쯤 여행했던 앙코르와트의 개성 넘치는 다양한 사원들을 보면서, 예능 PD 출신의 자신에게는 드라마 PD에게는 없는 개성이 있고, 그것을 바라는 시청자가 있을 것이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결과는 하늘만 알아요. 사람의 길은 최선을 다하고 겸허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일이지요. 뜻대로 안되면 어때? 그것 또한 인생인데.”(p38)
책을 읽고 있는 도중에 3주 전에 진행했던 프로젝트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아픈 피드백이었다. 그리고 이 글귀를 읽게 되니, 마치 위로 받는 기분이었다. “그래, 결과는 하늘만 알아. 겸허하게 그냥 해 보자. 되면, 감사하고, 안되어도 감사한 일이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책에 ‘맞아요. 뜻대로 안되어도 괜찮아요!’라고 글귀를 적어 넣었다.
긍정을 해도 현실이 나아지지 않을 때
스스로를 토닥이며 긍정적으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김민식님에게도 오랜 겨울 사이클이 있었다. 앞에 캄캄하고, 막막하고, 답답하고, 어떻게 해도 잘 풀리지 않는 때 같은 거 말이다. MBC 파업이 계속되는 때, 그는 계속되는 징계를 받았다. 일도 상황도 뜻대로 되지 않아 아르헨티나로 도피하듯 여행을 떠났다.
그가 만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그가 꿈꿔왔던 곳이 아니었다. 공항에서 내리는 아니, 그곳으로 여행을 가는 거 자체부터 걸림돌이 많았다. 그리고 가까스로 도착한 공항에서부터 여행이 끝날 때까지 갖가지 납득되지 않는 상황들이 반복되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려며, 버스는 SUBE카드가 있어야 하는데, 그 카드는 시내에서만 파는 어이없는 상황 같은 것들 말이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지만 내용을 읽고 있자니, 언제 갈지 모르는 아르헨티나이지만, 나의 여행목록에서 삭제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김민식님은 아르헨티나의 매일매일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은 그들 역사 속의 잘못된 정치인들 때문이며, 사회전체가 도적적 해이에 빠지면, 국가 시스템은 작동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신뢰’는 사회적 자본이다. ‘신뢰’가 기반 되지 않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도적적 해이는 돈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 될 것이다.** 그 사회의 구성원들 뿐만 아니라, 그곳을 방문하는 방문객들도 그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신뢰’의 가치다.
아르헨티나 여행에 관한 글을 읽으며, 요즘의 대한민국 사회를 떠올려본다.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 부모의 부가 견고하게 대를 이으며, 위 아래의 유동성이 떨어져버린 사회. 일부 사람들에게만 다발로 주어지는 기회 앞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느끼는 불공정성. 그리고 그것을 견고하게 지켜나가기 위해 퍼뜨려지고 있는 가짜 뉴스들.
이미 형성된 불신의 늪 앞에서 사실과 상관없이 가짜 뉴스들을 그것을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확대 재생산되고, 사회 곳곳에서는 불평과 좌절과 분노가 누적되고 있다. 이런 상황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안타까운 마음에 이르렀을 때 김민식님은 이런 글로 마무리 했다.
“공영방송이던 MBC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 동안 많이 망가졌어요. 저는 유배지를 떠도는 낭인이 됐고요. 나라를 떠나 머나먼 남미에서 안식처를 구하려던 저의 시도는 실패했어요. 덕분에 이제는 국외 도피로 답을 찾지 않으려고 합니다. 문제가 여기에 있다면, 해결책도 여기에 있을 테니까요. 유배지에서 근무하는 하루하루를 여행을 즐기는 일상으로 바꾸며 살자고 결심했지요. 도망쳐서 달아난 곳에 천국은 없으니까요.”
**긍정을 해도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고 느낄 때, 그래도 지금 할 수 있을 것을 해 보자.**
내가 만나는 일상 앞에서 신뢰를 표현하고, 사랑을 느끼며, 매일을 즐거움으로 채워가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이 모든 좌절과 분노의 에너지 앞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해 본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어떤 부족들은 부족 내에 불행한 일이 생겼을 때, 부족 개개인들이 가장 아름답고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 부족에게 일어난 아픔을 위로하기 위한 방법으로 말이다. 부족의 아픔의 양을 개개인이 느끼는 기쁨의 양으로 상쇄한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아픔의 양을 상쇄하기 위해서 오늘의 나는 내 삶의 일상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채워야겠다.
다 채우지 못한 이야기들
애초에 글을 시작할 때, 이런 이야기로 채울지 예상하지 못했다. 김민식님이 전하는 통통 튀게 가볍고 재미나지만 공감과 통찰이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이를테면 ‘워라밸은 없어져야 한다’라는 것과 같은 거 말이다.
“워라밸이 필요한 이유는 고객의 갑질을, 상사의 갑질을 견디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일하는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그래요. 워라밸도 중요하지만, 워라밸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일터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합니다. 퇴근 후 나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일터에서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자리 잡히기를 소망합니다. 퇴근 시간만을 간절히 기다리며 사는 건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무 시간도 내 삶의 일부니까요(p70) (중략) 저는 워라밸도 좋지만 내 일터를 바꾸고, 내 삶의 변화를 일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p72)”
정말 그렇지 않은가?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일터에서 보내는 데 그곳이 불행하다면, 그곳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면서 매일매일 살아간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내 삶의 변화를 일구기 위해 일터를 바꿔보자. 상사가 고객이 갑질을 해서 아프고 견디기 힘든 순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터 변화를 위한 무엇인가를 해 보자라고 생각해 보게 된다.
돈 쓰는 것을 싫어한다는 김민식님의 견해 같은 거도 있다.
“저는 돈 쓰는 걸 싫어합니다. 그건 곧, 돈을 벌기 위해 원치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걸 싫어하나는 뜻이에요. 여행을 다닐 때도 꼭 필요한 소비만 하고요, 과시를 위한 사치재에는 돈을 쓰지 않습니다.(p110)”
돈 쓰는 것을 싫어한다는 김민식님이 세계 각국을 여행한다는 것이 어쩌면 어불성설일 거 같기도 하다. 그러나 소비를 위한 여행이 아닌, 경험을 위한 여행을 위해 배낭여행을 하며, 깨알같이 여행의 묘미를 즐기는 모습들이 사뭇 인상적이다. ‘그래, 여행 저렿게 하는 것도 여행의 맛이지!’ 하는 거 말이다.
아버지와 함께 여행 다니는 효자인듯 효자 아닌 효자 같은 김민식님이다. 꼬장꼬장한 아버지를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선택한 기가막힌 방법이 아버지와 함께하는 부자 여행이다.
김민식님의 짠돌이 기질은 아버지로부터 고스란이 물려 받은 탓에 그들의 여행은 자린고비 여행이다. 레스토랑에서 팁을 주는 것이 못마땅해서 뉴욕에서 1달살이 하는 동안에 맥도날드를 필요한 팁이 필요없는 햄버거 가게에만 다녔다는 부자. 저렴한 숙소도, 많이 걸어도, 박물관 한 번도 안가도 그냥 거리를 걷고 보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운 여행을 한다는 민식님의 아버지.
김민식님은 그런 아버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가족들 마음을 이해하게 되다고 했다. 그래서 반면교사로 삼아서 여행기를 쓰면서 아버지처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말에서 이상하게 아버지에 대한 깊은 사랑이 느껴진다.
마무리 하며
산책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책을 읽고, 일기장에 낙서하듯 가볍고 간단하게 글을 쓰고자 했다. 그러나 끝나고 보니, 예상보다 긴 글이 되었고, 예상보다 무거운 글이 되기도 했다. 김민식님의 유쾌함과 삶의 통찰하는 결코 가볍지 않은 눈이 책의 곳곳에 묻어 있다. 김민식님의 캐릭터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책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가볍게 쓰윽하고 읽어봐도 좋다. 가벼운 그의 말투에 함께 하다 보면, 인생도 경쾌해지는 기분이 드니까. “
인생 그까짓거 뭐~ 그냥 즐기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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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한 독서후기 잘 읽었습니다. 기회되면 읽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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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쓰윽~ 읽어도 불쑥불쑥 생각할 것들이 튀어나오는 재미있는 책입니다. 방문해주셔서, 이렇게 댓글까지 남겨주시니,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
글을 너무 늦게 봐서 ㅠ 마녀님 댓글을 디다려야겠어요. 이 책 제목을 보고 편견에 고르지 않았는데 선을 긋는 다는 일화에 마음을 빼앗겼네요. 생각해보니 저는 ‘선긋기 달인’이었거든요
워라밸에 대한 이야기 아르헨티나 여행 이야기... 공감가는 내용이 많았어요 무엇보다도 일상을 사랑해야죠! 오늘의 일상과 지금의 나를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저도 오랜만에 들어와서는 이제야 답글 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도 남겨주시니, 더 신이 나에요. 감사합니다(^^)/
오랜만이에요 마녀님 대신 이글에 살포시 보팅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