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퍼거 증후군과 약물, 또 모기

in #kr-diary5 years ago (edited)

예전에 본 드라마에서 기억에 남는 대화가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갖고 있어 대인관계가 어려운 것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부터가 어려운 A와 A를 다양한 틱을 가지고 있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B는 수행능력을 향상시키는 약물이 옳은가에 대해 논쟁을 한다. 그리고 A는 왜 스스로가 수행능력을 향상시키는 약물을 옹호할 수 밖에 없는지,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내가 집을 나설 때마다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모를 거에요. 매일, 매일 아침마다 내가 정말 저 문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고민해요."
"매일 그 싸움에서 이기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래요. 약물 덕분에요."

물론 그 정도에 있어서, 나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경미하다고 보아야 할 갈등이겠지만 나에게도 비슷한 갈등이 있다. 나는 일상을 모두 보내고 침실로 들어가는 것이 두렵다. 어디서나 잘 자던 나는, 이제는 어디서도 잘 자지 못 한다. 단순히 깨어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몸부림 치며 깨어있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루를 고통 속에서 보내고 나면 그 다음 날은 침실이 더욱 무서워지고, 악순환의 반복이다. 물론 나도 그 싸움에서 패배하지는 않았다. 약물 덕분이지도 않다.

이틀 전에는 괴로운 밤에 나를 깨웠던 모기가, 어제는 겨우 잠 든 나를 깨웠다. 나는 모기조차도 잘 죽이지 않지만, 녀석을 깨어남과 동시에 때려잡았다. 양키 캔들을 한참을 켜놓고, 평화로운 음악을 들으며 겨우 든 잠이었다.

다행인 점은 그렇게 깨어나서도 그렇게 힘든 하루를 보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육체적으로는 피곤했지만, 정신적인 고통에 앓는 것에 비하면 육체적인 어려움은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글을 계속 쓰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도움을 주는 모양이다. 며칠간, 괴롭다는 글만 쓴 것 같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었나보다. 사람들은 그래서 상담을 받나보다. 나는 사람 대신 모니터와 키보드를 마주하고 있지만, 워낙에 오만한 나에게는 상담사보다도 이게 오히려 나을 수 있다.

저녁에는 도서관을 다녀왔다. 예전에는 걸어서도 쉽게 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버스가 단 하나 밖에 서지 않는 버스 정류장조차도 그리 가깝지 않고, 그렇게 버스를 타서도 40분을 가야 도서관에 도착한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그냥 도서관도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가까운 하천에 도서관까지 쭉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덕분에 도서관을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20분으로 획기적으로 줄었는데, 나는 그 시간조차도 더 줄이려고 한다. 계속해서 단련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며칠간 제대로 자지 않고 운동까지도 매일 하다보니, 아주 피곤해서 나는 씻자마자 쓰러져서 잘 수 있었다. 저녁도 먹지 않고 잔 바람에, 배가 고파서 깨긴 했지만 기분은 좋다. 지금은 미역국을 끓이고 있다.

오늘로 마지막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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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오늘은 유난히 피곤하네요. 저도 곧 쓰러져 잘 듯.

감사합니다. 편안히 주무세요.

다행입니다.

네. 하루를 버티는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가 많거든요. 바라는 것은 손에 잡히지 않고 가까워지는지, 멀어지는지조차도 알 수 없으니까요.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데 그렇게 되었네요.

몸은 좀 괜찮아지셨길 바라요. 오늘 하루도 평화롭기를.

사실 저는 사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흥미를 느끼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 문제인지,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 다행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삶이 의미있는지 고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특별히 반응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