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아 놀자] #03. 빗 vs. 빚 vs. 빛

in #kr-korean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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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멋진 작품을 대문으로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해주신 @kiwifi 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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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과 빚과 빛!

오늘 같이 살펴볼 단어는 바로 빗, 빚, 빛이다. 사실 이 단어들을 구분하지 못해서 헷갈려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도 일단 단어의 뜻부터 살펴보고 가자.


빗: 머리카락을 빗는데 쓰는, 가늘고 긴 살이 달린 도구.
빚: 꾸어 쓴 것으로 남에게 갚아야 할 돈.
빛: 천체나 불, 인공적인 조명 또는 특수한 생물체 따위의, 스스로를 밝히는 현상을 통틀어 이르는 말.


그래, 그래. 단어 뜻은 다 안다고. 이 단어들을 헷갈려할 사람도 없고 말이야. 그럼, 도대체 왜 이 단어들을 들고 나온 거냐고?


문제는 발음이야!


문제는 바로 발음이다.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 단어들의 발음을 틀리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목격하게 된다. 사실 요즘 철지난 "지대넓얕(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팟캐스트를 듣고 있는데, 호스트 4명 모두가 이 단어들의 발음을 지속적으로 틀리고 있다. 한두 번 틀리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나올 때마다 틀리니 참 듣고 있기가 괴롭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고, 상식을 넓혀주는 참 좋은 팟캐스트다.)

그럼 도대체 빗과 빚과 빛의 발음이 어떻게 다르냐고? 단어 하나만 발음했을 때는 세 단어의 발음이 모두 똑같다.


[빋]


세 단어 모두 발음은 [빋]이다. 문제는 그 단어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나올 경우이다. 그럴 때는 받침이 뒤로 넘어가서 연음이 되기 때문에 세 단어의 발음이 달라진다.


  1. 빗이 [비시] / 빗을 [비슬] / 빗으로 [비스로]
  2. 빚이 [비지] / 빚을 [비즐] / 빚으로 [비즈로]
  3. 빛이 [비치] / 빛을 [비츨] / 빛으로 [비츠로]


위에서 말한 "지대넓얕"에서는 '빛이', '빛을'을 자꾸 [비시], [비슬]이라고 발음한다. 그렇게 발음하면 '빗이', '빗을'이라는 뜻이 된다.


알고보니 지니가 국어 선생님


자, 여러분에게 지니 요정이 나타났다고 상상해보자. 내 인생은 왜 이리 어두운 것인가. 고민하던 끝에 당신은 "내게 밝은 빛을 주세요!"하고 요청했고, 지니는 그 소원을 들어줬다. 그럼 해피엔딩 아니냐고? 근데, 알고보니 그 지니가 아주 깐깐한 국어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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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깐깐한 국어 선생님 지니~!! 어디, 소원을 들어볼까?


소원을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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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밝은 빛을 주세요!!


[내게 발근 비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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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밝은 빗을 달라고? 옜다, 밝고 하얀 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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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머리결이 좋아질까?


[내게 발근 비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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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밝은 빚을 달라고? 왜 빚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원을 들어주는 게 내 임무! 밝은 빚을 달라고 하니, 번쩍번쩍 눈부신 골드바를 빚지게 해줄게. 옜다, 밝고 눈부신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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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밝아도 이런 빚은 지지 않는 게 좋을걸.


[내게 발근 비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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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밝은 빛? 그럼, 당연히 줘야지. 전구가 나갔나 봐? 옜다, 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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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밝은 빛이다~!!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지 말고, 빛을 구하려다가 빚만 지지 말고. 여러분은 부디 빗, 빚, 빛의 발음을 꼭 제대로 해주시길. 제발~! :)



[한글아 놀자] 지난 글 링크입니다.

[한글아 놀자] #01. 낫다 vs 낳다
[한글아 놀자] #02. 가르치다 vs 가리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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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뎌 맞춤법에 비시 비추는 것 같아요!ㅋ

비시 잘 비추고 있나요? 다행이네요. ㅋㅋㅋ

이제 한글까지..?? ㅎㅎ

네. 어쩌다보니 한글까지.. ^^;

발음할 때 이런 차이가 있었네요~
잘 배웠습니다~
출간하신 책에서도 뒤에 따라오는 단어에 따라 영어발음이 달라진다는 부분도 생각납니다~^^

맞아요. 영어에서도 우리 말에서도 발음이 중요하죠. 발음이 달라지면 단어가 달라지니까요.

ㅋㅋㅋㅋㅋㅋ예시가 귀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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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ㅎㅎㅎㅎ

사실 한글 어렵죠 저도 오타많이나고 발음도 샘....~~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어려운 거 같아요.

하하. 오늘은 재밌게 봤습니다.^^ 기도할때 잘해야겠네요.

네. 기도할 때 발음 조심하세요. ㅎㅎㅎ

맞춤법은 아는데 발음법을 틀리는 현상은 참 독특한 데가 있습니다. 본디 그렇게 발음하기 때문에, 즉 종성이 다음 음절의 첫소리와 합쳐지는 현상이 있기 때문에, 그 원형을 밝혀 맞춤법으로 적어 낸 것이니 말입니다. 글자가 소리의 원형처럼 인식되어서 진짜 소리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우리나라도 그렇고 다른 나라들도 중세부터 음운을 소실하고 있다는데 개인적으로 문자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맞아요. 참 독특하죠?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도 이거에 대한 질문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정확한 답변은 없었어요.

발근 비즐 주세요!
그럼 대출 해주느건가요 ㅋㅋ?

네. 골드바를 빌려줄 겁니다. ㅋㅋㅋ

우어.. 정말 생각안하고 쓰게 되면 틀리게 발음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ㅎ 이래서 한글이 어렵다고 하는 것일지도.
저도 은영중에 세 단어 다 비슬 이라고 발음했던듯.ㅎ

꽤 많은 분들이 '비슬'이라고 하시더라고요. ^^;

저도 이런거 엄청 거슬려해서 맨날 남친한테 잔소리하게 돼요ㅠㅋㅋㅋㅋ

한번 신경쓰면 이런 것만 들려요. ㅋㅋㅋ

이런 말들은 특히 조사랑 붙을 때 참 많이 헷갈리는 거 같아요.^^

맞아요. 뒷말에 따라 연음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니까요.

비시 있으라 하시니 비시 있었다.... 우리는 머리카락 같은 존재가 되는 겁니다..ㅎ

아,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군요.
비시 비추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한글이 이리 힘든데...
한국어 잘하는 외국어보면 참 신기하죠ㅎ

맞아요. 우린 한국에서 태어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